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사의 딸이고, 내 아이들은 목사의 손주들이다.
나는 여전히 아빠가 목사로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고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내 아이들은 함께 다니고 있고 그 안에서 자라고 있다.
교회가 작아 주일학교에 아이들이 거의 없다. 이번 여름 성경학교는 큰 아이의 친구들을 모두 초청하여 시끌벅적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계속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제 점점 커가면서 친구들을 좋아할 나이가 되니 친구가 없는 교회는 심심하다고 한참 난리를 치며 우는데 새삼 먹먹했더랬다. 그래도 덕분에 친구 몇 명을 강력 전도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고 조금은 덜 심심하게 다니고 있다.
하지만 엄청 많은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대형 교회들과는 명백히 대조되는 분위기의 -물론 나의 자녀들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작은 교회.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외로움을 내 자녀까지 느끼고 있는 요즘은 고민이 되기도 한다. 교회를 '선택'할 수 없었던 나는 외로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작은 교회에서 나홀로 혹은 내 친구들 몇 명으로만 이루어졌던 학생회를 외롭게 보내며 부모님을 참으로 많이 원망했더랬다. 내가 그 슬픔과 외로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내 자녀의 같은 고민에 더욱 고민을 하게 된다.
'선택'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사람은 무력해지곤 한다. 내가 더 이상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무력하게, 또는 분노하게 만든다. 내 자녀들을 그렇게 몰아넣고 싶지 않은데 또 지금 당장은 나도 쉽게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니 더욱 고민이 된다. 나는 이 교회를 언제까지 다녀야 할까? 우리 아이들은 이 안에서 어떻게 키워야 할까?
1) 신앙 교육
우선 환경적인 요인을 차치하고서 '신앙'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타협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기독교인인 이상 절대적으로 믿는 가치이자 신념이기 때문에, 그리고 절대적인 옮음이기에 자녀에게도 어쩔 수 없이 가르쳐야 하는 부분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의지와 가치관을 성립해 나갈 때는 수많은 고민이 있을테고 숱한 방황의 시간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때에도 나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기다리며 함께 이야기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신앙 안에서 키울 때 절대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목사의 자녀를 떠나 모든 신앙인들이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잘못된 방법으로 통제하거나 강요하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을 규칙과 습관으로라도 만들어서 가르치고 양육해야 한다는게 나의 신앙 양육 신념이다.
"주일 성수, 헌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들"
이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어리니 부모가 하는 삶의 방식대로 자연스레 스며들게 할 수 있을 테지만 앞으로 좀 더 크고 사춘기가 되는 시기가 올 때,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쳐 나가야 할지는 신앙인 부모로서의 숙제일 것이다. 왜 필요한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가르치고 성립해 놔야 하는 부모만의 숙제다.
앞으로도 방황하는 부분들을 인정하고 공감하지만 계속해서 고민하고 인격적으로 만나고 스스로 정립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
함께 신앙안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가르치는 것,
무엇보다 부모에게 편하게 말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 이것은 꾸준한 나의 과제다. 그리고 신앙인 부모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2) 교회 안에서
목회자 자녀의 손주들로서, 그리고 교회의 흔치 않은 '아이들'로서, 교회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작은 교회지만 얻는 큰 이로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른들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나 예의를 배울 수 있고, 관심과 사랑 속에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직까지는 교회 가는 것을 엄청 즐거워하고 신나하는 것을 보니 감사하기도 하다. 이것이 '아이들'로서 얻는 특혜인지 목회자 손주들로 얻는 더 큰 베네핏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교회를 빠짐없이 가고 있고, 매 예배를 참석하니 당연히 따라오는 관계 베네핏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있고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보다는 '친구들과의 관계와 연합'이 교회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는 때가 오고 있다. 이것을 만족시켜주지 못할 때 평신도와 그 자녀들은 (물론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겠으나) 교회를 떠날 수 있다. 대형 교회, 큰 모임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 떠나는 것 또한 요즘 시대의 불가피한 Needs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회자의 자녀나 그 자녀들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의 아이들의 고민을 어떻게 함께 품고 갈 수 있을까?
앞으로 몇 년을 더 이 교회에 있을지는 사실 모르겠다. 아빠의 은퇴는 점점 다가오고 있고, 후임자 목사님이 오신다면 난 주저없이 떠날 생각도 한다. 은퇴 목사님의 딸이 교회에 있으면 불편하지 않겠는가? 한 편으로는, 은근하게 그 날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는 얼른 왔으면 좋겠다.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교회를 '선택'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좋겠다. 나의 아이들도. 하지만 이런 마음 조차도 죄 같아서 함부로 표현하지도, 생각지도 못하겠다. 무튼 나의 아이들이 '목회자 손주'로서 '목회자 자녀'만큼이나 외롭고 무거운 길을 걷지는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바람이다.
아직은 어려서 크게 무거운 책임이나 기대치들이 있지 않으니 이 또한 아직까지는 다행이다.
부모가 되어서, 심리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내 자신의 과거를 '투사'하여 아이들을 바라보게 될 때 아주 쉽게 감정적이 되거나 그르친 판단을 하게 될 수 있음을 늘 주의하고 의식화하며 조심한다고 하지만 잘 안될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혹은 쉽게 우울감에 젖는 지점들이 바로 그런 부분들일 것이다. 내 과거의 모습과 겹치거나 비슷한 상황들에서 느꼈던 나의 감정으로 더 크고 과장하여 느낄 때가 아주 위험하다.
교회 생활,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로 이 '투사'를 조심해야 한다. 그저 내가 자라온 환경으로 아이들을 덧대어 보지 않도록, 미리 걱정하고 앞서지 않도록, 그리고 신앙이라는 이름하에 크게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도록, 매번 의식화하고 되물어야 할 것이다. 내 아이들은 나와는 또 다르게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음을 믿어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할 것 같다.
양보할 수 없는 것들-꼭 신앙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예의, 규칙, 규범 등-은 정확하고 명확하고 일관되게 가르치고 습관으로라도 들여 아이들을 교육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고민과 혼란, 어려움들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 아이들이 주저함 없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 이것은 목회자 자녀가 아닌 그저 한 부모로서 응당 해나가야할 숙제일 것이다. 이 과정이 쉽지 않을 테지만 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구하며, 우리 아이들을 인도하고 잘 자라도록 지켜주시길 또한 간구하며 그렇게 함께 가야할 테지. 목회자 자녀이자 목회자 손주들의 부모인 나,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