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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Jan 23. 2024

유라시아 견문 Ⅱ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이병한 지음  서해문집


     모든 진실은 연속된 오류의 수정이다. 다양한 관점을 만나는 기쁨     


   <유라시아 견문 Ⅰ>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를 읽고 <유라시아 견문 Ⅱ>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를 사 읽는 일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본문 605쪽 분량으로 긴 호흡이 필요하다. 밑줄 긋고 지도에서 확인하는 정독은 하루 반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의 글이지만 격조 높은 여행기다. 여행기라고 하면 저자를 모독하는 것일지 모른다. 요즘 여행기란 것이 먹방과 과시에 치우쳤다는 주관적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필사의 노력이 있기에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거다. 일본어, 영어, 중국어, 아랍어를 이해하는 저자가 보고, 듣고, 인터뷰하고, 자료를 찾아 확인하며 풀어둔 글이다. 20세기 제국주의에 희생되었다가 다시 일어서는 동남아시아남부아시아아랍세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 미래를 조망한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박지원의 열하일기,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모자람이 없다.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에 견줄 만하다. 지리전공자, 세계사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 해외 영업을 하는 사람, 21세기 문명의 흐름을 조감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읽을 책 목록에 추가하면 좋겠다.  저자의 글에서 19~20세기 중반까지 영국이 유라시아에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그 행태를 보고 배운 미국은 또 얼마나 저급했는지를 본다. 이슬람 사회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울라마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가체제라는 개념이 지닌 병폐와 한계도 본다. 나아가 중국의 중흥과 인도와 이슬람 세계의 역할과 부활을 볼 수 있다. 인도의 미래는 G2이며, 이슬람은 21세기 최대종교라며, 이미 ‘다른 백 년’의 물결이 유장(悠長)하다고 본다.      


   <유라시아 견문 Ⅱ>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는 37개의 테마로 구성됐다. 버마와 미얀마, 인도의 재발견, 구자라트, 힌두뜨와, 글로벌 발리우드, 요가의 재인도화, 인도의 독립 영웅, 찬드라 보스, 펀자브, 카슈미르, 방글라데시, IS, 터키의 신오스만주의, 키프로스, 쿠르디스탄의 꿈, 아라비아의 나세르, 1979년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 이슬람학, 네오클래식 패션으로서의 히잡, 대안적 진실을 추구하는 알-자지라 등이다. 기존 지식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알지 못했던 것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미얀마는 영국과 인도의 중층 식민지였다. 버마라는 이름은 30개가 넘는 다민족,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 다종교 국가였던 미얀마의 중심을 양곤에서 만델레이로 옮기며 영국이 붙인 이름이다. 평지의 버마족을 제외한 산간 소수민족이 5천만 인구의 4할이다. 버마식 사회주의는 네윈이 표방한 것이다. 미얀마로 패주한 국민당군에 응전해야 했기에 군부에 힘이 실렸고 자발적 쇄국 정책을 편다. 1989년 소수민족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미얀마로 수정한다. 냉전기 태국은 CIA와 미얀마 소수민족을 무장시켜 미얀마 군정의 전복을 꾀했다가 태국이 민주정권으로 이행하며 미얀마의 자원과 노동력을 활용하려 미얀마 군사정부와 손을 잡는다. 산간 소수민족은 중국과 국경무역 재개로 이득을 취하는 상황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 인식이다. 

   책은 미얀마의 내전과 분열에 일본제국도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밝힌다. 임팔 전투는 영국군 50만 일본군 20만이 사생결단을 벌인 전투다. 버마족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일본을 선택했고, 소수인 카렌족과 카친족은 버마에서 독립하려 영국에 의지한 꼴이다. 해방 이후 버마족, 카렌족, 카친족 모두가 무장상태였다. 이로써 최장기 미얀마 내전이 시작됐다. 미얀마 독립 영웅이고 지도자였던 아웅산과 네윈은 일본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웅산은 전투 막판에 영국군과 내통해 일본을 향해 총을 쐈다. 영국은 소수민족을 따로 독립시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나 아웅산이 ‘버마 연방공화국’을 만들었다. 서른두 살에 암살당한다. 이후 초대 총리 우누는 미얀마를 불교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소련의 위성국이 되기를 거부하고 비동맹 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미얀마에서도 고종의 광무개혁처럼 마지막 황제 민동은 개혁 군주로 대대적 개혁을 실시했으나 영국의 군사력에 굴복한 거다.     


   현재 인도는 13억 인구에 실질 구매력 세계 3위로 세계사의 주역이라는 자의식이 강해지고 있다. 힌두 국가라는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인도인민당과 민족봉사단이 역할을 한다. 인도에서 2014년 모디 총리의 출범은 오랜 집권세력인 국민회의를 추락시킨 결과다. 모디는 간디-네루 체제를 종식한 하층 카스트 출신이다. 인도의 정체성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구자라트 주는 인도 발전을 이끈다. 네루대학은 인도 좌파의 거점이다. 인도는 종교혁명과 정치혁명을 아우르는 힌두형 문명국가를 만들어 가고 있다. ‘힌두뜨와’는 힌두 원리, 힌두性이다. 힌두뜨와는 무굴제국이 구현했던 ‘인도-페르시아 문명의 근대화’다. 뭄바이에서 시작된 영화제작은 발리우드를 인도양 연안국으로 퍼져 글로벌 발리우드로 성장하고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북미로 이주해 간 삶보다 남인도에서 동남아로 이주한 인도인들이 더 많다. 인도와 동남아가 긴밀한 까닭이다. 

   간디와 장제스의 입장 차이도 재미있다. 장제스는 간디를 인도 외에는 모른다고 평한다. 인도 독립에 찬드라 보스의 역할을 조명한다. 찬드라 보스는 간디와 달리 무장투쟁으로 영국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본 도조 히데키를 만나고 일본군과 한편이 되어 임팔 전투에 참여한다. 일본 패전 후 대만에서 만주발 전투기가 이륙했으나 폭발하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보스의 최후는 인도에서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2차 대전 종전 후 영국 총리였던 클레컨트 애틀리는 영국이 인도를 포기하는 데는 보스가 조직한 인도 국민군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실전경험을 가진 250만 인도군이 두려웠던 거다. 1947년 애틀리 총리는 인도/파키스탄 분할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펀자브에서 약 1천만 명, 인도 파키스탄 전체로는 약 1,500만 명이 이동했다. 20세기 통틀어 최단기간 최대 인구 교환이다. 다종교다문화가 공존하는 ‘펀자브 선’의 상실이야말로 대영제국이 남아시아에 남기고 간 최대의최장의최악의 유산이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과 인도가 초고밀도 군대로 국경을 관리하는 긴장 지역이다.      


   “파키스탄을 모델로 삼아 군부가 주도하는 반공주의적 근대화 이론을 정립한 이가 새뮤얼 헌팅턴이다. 냉전기 ‘파키스탄 모델’이 한국을 포함한 제3 세계로 널리 확산하였다.” 카슈미르와 오키나와는 강대국의 거대 프레임에 가려져 고통이 드러나지 않는 곳이다. 1959년 라싸 봉기에도 CIA가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중인전쟁에서 마오쩌둥은 물밀 듯 인도를 향해 밀고 내려왔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에 발목 잡혔던 트라우마가 중국의 일방적 종전 선언으로 중인전쟁을 끝냈다. 갤 브레이스의 ‘인도 모델론’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를 지원해야 한다는 미국 외교정책이다. 

   파키스탄의 전환 시대를 연 부토는 중국 없이는 아시아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개진한다. 1974년 라호를 범이슬람 회의에서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문명 모두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슬람 문명만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슬람 사회주의를 추진한다. 1979년 살인혐의로 피소되어 처형당한다. 미국이 보기엔 사회주의자에다가 핵무장 이슬람 국가를 추진하고 있었으니 위험해 보였다는 음모론이 있다. 부토 처형 이후 파키스탄은 친미 군부가 걸프만 산유국의 오일 달러를 지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부토가 제거된 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파키스탄 안보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파키스탄의 군사독재 유지가 오일달러 사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내용이다. <역사의 종언>이란 희대의 논문에서 보듯이 그는 일본계 어용학자다.  반기문과 UN 사무총장 경쟁에서 떨어진 인도 샤시 타루트와 인터뷰 중 인도는 남부 아시아에서 Neighbor First 정책을 외교 책의 첫 순위라고 밝힌다. 이슬람 세계의 『지혜의 집』에도 인도의 문물과 학문이 역할을 했음을 말하며 평화 공존이야말로 인도 문명의 내재적 성격이라고 말한다.     


   칼리프는 영토의 지배자로 그치는 개념이 아니라 전 세계 무슬림 공동체, ‘움마’의 정치적 지도자다. 이슬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나 총리는 그저 ‘부족장’에 그칠 뿐이다. 역사는 시학적 시간이지 수학적 시간이 아니다. 역사 없는 시사와 사론 없는 이론이 오인과 오판을 초래한다.      


   터키 조국 근대화의 요체는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다. 세속화는 이슬람을 겨냥했고, 민족주의는 오스만 제국을 표적으로 삼았다. 케말 파샤의 정적으로 ‘사이드 누르시’는 칼리프 폐지에 결연하게 반대한다. 누르시는 무신론의 공산주의 국가를 끔찍하게 여겼다. 과학과 이성, 이념만으로 출현한 나라가 백 년도 갈 수 없을 것이라 장담했다. 그의 책 『빛의 책』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터키의 ‘궐렌 운동’은 교육과 언론 사업에 힘을 쏟아 누르시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궐렌 운동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학교는 글로벌 움마를 위한 글로벌 학당이 되었다. 누르시는 논리로 설복하기보다는 공명과 공감으로 감득시켰다. 현재 터키의 대통령 에르도안은 집권 이래 10년 넘게 재이슬람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기층의 지지가 탄탄하다. 에르도안의 이슬람 민주주의는 약자와 빈자를 먼저 보살피는 것이 이슬람주의 정당으로서 왕도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슬람 세계 왕정국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슬람 민주주의가 다른 백 년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키프로스의 분단에도 영국이 개입했다. 1878년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려 진주한 영국군은 러시아의 위협이 사라지면 오스만제국에 돌려준다고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리스정교를 믿는 남부 키프로스인은 그리스에, 무슬림인 북부 키프로스는 터키에 귀속되길 원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제는 통합을 꿈꾼다. 

   쿠르디스탄의 꿈은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사이크스-피코 협정’ 밀약으로 좌초되었다. 포스트-오스만 공간을 양국이 쪼개어 갖는 분할책이었다. 미일 간 카스라-태프트 밀약처럼…….     

  

   이집트는 1922년 영국이 일방적으로 이집트는 독립 국가임을 선언한다. 영국군대는 주둔하면서.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고 대영제국의 보호국으로 삼은 거다.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거나 마찬가지다. 나세르는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패한 후 자유 장교단을 결성하여 쿠데타를 일으킨다. 영국군 완전철수 후 기념행사에서 총성이 울렸으나 군복을 추스르고 즉석연설로 향후 15년간 이집트를 넘어 아랍세계를 진두지휘하는 카리스마적 리더로 탄생한다. 수에즈운하 국유화, 라디오 방송을 통한 아랍의 단결을 추구한다. 그러나 6일 전쟁에서 패한 충격으로 건강이 나빠져 심장발작으로 급사하니 52세였다.      

   아랍민족주의에 대한 의견 대립은 아랍민족주의를 무슬림을 분리시켜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이이제이 책략이라고 성토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2016년 ‘알-자지라’에서 아랍세계 9개국 대상 여론조사 결과 이슬람법(샤리아)이 국법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견해에 50~70%가 지지한다. 이는 반수 이상이 재이슬람화를 수긍한다는 의미다.      


   1979년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은 미국의 중동 정책 근간을 뒤흔든 사건이다. 미국은 말(馬)을 바꾸어 이라크를 지원하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사주한다. 호메이니 장례식에 900만 명이 참배하여 애도를 표했다. 오늘날 이란은 성과 속의 이원집정제 국가다. 호메이니의 일상은 자기 수양으로 빛을 발했다. 세상을 바꾸는 첩경은 나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이슬람 세계는 온통 1979년 이란 혁명에서 정치적 영감을 얻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란은 페르시아의 후예로 서와 동쪽을 포용하며 이슬람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유라시아 견문 여행 중인 저자는 아랍어 문사철을 소개한다. 문학에는 <천일야화>, 역사라면 이븐할둔의 <역사서설>, 철학은 <코란>을 원전으로 읽으려 노력한다. 울라마는 만권의 책을 읽은 사람으로 무슬림 사회의 정신을 이끌어간다. 이슬람 시각에서 울라마들이 평가한 20세기는 ‘세속화의 시험이 실패한 세기’로 정리된다. 근대 유럽의 법에 의한 지배를 이슬람에서는 소수 사람에 의한 지배로 본다. 대신 이슬람 사회가 법의 지배로 다스려진다는 논리는 수긍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코란을 배우고 암송하며 매일매일을 코란을 잊지 않고 사는 삶이야말로 법의 지배라는 논리다. 우리는 법을 교과 일부로 배울 뿐이다. 유재석이란 개그맨이 헌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수준의 나라다.      


   오바마 독트린 : ‘중동은 이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아니다. 동아시아가 가장 중요하다. 중동에 관여를 계속해도 사태가 개선되기 힘들다. 고로 미국은 중동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의미다. 국제주의의 다음 불장난은 중동이 아니라 동아시아일지 모른다.

   ‘시비를 가리고 포폄을 주저치 말아야 한다. 자신을 걸고 써야 한다. 자신을 지우고 쓰는 글은 문장이 아니고 데이터다. 인문은 인과 문의 결합 즉 사람의  흔적이다.’는 저자의 글 쓰는 자세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관점과 언어로 조선을 마감하지 못했다. 백 년간 따라 하고 따라갔을 뿐,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를 막론하고 재이슬람화는 21세기의 가장 강력한 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재이슬람화의 물결을 마냥 퇴행이라고 보지 않는 것은 “어제와 같은 오늘에 감사하지 못하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정체된 것으로 여기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근대 정치가 지속하는 한 임박한 파국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 탓이다.    

 

<유라시아 견문 Ⅱ>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는 서해문집에서 2018년 3월 초판 1쇄를 본문 605쪽 분량으로 발행했다. <빛의 책>은 검색해 보니 번역본이 없다.     


P.S. 2018.9.26.(수)에 쓴 글을 수정 보완한다.

     <유라시아 견문 3>은 25일(목)에 공유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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