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남성현(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해양과학자)
굳이 대항해시대나 2차 대전 당시의 태평양 전쟁을 예로 꼽지 않더라도 바다로 나아간 민족이 제국을 건설하고 패권을 거머쥐었음은 역사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미중 사이의 신 해양패권 경쟁이 뜨겁습니다. 바다가 중요함을 잘 아는 민족과 국민은 늘 바다로 나아가 큰 기회를 얻으려 했습니다. 꼭 패권이 아니더라도 바다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의 여부는 국가의 존망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다를 지켜 나라를 구한 것은 조선 수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삼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도 바닷길이 막혀 물류가 중단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국가입니다. 이처럼 바다는 국가 간 경쟁과 교류가 그대로 드러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바다의 환경에 심각한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에서는 정기적으로 발간해오던 평가보고서 외에 특별보고서들을 발간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2019년 9월에 발간된 <변화하는 기후에서의 해양과 빙권(The Ocean and Cryosphere in a Changing Climate)>입니다.
IPCC는 이 특별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로 나타나는 바다 환경의 급격한 최근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어떤 바다 환경과 그 생태계 변화가 예상되며 이것이 어떻게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게 될 지를 적나라하게 밝혔습니다. 이제 인류는 심각한 지구환경위기를 뒤늦게 깨닫고 대전환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숫자상으로는 21세기가 시작된 지 이미 20년이나 지났지만 진정한 21세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pandemic)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인류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만들어낸 20세기의 찬란한 문명은 지구환경의 악화라는 대가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물질적 추구와 경제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두며 누렸던 자유는 결국 신종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과 각종 기후재난, 심각한 환경오염 및 생태계 파괴라는 지구환경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인류는 결국 오랫동안 누려온 자유의 결과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구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진정한 21세기,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비상(climate emergency) 선언이 잇따르더니 영국은 2020년을 ‘기후행동의 해’로 정했고, 새로 당선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했습니다. 탄소 배출 10위권의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정부도 2050년 혹은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등 그동안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빠르게 전환하는 중입니다.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 펜데믹으로 우리의 일상이 잠식되어 가는 와중에도 각종 기후재난과 재앙이 세계 곳곳을 휩쓸다시피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례적인 장마로 수천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며 10조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가져왔는가 하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극심한 가뭄과 함께 한반도 면적의 85%에 달하는 산림이 불타 생물다양성이 심각히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해가 바뀌어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하는 와중에도 기후재난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2월, 알래스카보다 추운 겨울을 맞이했던 미국 텍사스는 비상사태를 선포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한파에 취약했던 텍사스 주는 모든 것이 얼어붙으며 석유와 가스에만 의존했던 발전이 불가능해지면서 500만 가구 이상에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덮고 있으며 평균 수심도 육상의 평균 해발 고도보다 몇 배나 더 깊어 지구상 대부분(97%)의 물을 담고 있는 바다의 오염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급증한 해양쓰레기,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오늘날,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류는 이미 혈액 속에서까지 플라스틱이 검출될 정도로 막중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지구상 가장 큰 규모의 서식지이자 육상보다 많은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해양 생태계를 빠르게 회복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서 생존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는 국가 간 경쟁이나 특정국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지구환경위기는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방식이 아닌, 모두가 힘을 합쳐 ‘하나의 팀’으로 노력할 때에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어떤 면에서는 심지어 우주보다도 접근성이 더 떨어져 오랜 기간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어야 했던 바다. 이제 우리는 바다를 알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구의 허파 역할을 담당하는 바다에는 작은 식물성 플랑크톤도 살고 있는데 이들이 대량 번성하면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해 줍니다. 이들의 광합성은 다양한 해양 생물들의 호흡 뿐만아니라 대기 중 산소를 통해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육상 생물의 호흡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증가되어 축적된 어마어마한 열에너지의 대부분(90% 이상)은 바다에 흡수되고 있는데, 바다는 해류를 따라 순환하며 대기를 데우거나 식히며 거대한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지구 전체적인 열과 물 순환의 변화는 바다에 흡수된 열의 이동에 의해 좌우되는 셈입니다. 결국 바다를 모르고는 지구환경위기라는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린피스는 서울대학교 남성현 교수와 함께 바다가 처한 위험과 해양 환경, 해양보호구역을 다룬 블로그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남성현 교수와 함께 할 두 번째 이야기, <유엔 해양과학 10년과 30x30 공해상 해양보호구역>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