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스틸 플라워(201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소녀가 엎어진 짐들을 급히 캐리어에 주워 담고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도망쳐온 듯도 하고, 가출한 것 같기도 한 차림인데, 그가 누구인지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영화는 부러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살아내는 소녀를 비춘다. 카메라는 주인공보다 한 발 앞서 있지 않다. 그저 뒤에서 묵묵하게 그 걸음을 좇는다. 오랜 걸음 끝에 선착장에 당도한 그는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내팽개치기를 반복하다 넘실대는 파도를 고요히 응시한다. 이때 띄워지는 영화의 타이틀은 '스틸 플라워'다.
주인공은 '하담'이다. 하담은 초반부터 일할 곳과 머물 곳을 찾기 위해 분주히 걷고 뛴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명확한 거주지가 없고 휴대폰 번호가 없다는 의외의 이유로 지원조차 쉽지 않다. 겨우 일자리를 구한다 하더라도, 하담의 처지를 역이용하는 어른들로 인해 하담은 또다시 튕겨져 나와 배회하게 된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탭댄스'다. 탭댄스 학원에서 들려오는 리듬을 익히고 따라 해보기도 하고, 겨우 마련한 아르바이트비를 올려두고 누군가의 탭댄스 슈즈를 훔친 채 신고 다닌다. 갖은 고비 끝에 겨우 일자리를 얻지만, 그마저도 누군가의 폭력으로 이내 좌절되고 만다. 끝내 하담은 다시 가뿐 숨을 몰아쉬며 선착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거센 파도에 휩쓸리고 넘어지고 주춤하면서도 끝내 꿋꿋이 일어나 탭댄스를 춘다.
영화는 연민을 이끄려 하지 않고, 강인하게 삶을 연명해 가는 하담을 그린다. 거친 삶을 거친 질감으로 표현해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하담은 갇혀있지 않고 분명한 스탠스와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예컨대 음침한 빈집이더라도 청소를 하며 몸을 누일 공간을 마련하고, 남은 음식물이더라도 젓가락을 먼저 쥐고, 면접을 보기 위해 반복해서 립밤을 바르고 머리를 단정히 하며 스스로의 존엄을 지킨다. 더불어 빈 집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힘을 쥐어짜고 악을 써가며 비집고 들어가는 시퀀스라거나, 전단지 아줌마에게 떼인 돈을 받기 위해 끝까지 좇고 쥐는 모습, 임금 미지급에 맞설 순 없는 형편이지만 횟집에서 펄떡대는 생선을 잡아 바다에 방생하는 시퀀스 등에서 드러나듯, 하담은 그럼에도 맞서고 싸우고 살아내는 생생한 존재다.
더불어 그 역동성을 배가하는 건 '탭댄스'라는 소재다. 탭댄스를 출 때 하담은 비로소 살기 위해 재촉하는 발걸음이 아닌, 그만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고요한 시간에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하담의 경쾌한 뜀박질은 사람에 치여 차에 둘러싸여 골목을 헤매는 하담의 분주한 발걸음과 대비된다. 이때 영화 전체를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오는데, 이는 유일한 활력이 된다.
그렇게 거친 골목과 드센 파도 속에서도 하담은 생을 틔우고, 의지를 다지며, 약동한다. 강인한 꽃이자 여전히 꽃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