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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대륙 20세기 유럽 현대사

마크 마조워 지음

by 노충덕

암흑의 대륙


우리의 삶은 서구 문명의 방식을 대부분 따르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두 축으로 보면, 산업혁명 이전에 서양의 삶의 수준은 동양에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후 동양은 서양의 힘에 눌려 지내야 했고, 대국굴기에서 중국이 선언하듯 더는 눌려 지내지는 않으려 한다. 슈펭글러가 서구의 몰락에서 세상의 중심이 동양으로 향하고 있다는 예측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고, 한때 한국의 과대망상증 식자들은 우리가 동양의 중심이 된다고 떠들어 대고 정치인은 튀겨서 써먹기도 한다. 미국은 아직 죽지 않았고, 패권은 백 년도 더 갈 거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세계를 주도했든, 말아먹었든 유럽은 서구의 중심으로 300여 년 간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암흑의 대륙』은 양차대전과 더불어 20세기 유럽의 현대사를 다룬 책이다. 『포스트 워 1945~2005』 1. 2권과 함께 유럽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고 읽는다. 『포스트 워 1945~2005』는 2010년에 사 두고 이런저런 핑계로 읽지 않고 있다. 『암흑의 대륙』 1판이 2007년에 나온 것이나 내용이 1945년 이전부터 다루고 있어 먼저 읽는다.


11개 장으로 구성한 『암흑의 대륙』 서문에서 저자 마크 마조워는 “유럽은 역사가 오래된 국가와 사람들의 대륙이 아니라 20세기를 전후로 정치적 격변과 자기 변신을 경험한 젊은 대륙”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역사를 승자의 편에서 본다. 예로, 냉전이 종식되었기에 자유 민주주의가 유럽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의 여러 투쟁과 불확실성 가운데서 비롯된 하나의 결과일 뿐이라는 새로운 역사 해석이 필요하다. 그런 역사 해석이 정치적으로는 덜 유용할지 몰라도 진실에는 더 가깝다.” 이런 관점에서 “유럽에서 자유주의는 여러 가지 체제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며 다른 것들도 존재했다. 유럽의 20세기는 이들 가치 체계 사이에 벌어진 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나치즘, 공산주의, 서유럽의 자유 민주주의를 두고, 1차적으로 볼셰비키가 자유 민주주의를 도와서 나치즘을 쓰러트렸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나치즘에 자유 민주주의 세력은 당했다. 2차적으로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자유 민주주의가 승리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치즘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20세기 초 의회중심의 자유 민주주의의 비효율과 참정권 요구 수준의 권리 강조, 개인주의 중심의 자유민주주의가 형편없는 수준이었음을 밝힌다. 이에 비해 나치즘은 개인보다 집단, 공동체의 선과 이익을 위해 효과적인 선전으로 사람을 끌어들였음을 보여준다. 양차 대전을 마치고 민주주의는 변화하여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이룬 것으로 본다.


몇 가지 기억할 것들이다.

“독재자나 폭군 한 사람을 자유의 적으로 내세우게 되면,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도전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제대로 살필 수 없다.”(1940, 마이클 오크쇼트)

“1920년대 꽃집 주인들과 문구점 주인들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 날’은 모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보여 준다.” 이는 1920년대 출산율 저하를 국력의 쇠퇴로 인식하던 당시 유럽사회의 모습이다.

“현재 훨씬 더 개인주의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민족과 인종의 쇠퇴․퇴보․재기에 대한 다양한 관심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복지 정책들이 등장했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과 소련의 등장은 유럽 자본주의에 대한 전례 없는 도전이었다. 1920년대 초 유럽의 많은 정치가들은 두려움에 떨었으며, 유럽 경제의 재건이라는 과제에 몰두하게 된다.

“나치 이론가들이 제시한 미래 청사진을 통해 1938년부터 1945년 사이에 구체화된 신질서의 대략적인 윤곽을 추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유럽 발전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경험은 없었다. 히틀러나 스탈린도 잘 알고 있었듯이 제2차 세계대전은 일련의 군사적 충돌이나 외교적 협상을 넘어서는 문제였다. 그것은 유럽 대륙의 사회적, 정치적 미래를 둘러싼 투쟁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전례 없이 집요한 폭력적 체제의 지배를 충격적으로 경험했다. 이 체제는 8년 동안 지속되면서 유럽인들의 사회적, 정치적 태도에 큰 변화를 일으켰고, 그 경험을 통해 유럽인들은 민주주의의 미덕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다.”(마크 마조워)

나치 독일은 유럽을 정치적 측면에서보다는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각했는데, 특히 유럽에 독일식 먼로주의와 결합된 광역 경제권을 건설하려 했다. 이는 전후 유럽 공동시장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히틀러는 우크라이나를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 견준 관점에서 지배하려 하고, 소수의 영국인이 다수의 인도인을 지배하는 것을 연구하였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나치의 학살정책(최종적 해결책)은 동유럽 전체의 인종적 재구성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2차 대전 중 수많은 인종 이동(해외에 나가있던 독일인을 보호한다는 명목, 후에 이 독일인들은 다시 독일로 쫓겨 가는 소수민족 신세가 되지만)이 있었다.


2차 대전 중에 등장한 사상들 가운데 한 조류가 전전의 경제적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주의의 폐해를 강조하며 국가가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과 인권과 시민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이었다. 즉, 정치와 법의 영역에서 국가에 대한 개인의 우선성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었다. 나치 점령의 경험은 실존주의 사상이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샤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세상에서 소극적으로 사는 것 역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매국노나 부역자에 대한 조치 유형 : 즉결 처분, 린치, 공개 모욕을 통한 대중의 자발적인 복수도 있었다. 그러나 종전 후 10년 동안의 조치는 물렁해서 놀랍다.

숙청자의 수는 공식적 재판과 비교할 때 많았다. 이탈리아(최대 1만 5천 명)와 프랑스(최대 1만 명)가 재판을 받았다. 공식적 재판은 느리게 진행됐고 내부로부터 커다란 비판을 받았다. 기업가들은 대개 가벼운 처벌로 끝났고 중벌이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면은 계속됐고 1950년대 초가 되면서 사법 수사가 사라졌다. 노르웨이, 네덜란드에서 25명, 40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프랑스에선 6천7백 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실제로 집행된 사람은 적었다. 중요하게 활용된 것은 ‘시민권 박탈’이었다. 정부 관리나 경찰, 군대에 대한 숙청은 훨씬 더 모호했다. 이탈리아에서 나치의 잔재를 없애 버리기란 불가능했다. 새로운 정치 엘리트들은 ‘탈 나치즘’과 ‘효율적인 통치 기능 회복’을 두고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같은 사람이 제복만 갈아입는 식이었다. 법조계, 교육계, 기업계 등 사회의 다른 핵심영역에서는 형식적인 수사만 진행되었다. 국가는 다시 태어났지만, 국가의 통치 기구들은 대부분 그대로였던 것이다. 레지스탕스 진영에서는 이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했다. 1943년 당시에 자신을 괴롭혔던 바로 그 경찰들이 5년 뒤 다시 그들에게 명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그들은 허를 찔렸고 ‘국가의 연속성’ 앞에 무력해진 자신들을 발견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대한민국과 비교한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지. 친일매국노들, 그들의 후손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현실과 공주의 현 국회의원도 그중 하나라는 사실, 국립묘지에 친일파를 묻고, 국가를 이끌어가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참아왔던 불만은,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다. (알렉시스 토크빌 1968)


『암흑의 대륙』은 후마니타스에서 2007년 초판을 내놨으나 독자는 2012년 1파 3쇄, 본문 644쪽 분량을 읽은 것이다. 2016년 10월 15일(토)은 가봐야 할 예식장도 가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이 책만 읽었다. 이름하여 폐문독서!!

역자 후기에서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이 민주주의를 택한 것은 오랜 전쟁으로 인한 피로와 전후에 따라온 경제 호황 덕분이지 자유주의에 대한 이념적 헌신의 결과는 아니다.

1989년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가 경쟁에서 이긴 타살이 아니라 소련 자체의 모순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개인주의를 기본 바탕으로 삼고 있지만, 승자 독식의 효율을 지상주의로 여기기 때문에 전체주의에서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진지한 노력과 성찰 없이는 어떤 국가나 민족이든 파시즘이나 집단적 광기에 의해 함몰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P.S. 2016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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