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2022)’
한때 ‘우리’였던 세 친구들이 상이한 환경에서 20대 초입을 겪으며 나와 너로 해체되는 과정을 경유하는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에는 '우리'가 있다.
극 중 세 친구는 삼행시 클럽의 결성 멤버인 '정희', '민영', '수산나'다. 영화의 초반부 이들은 수능이라는 레이스를 위해 잠시 클럽 활동을 유보하기로 합의한 뒤 해단식을 연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간극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여느 또래와 다름없이 소소하지만 유쾌한 나날을 보내던 이들은 졸업 이후 점차 소원해지고, '우리'의 감각을 잃어간다. 심지어는 하버드에 진학한 수산나가 클럽 탈퇴 의사를 밝히며, 대학 진학을 뒤로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희, 지방대에 입학해 한창 학교 생활에 적응 중인 민영만 남게 된다.
방학을 맞은 민영의 초대로 오랜만에 그의 자취방에서 재회한 정희는 성적 정정을 위해 노트북만 주시하는 민영을 보며 전과는 달라진 관계에 대해 감지한다. 학창 시절 민영과 시도하고자 했던 별난 실험들과 추억의 보드게임을 위해 가득 메운 정희의 캐리어는 이제 민영에게는 그저 버겁고 부담스러운 짐이다. 그나마 같이 분식도 먹고, 오락도 즐기며 그때로 다시 접속하는 듯 보이지만, 민영은 이내 정희를 투명인간처럼 방치하다 대면으로 성적 정정을 요구하기 위해 한 장의 메모만 남긴 채, 집을 떠난다. 홀로 남은 정희는 하루 간 자신이 겪어야 했던 상심, 과거의 민영을 향한 애정을 담아 친구의 관점에서 분석한 '성적표의 김민영'을 남긴다.
방황하는 청춘을 그린 영화는 차고 넘친다. 아이와 어른, 현실과 욕망 사이를 오가는 과도기 안에 인물을 두는 본 영화도 물론 그렇다. 정희는 명확한 주관이 있어 대학을 포기했다기보다는 대학이 왜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인물이다. 때문에 얼핏 자유로워보이는 정희의 얼굴 한켠엔 불안이 잔존해있다. 한편, 성공에 대한 선망이 뚜렷한 민영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물 중 하나다. 별다른 재능을 찾지 못한 보통의 수험생들이 다 그렇듯, 민영에게 '대학', '편입'과 같은 단어는 선택보다는 타협에 가까운 것들이다. 그렇게 영화 내내 정희와 민영은 부유한다.
그러나 본 작품의 탁월한 지점은 개인 차원의 방황에 국한해 뭉뚱그리지 않고, 그 불안한 기운이 ‘우리'라는 관계 안에서 어떻게 대립하고, 생채기를 내고, 결국 해체로 이끄는지 등에 대한 과정을 밀도 있게 따라감으로써 보편성 너머의 기시감까지 획득한다는 데에 있다. 영화는 한때 정희였을, 민영이었을 혹은 정희였지만 현실에 진입해 민영이 되어버린 우리의 갖은 경험들을 소환해 낸다. 낯선 상상력과 젊은 인사이트로 가공된 작품이나, 결국 말하고자 하는 속내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노스탤지어가 자리해 있다. '우리'라는 감각이 선명했던, 현실 속 '우리' 모두의 그리운 지난날이 '성적표의 김민영'에 파노라마처럼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