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기억 그리고
요즘에는 유튜브로 알쓸인잡이나 알쓸신잡 같은 프로그램의 클립을 자주 본다. 최근에 봤던 것은 살인자의 기억법 저자인 김영하 작가가 얘기하는 알츠하이머에 대한 담론이었는데 그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매일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며 결국엔 책도 냈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존해 있음을 얘기했다. 작가님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극한 상황에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쓴다.라고 얘기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말이 깊이 와닿았고 또 공감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꾸준히 일기를 썼는데 (물론 건너뛰는 날들도 많았다) 무려 노트 4권이 넘어가는 분량이었다.
일기를 쓰면서 중간중간 시도 썼고 백일장에 투고했고, 문학캠프에도 다녀왔고 몇 번 당선도 되면서 부모님을 놀라게 해드리기도 했다.
기숙사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더 자주 더 많은 글을 밤새 휘갈겨 썼는데 그건 항상 나에 대한 글이었다. 나의 생각, 내 취향, 내 기분과 같은 단순하고 직선적인 감정들을 휘발되기 전에 모두 적어내렸고 그 분량과 숫자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현재에 대한 방향을 잃을 때면 더 방대해졌다.
네덜란드에 오고나서부터는 일기를 쓰는 대신에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따라 만든 블로그는 대충 사진이나 올려놓는 낙서장에 불과했지만 코로나 시기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부터는 정말 작은 식단 까지도 빠짐없이 올리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네덜란드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때부터는 사실 매일매일 일상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했다. 사실은 이전의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고 때때로 가물거리고 때때로는 헷갈렸으면 누구와 보냈던 추억이었는지 조차 생각나지 않게 되던 순간에 나는 눈을 뜬 후부터 눈을 감기 직전까지 매일의 일상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이 점에서 알츠하이머 사례를 보고 나와 닮아 놀랐다. 그렇다고 내가 알츠하이머라는 얘기는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어떤 표현 방법보다 커다란 힘을 가지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내가 글을 좋아해서 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떠한 거대한 목적성이나 사명이 있던 것은 아니고 그저 나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것. 존엄을 유지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무조건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가치를 지킨다는 것. 인간은 누구나 글을 쓰며 누구나 표현하며 누구나 배출한다. 글을 쓴다는 것도 일종의 배출일뿐 이제 와서 별 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나의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그 가치로 귀결되는 행위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 내게 있어 무조건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나의 가치는 행복이고. 글을 쓰는 행위가 나의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님이다.
행복은 순간에 의해 기인하는 감정이라 불안하고 일시적이다. 행복을 이르게 하는 도구, 그러니까 행복을 느끼게 하도록 하는 그 어떠한 매개체, 물체 혹은 행동 또는 어떠한 현상 등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그 길은 언제나 또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꼭 건강하지만은 않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마라탕이나 초콜릿을 과하게 섭취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행복감을 줄순 있지만 결코 몸에 좋진 않다. 하루 온종일 좋아하는 게임을 하는 것은 그 과정 속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주지만 여러모로 행복을 위한 길 중에선 건강하고 건전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 달성을 위한 과정이나 방법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 때때로 취업소식과 휴가가 동일한 질량의 행복을 선사하는 것처럼, 우리는 쉼으로도 일함으로도 성취함으로도 놓아버리는 것으로도 언제든지 단편적인 행복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불안과 우울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이다. 근본적이며 정기적이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불안과 우울은 어떠한 성취나 획득으로 해소되는 감정이 아니라고 했다. ( 물론 이러한 방법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이런 부정적이고 쳐지는 감정들은 저들 스스로 원인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와 노력을 동반하지만 우울과 불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긴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생길 수도 있다.
과거의 나도 타인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현재의 나는 수많은 타인의 결합 혹은 집합이라는 의미로 어떠한 배출의 의미로 많은 것을 기록해 내는 나 역시도 현재의 나를 이루는 하나의 타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러한 모습까지도 사랑하는 것 같다. 지금은 그것보다도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일일이 나열하긴 힘들지만 글을 쓰는 것이 이제는 나를 이루는 많은 타인들 보다도 훨씬 후순위에 놓일 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 말인즉슨 내게 행복을 주는 요소들(happy object)이 훨씬 많아졌음이고 그건 역시 나는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더 많은 것들을 통해서 기쁨을 느끼고 있음이 확실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