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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산불에 포위됐던 한울원전, 산불은 ‘또’ 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믿을 수 없던 세계는 러시아 군대의 체르노빌 점령에 경악했습니다. 이후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한 러시아는 원전 시설에 대한 공격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보입니다.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위해 하루만에 8억 이상을 기부한 한국의 시민들은 전쟁의 충격을 소화하기도 전에 더 가까운 원전의 위협을 지켜봐야했습니다. 지난 3월 4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한울원전 방벽 언덕까지 번져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초대형’ 산불이 ‘초대형’ 원전 부지로 향할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원자로 8기가 초대형 산불에 포위되다


이레째 이어진 산불로 서울 면적의 1/3을 넘는 면적이 전소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번 초대형 산불은 최근 10년간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낳았습니다. 산림청은 오전 11시 17분 경 시작된 울진발 산불이 오후 2시까지 확산세를 멈추지 않자 산불 3단계와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을 발령하고 산림 헬기 28대와 소방차 105대, 산불진화대 417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급속도로 번진 산불이 한울원자력발전소 부지로 향했습니다. 한울원전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크며 세계적으로 세 번째로 큰 초대형 원전 단지입니다. 총 7기의 원자로(한울 1-6호기, 신한울 1호기)가 운영 중이고 1기(신한울 2호기)가 추가로 건설 중인 상황입니다. 이번에 러시아 군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이 유럽에서 가장 큰 원전 단지이지만, 한울 원전은 이보다 규모가 더 큽니다. 한울1-5호기는 약 4900MW(메가와트) 용량으로 국내 전력 공급량의 5%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산불 당시 한울 6호기는 계획예방정비로 가동 정지 상태였고, 신한울 1, 2호기는 각각 시운전 및 운영 허가 대기 상태였지만, 화염이 부지 안으로 닥치면 원자로 8기 모두가 산불에 휩싸일 수 있는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한울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포화율이 2021년 기준 약 87% 이상으로 화재 위험에 절대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실정이었습니다.


이에 소방청은 소방차 24대에 더해 소방차 26대의 위력과 맞먹는 대용량 방사포 시스템을 한울원전 주변에 집중 배치하고 원전 부지 안까지 화재가 번지지 않게 총력을 기울여 다행히 더 큰 원전 사고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마음을 졸이며 이번처럼 운이 좋기를 기대해야 하는 걸까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긴급 속보를 보며 원전까지 불이 번지지 않도록 두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일까요?

2022년 3월 5일 11시 07분 기준 코페르니쿠스 Sentinel-2A 위성 사진. © 코페르니쿠스 Sentinel-2A 위성 사진


지옥의 문 턱에서 멈췄지만


소방대원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한울원전 주변 산불이 소강된 이후에도 우리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강원도로 치닫는 불길의 끝에 삼척 LNG 기지가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재로 원전이 얼마나 위험했는가 설명하는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당시 한울원전 경계선 울타리를 넘은 화염이 ‘스위치 야드’까지 근접했었다고 밝혔습니다.


‘스위치 야드’는 발전소 전기를 송전선로를 통해 외부로 공급하거나 내부로 공급받는 전기설비입니다. 원전의 주요 기기들은 송전선로를 통해 공급받은 외부 전기로 가동되기 때문이 스위치 야드나 송전선로에 화재가 발생하면 전력 공급이 끊겨 위험이 높아집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전력 상실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진으로 송전탑이 망가져 외부 전원이 끊긴 상태에서 쓰나미로 비상디젤발전기마저 전력을 공급하지 못해 원자로 3기의 수소 폭발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국내에서도 비상디젤발전기가 고장난 위급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2012년 2월, 부산시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전 1호기 가동 정지 중 외부 전원 공급이 중단됐는데,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12분간 전원이 상실돼 냉각수 온도가 상승하는 위기 상황으로 연결되었지만 다행히 더 큰 진전을 막았던 바 있습니다.


원안위는 산불 영향으로 외부 송전선로 8개 중 2개가 차단된 상태에서 한울 6호기의 외부 전원이 끊겨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됐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산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송전선로가 불에 타면 원전의 외부 전원 역시 추가로 차단될 수 있습니다. 이에 원안위는 나머지 비상디젤발전기도 조사 중이라 밝혔습니다.


또한 8기 원자로가 밀집한 원전 단지에 화재에 대비한 소방차가 겨우 2대 뿐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비상 대책 미비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모든 사고는 유사시의 대비책마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할 것입니다. 천재지변은 비상 대책 매뉴얼을 쉽게 뚫고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기후 재난 무방비 속 가동 중인 국내 25기 원자로


이번 초대형 산불은 이미 역대 최대 규모인 2000년 동해안 산불에 육박하는 최악의 사태입니다. 울진, 삼척, 고성, 동해는 벌써 20년 넘게 거의 매년 큰 산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대형 산불이 원전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산불의 규모와 빈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상청이 지난 7일 발표한 ‘2021년 겨울철 기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번 겨울철 강수량은 13.3mm로 평년 대비 14.7%에 불과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는 1973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적은 강수량이라고 합니다.


유럽중기예보센터는 “각종 재난·재해 안전 기준, 이를 바탕으로 설계된 대응 체계와 시설은 기후위기 앞에 ‘20세기 낡은 시스템’으로 전락”했다고 경고했습니다. 기상 예측 오차가 커져 재난 대응력이 감소됐다는 평가입니다. 과연 우리나라 원전은 이런 기후 재난에 충분히 대비되어 있을 까요?


미국,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이미 기상이변으로 인한 가동 중지가 발생했고, 연이어 유럽을 강타한 극심한 폭염으로 냉각수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스위스는 원전의 조기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한국 역시 2020년 태풍 마이삭, 하이선의 영향으로 원전 6기가 불시 가동 정지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2003년에도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원전 부지에 들이닥친 파도에 노출된 주요 전력 설비가 염분 피해를 입어 전원이 차단된 사례도 있습니다. 2020년 8월,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에 따르면 대형 수역에 위치한 원전들이 폭우, 태풍, 홍수, 해수면 상승 위기에 노출돼 원전의 기후위기 리스크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번 산불은 국내 원전이 태풍, 홍수와 같은 물 스트레스 뿐아니라 폭염, 원전 부지 내 화재, 산불과 같은 열 스트레스에도 충분히 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다 타버린 외양간, 소만 남았다


2013년 4월 그린피스와 강원 삼척시 주민들이 원전에 반대하는 비폭력 직접 행동을 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오래된 속담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 우리는 소는 잃지 않았지만 다 타버린 외양간을 두려움 속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느껴야 하는 두려움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화마는 기후위기 가속으로 더욱 건조한 조건 속에서 지금보다 재앙의 규모가 훨씬 크고 강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원전보다 안전이 우선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금 그린피스의 #원전말고안전 캠페인에 함께해 주세요!


>>원전말고안전 캠페인 함께하기<<


글: 장마리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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