4개월 간의 호주 산불은 한반도 절반 이상의 면적을 불태우고 코알라, 캥거루, 박쥐 등 동물 10억 마리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린피스는 아마존 산불 당시 강력한 캠페인을 진행해 브라질 정부와 다국적 기업들의 직접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호주 산불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전 세계적인 캠페인을 진행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전달할 예정이다. 호주를 비롯해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호주 산불에 책임이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바로 기후위기에 기여한 책임이다.
호주가 4개월째 불타고 있다. 카메라에 비친 모습은 그야말로 불바다였다. 호주의 건조한 기상 조건으로 매년 발생했던 화재 규모를 이미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이번 산불은 2020년 1월 초 기준 이미 대한민국 국토 면적인 10만㎢를 넘어섰다. 재작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로 잃은 1만8000㎢, 작년 아마존 산불로 잃은 9000㎢에 비하면 5배에서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기후변화 대응 부족으로 비난이 거세지자 지난 12일(현지 시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 책임을 인정했다. 총리는 기후 문제를 위한 "세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이 발언에 대한 화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호주야 말로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의 세계 최대 수출국인데다, 석탄 산업을 비호하는 당의 선거 승리로 그 기세를 이어 갔다.
많은 학자들이 기후위기를 경고하며 화석연료의 시급한 퇴출을 강조해 왔고, 호주 정부는 석탄과 광산 개발을 더 빨리 퇴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지구온난화로 건조해진 기후에 더 큰 산불이 닥칠 것을 대비할 수도 있었지만 정책 결정에서는 언제나 논외였다. 그래서 이 대형 산불은 호주의 책임이 가장 크고, 또한 기후위기에 미온적이며 여전히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모든 국가들 역시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위기도, 이번 산불도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고 보는 것이 맞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앞으로 이보다 더 극심한 재난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기후변화가 대형 산불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지구온난화로 상승한 기온에 숲과 땅이 메마르고, 더욱 건조해진 날씨가 남은 습기마저 증발시킨다. 그로 인해 작은 불씨도 대형 산불로 번지고, 더 오래 지속되게 되는 것이다. 가뭄 피해도 심해지는데, 이 때문에 고사한 나무는 산불을 키우는 재료가 된다.
호주 산불을 넘어 또 하나 유념할 것이 있다. 이 재난의 결과가 지구를 더 위험하고 더 뜨겁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산불이 가장 극심했던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서만 호주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50%에 가까운 2억60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으며, 실제 배출량은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나무가 불타면서 광합성으로 흡수했던 이산화탄소를 다시 배출했고, 검댕은 2,000km 이상 떨어진 뉴질랜드 빙하까지 날아가 빙하를 더 빨리 녹이고 있다. 이산화탄소는 1번 배출되면 100년 이상 대기 중에 머물며 복사열을 가두어 지구를 덥게 한다. 호주 산불이 더 큰 규모의 재난을 가속하는 기후 되먹임 현상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호주 산불은 한국과도 많은 연관성이 있다. 호주의 이러한 반(反)기후변화 정책에 한국의 기여도도 높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호주에서 가장 많은 석탄을 수입하고 있다. 재작년 OECD 회원국의 석탄 소비량이 전년 대비 3.5% 감소한 반면 한국은 2.4% 증가한 사상 최대 규모였다. 1인당 석탄 소비량으로 따지면 세계 1위인 호주에 뒤이은 2위, 최대 석탄 소비국인 중국보다도 높다.
또한 한국의 공적 금융과 민간 금융은 호주와 인도네시아 광산 개발 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린피스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캠페인을 비롯해 많은 국내외 환경 단체들은 인도계 기업 아다니의 호주 카마이클 광산 개발에 수년간 반대했다. 재작년 해외 석탄 투자 반대 캠페인을 통해 사업 참여 의향을 밝혔던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미래에셋 등으로부터 투자 철회 의사가 담긴 레터를 받는 등 국내 금융의 광산 개발 투자 억제에도 힘을 썼다. 하지만 작년 9월 삼성증권, 한화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이 카마이클 광산 터미널의 대출 채권 2500억 원 규모를 매입했다는 사실이 다시금 알려졌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11.3%를 차지하며 5년 연속 배출량 1위를 기록한 포스코 역시 작년 세계 3위 석탄 공급사이며, 1980년대부터 돈독한 관계를 유지 중인 호주 얀콜(Yancoal)과 10만 불 규모의 매칭 펀드를 체결해 화제가 됐다. 지역 사회 개발 명목이지만 내용은 원주민들의 광산 업계 취업을 위한 교육 제공 등이다. 광산 개발로 그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이제 없어져야 하는 사양 산업에 취직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한국전력이 약 8300억 원을 투자한 호주 바이롱 광산 개발 사업도 환경 규제로 좌초 위기를 앞두고 있다.
한국의 석탄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 해외 석탄 발전소 투자 규모 3위인 우리나라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9개 국가들이 더 많은 석탄을 호주로부터 수입하는 것에도 일조한다. 전 세계 기후행동과 석탄 투자 중단 요구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다. 적어도 석탄과 미온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한 호주와 한국은 매우 닮았다.
모리슨 총리는 기후위기와 산불 대응을 위해 왕립 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그보다 석탄 광산 개발과 관계 투자 중단을 선언하고 탄소 제로를 위해 더 적극적인 산업 구조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 빠른 대처이다.
한국 역시 불타는 호주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바로 호주와 동남아시아의 광산과 석탄 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하루빨리 멈추는 것이다. 또한 내연기관차, 석탄 발전소 같은 탄소 다배출 산업을 신속히 퇴출하는 것이다. 호주 산불로 늘어난 이산화탄소를 고려할 때 우리의 기후위기 시계는 더 빨라졌다. 제주도는 이달 초 기온이 23도까지 오르는 유례 없는 고온을 경험했고, 우리 모두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1월을 보내는 중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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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마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