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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닥 Apr 21. 2021

너는 화냥기가 있대

"너는 화냥기가 있대"

진해 큰어머니 말씀이었다.(큰어머니가 여러 명이셔서 지역명을 앞에 붙였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돌아가신 진해 큰아버지는 점잖으셨다고 하셨다.

철들기도 전에 이미 눈치챈 나의 아빠와 작은아버지의 다혈질 성향으로 봐서 '으잉?'이었으나 나의 엄마와 작은엄마는 입을 모아 그리 말씀하셨다.

김 씨 집안 형제 중에 가장 점잖으셨다고.

하지만 진해 큰어머니는 내가 아는 한 점잖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셨다.

어린 내 눈에도 머리와 가슴이 아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씀하시는 분이었고,

진해 큰어머니의 아들딸들 즉 나의 사촌언니 둘과 오빠 둘을 너무 좋아했던 나는 속으로 진해 큰어머니가 미워질 때마다 언니와 오빠들에게 역시 속으로 사과하곤 했다. 당신들의 엄마를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그런 진해 큰어머니의 망언 중에 망언은 서른 즈음의 애인이 없던 나에게 '너는 화냥기가 있대'였다.

어디서, 누가, 언제 나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관상 좀 본다는 본인의 지인이 나를 보고 했다는 말이었다.

그날 그곳은 친척들이 모두 모여 있던 우리 집 거실 한 복판이었다.


더 이상 어린 나이도 아니었고,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어느 정도 받아 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옆에 있고, 다른 큰어머니, 작은어머니가 옆에 있는 상황에 들은 그 황당한 소리에 나는 순간 굳어버렸고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을 왜 하셨는지 앞뒤 전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척들끼리 모이면 늘 그렇듯 너는 애인은 있냐, 결혼은 언제 하냐 등 별 대수롭지 않은 대화중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그런 말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셨을 것이다.


그분은 그런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말을 들은 지가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생각나는 내 마음에 있다.

'화냥기'란 단어는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배경의 슬픔과 어쩌고를 떠나서 지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남도 아니고 싸우고 있는 도중이라 일부러 상대방을 상처 입힐 목적으로 쓰인 욕도 아닌,  그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시점에 성인 여자 조카에게 뱉을 만한 단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내가 집안의 수치요 나아가서는 나의 잊고 싶은 더러운 기억을 여기에 쓰는 것은

'그런 사람이 있다'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인스타 팔로워 중에(인친님이라 부르겠다) 고등학생이던 본인에게 '너 공부 그 정도밖에 못하면 나중에 유흥해서 먹고살아야 해'라는 말을 친척이 했다고 쓰신 글을 봤다.

순간 가슴이 무너졌다.

화냥기가 있어 보인다는 얼굴을 가진 나와

본인의 자식처럼 명문대 갈 만큼의 성적이 못 되는 그 인친님은

아무 잘못한 거 없이 조롱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친척'어른'이 낸 상처는 오래간다.

남이 아니므로 쌍욕으로 풀기 어렵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어릴 때부터 사회문화적으로 지배당해온 어르신 공경 사고가 그분들의 말을 쉽게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옳지 않은 말이란 걸 알면서도 가슴에 묻게 된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우리는 트라우마 속에 산다.


     ( 실제로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이후 내가 만나는 모든 남자들에게 의식적으로 퉁명스럽게 대했다. 여자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남자인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퉁명스럽게 대해서 사회생활에 곤란을 끼친 적도 있다.  인친님은 학력 콤플렉스가 심하시다고 스스로 고백하신다(영어를 굉장히 잘하시고 나보다 공부를 잘하셨는데!!!))


그런 사람이 있는 거다.

도처에 깔려 있는데 불행히도 내 친척이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그때가 생각날 때면 쌍욕을 한다. 조카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더 이상 친척 어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젠 사촌언니, 오빠들에게 미안하지 않다.


나를 지키기로 했다. 규범과 관습으로 얼룩덜룩한 마음 한편에서 '생존'을 꺼냈다.

친척 어른이고 뭐고 나를 해치는 무례한 사람은 아웃이다. '그런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십수 년을 트라우마로 고생 할바에 쌍욕을 하고 관계를 끊 것이다.  '그런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지키며 생존하기 위한 관계의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인친님에게 친척분 망언 에피소드를 써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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