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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ul 27. 2021

깊은 그리움의 세계를 읽다

- 『바람을 타고』, 김복은(신동일 작곡가의 어머니)

깊은 바다를 건너는 나비처럼



책의 저자 김복은은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는 신동일 작곡가의 어머니시다.

브런치에서 작곡가의 어머니께서 수필집을 발간하셨다는 글을 본 순간 즉시 책을 구입했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책을 냈다는 소식은 언제나 궁금증을 유발한다.

더구나 아름다운 작곡을 하는 음악가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실까 하는 호기심이 가장 컸다.

어떤 교육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실까 가 가장 큰 관심이었다고 하는 편이 맞다.


나는 살아온 삶 중에서 거의 2/3의 기간을 가르치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는 사람이다. 대학생에서부터 어떤 연령의 아이든, 아이들을 쭉 지켜본 결과, 그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낀 사람이다.

물론 100%라고는 절대 말하고 싶지 않다. 어떤 때는 다른 영향으로 그 아이가 자라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나 대부분이 그 어머니의 역할을 간과하지 못한다. 잘하든 못하든.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결국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화가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분이시다.

책의 표지도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표지에는 나비 다섯 마리가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푸른 빛깔의 나비와 핑크빛의 나비, 그리고 주홍 빛깔의 나비 2마리. 그리고 가장자리에 앉은 나비 1마리.

가족일까, 혹은 저자 본인의 마음을 다양하게 나타낸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어딘지  아련하다.

나비는 단번에 휙 날아다니지 않는다. 나비의 펄럭임은 춤 같고 노래 같다. 그리고 가냘프고 약하다. 그러면서도 꽃들에서 꽃들로 날아다닌다. 아름다움과 향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책의 표지, 그림은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표지 그림의 푸르고 깊은 빛을 바라보니 아주 깊은 바다 빛으로 보인다. 쉽게 건널 수 없는 깊은 바다.

그리고 그 바다 건너 고국을 그리워하는 저자의 마음이 아주 깊어서 보는 이도 마음이 깊고 아득해진다.

 

그림 속의 나비들은 주로 바다 쪽에 있다. 바다 위를 날고 있거나 바다를 향해서 날갯짓을 한다. 혹은 그 경계의 어디쯤 걸쳐 있다.

이렇게 저자의 그리움이 너무 깊어서 표지 그림만으로도 어떤 분인지 금세 드러나버린다.

나비가 날아가고 싶은 곳은 고국일 수도 있고, 아들을 향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고향일 수도 있고, 저자에게는 어쩌면 그 모두일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그리움이다.  




책의 뒤표지, 신동일 작곡가의 사모곡이 있다



신동일 작곡가가 쓴 후기가 책 표지 뒤에 실려 있다.

서울과 뉴저지에서 수만리를 떨어져서 20년이 넘게 모자가 만나지는 못하나 블로그로 소통하고 있다고 쓰여 있다. 모자의 곡진한 그리움이 몇 줄의 글에 다 실려 있다. 먼바다를 두고 따로 살고 있어도 글이란 매개체로 서로의 연결점을 찾고 있으니 그나마 곁에 없는 그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하다.

나도 형제들이 세계 도처로 흩어져 살고 있지만 블로그로 서로의 안부를 알 수 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느끼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은 시대의 기록



저자의 고향은 감자바우라고 부르는 강원도다. 책을 펼치면 저자는 고향 이야기부터 하고 있는데 와락 감동이 밀려온다. 나도 외가가 강원도다. 저자의 고향은 강릉이었고, 나는 춘천이 외가지만 어딘지 정겹다. 외할아버지가 생각나고, 외삼촌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고향이란 공간은 그리움이 절반이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는데 가족들이 <새벗>, <학원>등의 잡지를 구독하게 했고, 집에는 동화집들을 두었고, 아버지가 직접 책을 읽어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빠들도 책벌레며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중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대여하면서까지 읽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의 독서력이 한 사람의 성장을 말할 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독서가 습관이 되면서 아마 화가로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글을 쓰는 힘을 계속 기를 수 있었고, 자녀들의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것이다.




책의 목차




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가 살던 시대의 이야기이며 남은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순간이기도 하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 가장 먼저 그런 것들을 느낀다.

이 책은 6.25를 거치는 이야기와 함께 가족사와 시대사가 어우러져 있다. 역사적인 시간들을 관통하면서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실과 긴장을 거쳐서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글은 늘 소중한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기록물이고 서사이기 때문이다.


3.15 부정선거 이야기가 나오고, 당시 실종 27일 만에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박힌 채로 떠오른 김주열의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나도 절로 그 3.15 의거탑이 서 있던 마산으로 순간 이동하기도 했다. 플레어스커트의 소녀가 주먹을 쥐고 행진하는 그 동상이 서 있던 로터리.

저자가 살아오던 시대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시대였고, 저자는 책 속에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어머니로서의 삶을 이루기까지



내가 가장 알고 싶고 궁금했던 점은 저자의 교육관이었다.

저자는 영 유아기를 유기하지 않고 키운 아기들은 유년기, 사춘기, 청년기까지 자기만의 의지가 뚜렷한 인성을 갖고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말은 열 번을 강조해도 맞는 말이라고 한다.


저자가 화가이므로 영, 유아기를 논할 때 그림 그리기로 시작한다. 영 유아기를 지나 유년기의 그리기 과정은 사물을 형태로 표현하려는 단계에 이르는데, 이때 엄마들은 미술공부를 시키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위험한 함정에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교육을 위한 그리기가 아니라, 그리다 보니 교육이 되었다가 저자의 신념이다.




책 속의 저자 이력



저자는 석고상을 안 보고도 그려내는 기술자를 만드는 입시 미술을 비판한다. 그 어떤 나라의 입시생보다도 석고상을 보지도 않고 그려낼 정도의 훈련이 된 우리 입시생들의 모습을 보고 절망하고 귀국하자마자 붓을 모두 꺾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석고상을 다 부수고 다시는 사기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절필을 선언했다.


저자의 말로는 다혈질이고 우울하고 외로운 사람이나,  상처가 깊은 사람, 그리고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과 자존감이 없고 망설이는 사람,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이 그림을 그리기가 적당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되고, 보이는 것부터 그리면 되니, 그림 그리기는 지금 하면 된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 굉장히 위로가 된다. 나는 미술시간이면 그림을 못 그려서 울었기 때문이다. 아마 미술 선생님이 이런 분이었다면 내가 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예술 전도자로 자처하며, 그림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어루만지는지 말한다.  


저자가 한국에서 살았던 지역은 서울시 강북구 번2동으로 '율곡 교육촌'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교육촌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현재의 부동산 문제와 어울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지만 한 평생 가장 잘한 일은 교육촌에 들어간 일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 저자는 개들을 기르고 온갖 꽃들을 길렀다. 봉숭아, 채송화, 금잔화, 제비꽃, 맨드라미, 칸나, 튤립, 히아신스, 해바라기, 백일홍, 라일락을 심고, 당시로는 귀한 거봉 포도나무를 심었다.

후일 오동나무는 아름드리 키가 하늘을 찔렀고, 교육촌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대추나무는 가지가 휘도록 대추가 달렸고,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등을 심었다.

이외도 잉꼬, 갈색 메추라기, 카나리아, 닭, 강아지 등을 길렀다.

이렇게 장황하게 책의 내용을 열거해보는 것은 이런 자연적이고 감성적인 풍광이 자녀교육에 많은 영향을 쳤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과 무성한 자연들과의 어우러짐은 오드리 헵번과 앤서니 퍼긴스 주연의 <녹색의 장원>을 보고 꿈꾼 것이라고 하니 집은 물질이나 소유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삶의 울타리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저자의 집 마당을 그대로 열거해본 것도 어떤 어머니였는지 알고 싶어서이다.

저자가 온갖 자연을 들인 마음이 바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 신동일 작곡가를 배출한 바탕이 되지 않았나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신동일 작곡가의 부모님은 국어 선생님과 미술 선생님이었으니 처음부터 남다른 예술적 감각을 기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창의력과 감성이 저절로 우러나는 집의 의미는 늘 새롭다.


저자는 어머니로서 아들인 신동일 작곡가 이야기도 매우 자랑스럽게 말한다.

『노란 우산』어린이 책이 나온 과정과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쓰고 있다. 2002년 뉴욕 타임스 최우수도서 10선에 뽑힌 이야기, 국제 어린이 도서 협의회에서 세계 우수도서로 선정된 이야기, 책과 음악이 콜라보를 이룬 이야기들에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보통의 어머니가 된다.

특히 이 책이 어린이를 위한 동화의 세계, 꿈의 이야기, 상상의 나래, 추억의 기억들이 들어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에서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읽고 싶었던 어머니의 교육관을 마침내 알게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머니의 영향이 자녀를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드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게 했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을 구입했던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나도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그립게도 많이 나온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함께 여기저기를 다녀본 것도 멋진 일이었다. 그 예전 화신백화점 옆의 종로의 고전음악감상실 <르네상스>에도 잠시 들렀다. 저자의 교육관만큼 멋진 그 시절의 여행과 잃어버린 시대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여러 가지 병으로 인한 육체의 고통과 고국을 떠난 마음의 병이 많았을 저자가 이토록 삶을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지금부터 나도 삶이 순전히 나만의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의 삶에 아주 작은 거름이 되었고, 또한 다른 이의 영양분을 받아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아니면 가슴 아픈 시대를 안고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저자의 책을 읽고 가지게 된 가장 큰 미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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