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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Sep 30. 2023

서로 알기만 해도 친해질 수 있다

여러 권의 책들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엮는 주제 서평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냐고 스스로 묻는다. 질문에 관한 답을 정체성(Identity)이라 부른다. 사회의 정체성은 역사적 환경과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 주위 환경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게 한다. 국가와 민족도 마찬가지다. 응집력을 가진 사회는 정체성이 있다. 정체성이 없다면, 외부 힘에 따라 휘둘리기 쉽다. 역사를 통해 정체성이 없는 민족과 국가는 사라져 갔다. 청을 세운 만주족은 한족에 동화되었고, 신대륙의 마야, 아스텍, 잉카 문명은 흔적만 남겼다. 히틀러의 제3 제국은 왜곡된 정체성 탓에 세계사에 오점을 남기고 사라졌다. 정체성은 구별이지 폐쇄성과 같은 뜻은 아니다. 

   정체성과 정체성 혼미는 상반된 개념이나 개방적인 태도는 정체성에 상반된 개념이 아니다. 정체성은 오히려 동태적인 개념이다. 개방적인 자세는 정체성을 새롭게 하거나 강화, 확립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역사, 종교, 정치,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개방적인 자세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중국의 학문이 유럽의 근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할 근거가 적지 않다. 둘째, 크리스트교 세계의 프로파간다 영향으로 조작된 이슬람에 관한 오해와 무지는 새로 보기를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셋째, 한민족이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거나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양쪽이 서로에 관한 인식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넷째, 예술 세계는 시대정신을 담은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미술 분야의 경우 전문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미술작품은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근대 형성에 이바지한 공자와 맹자

   유럽의 근대를 형성하는데 중국의 학문 즉, 공자와 맹자의 철학이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충돌론>에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중요하지 않게 되지만, 앞으로 크리스트교와 이슬람이 만나는 지역에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인류에게 기독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분쟁이 평화를 유지하는 관건이 될 것이란 주장이었다. <문명충돌론>은 서구인에게 세계를 한눈에 바라보는 시각과 전망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프랑스 정치가 자크 아탈리는 <등대>라는 책에서 문명융합론의 관점으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될 것이라 기대한다. 황태연은 <패치워크 문명의 이론>에서 헌팅턴의 주장은 서구중심주의자의 독단에 가까운 문명 해석이라 평가한다.

   문화 확산이란 차원에서 고립된 지역이 아니라면 문화는 접촉을 거쳐 변용되고 발전한다. 교류를 통한 문화의 접변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패치워크 문명이론이다. 

    패치워크(patchwork)는 ‘헝겊, 가죽 조각들(patches)을 꿰매고 모아 붙여 짜깁기한 ‘쪽 모이’ 식의 옷이나 보자기, 우산, 텐트, 누비이불, 축구공 등 섬유, 가죽제품을 말한다.’ 패치워크 문명이론은 독자적으로 발달한 문명들이 타 문명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명을 발달시켜 간다는 관점이다. 타 문명에서 받아들인 요소가 자문명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더욱 발달시킨다는 문명이론이다. 문명충돌론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문명을 바라본다.     

   

   문명의 패치워크 사례를 ‘계몽주의와 근대유럽’으로 쉽게 풀어놓아 이해할 수 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이성에 맞지 않는 오류를 수정해 가기에 인류는 발전해 나간다는 게 계몽사상이다. 로크의 저항권,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루소의 사회계약론, 밀의 자유론이 그러하다. 서양에서는 이들이 유럽인의 정신세계를 근대화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황태연은 이런 계몽사상가들이 자생적으로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고, 헬레니즘이나 헤브라이즘이라는 서양 문명의 원류로부터 발전시킨 것도 아니라고 한다. 17~18세기 유럽의 선교사, 탐험가들이 중국에 와서 배워간 공자와 맹자의 철학이 유럽 지식인의 정신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여기에서 계몽주의가 태동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근대철학은 공자 철학을 패치워크 하여 이룩한 것이라는 말이다. 수많은 학문적 사례를 증거로 제시한다. 어떻게 유럽 지식인들은 계몽사상을 생각하게 됐을까? 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반면 동아시아 세계는 유럽이 근대화될 때, 공자 철학을 폐쇄적인 성리학으로 붙들어 둔 탓에 식민지를 경험하고 고생했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중국, 한국, 일본의 정치, 경제력이 유럽과 미국을 능가하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라고 본다.      


유럽에서 일어난 중국 위협론의 기원은 17~18세기 신을 부정한 중국의 유학이 유럽에 전해진 것에 있다. 케네, 볼테르, 라이프니츠, 빌핑어, 칸트, 헤겔이 중국의 유학을 유럽에 확산시켰다. <대학>이 처음 번역된 것은 1592년이다. 쿠플레의 저서 <중국의 철학자, 공자>는 17, 18세기 유럽 지식인의 필독서였다. 특히 <맹자>는 혁명을 설파한 불온서적이었는데, 주권재민을 설파하고, 성선설로 원죄론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인의예지의 존중으로 인권과 민권에 눈을 뜨게 만든다. 


   공자의 철학이 유럽에 전해져 유럽을 일깨웠음을 강조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구사회가 식민지를 경영하며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는 한계점이 있지만, 근대화를 이루는 데에는 개방적인 자세가 있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서구의 합리론적 정치 철학에는 지배 욕구가, 과학기술에는 자연정복 욕구가 내재한다고 평가한다. 이에 비하여 경험주의는 공감적, 실용적, 인간적, 친자연적 경험주의 세계관을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이에 황태연은 공자 철학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려 한다. ‘창조적 재해석’이란 공자 경전을 토대로 다양한 관점에서 새롭게 절차탁마하여 동아시아인과 세계인을 끌어당기는 새로운 현대철학을 창조하자는 것이다. 구체적 방법론으로 다른 문명권의 다양한 철학 사조들과의 ‘패치워크’를 제시한다. 패치 워킹을 통해 개선한 공자 철학을 ‘공자주의’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서구 경험론과 공자와 맹자의 철학은 서로 인접해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시대철학(패치워크)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새뮤엘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비판적으로 보며, 황태연의 「공자와 세계 1, 2, 3, 4, 5」와 「패치워크 문명의 이론」에서 얻을 수 있는 관점이다. 


생활양식으로 보는 이슬람교

   우리는 글로벌 가치사슬 안에서 교역으로 국가의 경제를 이끌어 간다. 우리에게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교역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슬람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엄 촘스키는 “미국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미국인의 이슬람에 대한 의식은 테러, 일부다처, 폭력, 무지한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라고 평가한다. 미국식 교육과 미국에 편향된 현대 외교,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인의 의식에 영향을 미쳐왔기에 우리의 의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지혜의 집>,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터키 민족 오천 년사>, <코란>, <무함마드>, <이슬람>, <그리스 사상과 아랍 문명>, <이슬람 문명> 등 이슬람과 관련된 책이 꾸준하게 출판된다. 아랍 속담에 “서로 알아야 친해진다”라고 한다. 프로파간다에 따르기보다 내 판단으로 이슬람을 이해하고 싶다. 정약전과 정약용이 선교 때문에 신자가 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번역된 <천주실의>을 읽고 연구하며 스스로 예수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면 볼수록 아랍 세계에 대한 의식의 오류를 발견한다. 

   프로파간다로 가려진 진실을 찾아가 보자. <이슬람 문명>의 저자 정수일은 신앙체계가 아닌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을 다루는 ‘합일된 생활양식’으로서 문명 전반을 소개한다. 이슬람 문명 개론서로 손색없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나뉘는 과정과 차이 등에 관한 부족함만은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교역 10위 국가로 성장하였으나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경제적 불평들을 생각할 때 이슬람이 추구하는 가치에 주목해 볼 만하다. <이슬람 문명>에 따르면, “가진 자의 재산 중에는 못 가진 자의 몫도 있으니” 와 같이 부의 공정한 분배를 통해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이슬람 경제관이 추구하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이슬람의 상속 제도는 직계와 혈족을 포함해 상속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상속분(相續分)도 대단히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배분하고 있다. 경전과 하디스에서 사회보장책으로 ‘① 구차하여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의 부채는 국가가 일부 혹은 전부를 부담한다. ② 유산보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사망한 자의 부채는 국가가 부담한다. ③ 국가는 유공자나 그 후예들의 생활보장을 책임진다. ④ 근로자들은 주택이나 결혼 비용 등에서 국가적 혜택을 받는다. ⑤ 종교기금은 이슬람들의 사회복지 사업에 쓴다’고 제시한다. <관자>에서도 빈자와 전쟁에서 공헌한 자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이는 고금의 진리인데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안타깝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슬람에서 소비나 소비재는 항상 물질적으로나 윤리 도덕적으로 유용성이 있어야 한다는 소비윤리가 있다. 술은 도덕적 가치나 유용성이 없는 무용지물이라 금하는 것이다. 코란에는 이자를 금지하는 계시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무함마드는 배움을 중요하게 여겼다.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읽고 쓰기를 익히며 지식인을 존경하라고 강조하며, 이슬람교 전파를 위해 외국어까지 배우라 권했다. 전쟁포로가 이슬람 어린이 10명에게 읽고 쓰기를 깨우쳐주기만 하면 곧 석방했다고 한다. 

   이슬람은 하나의 영혼에서 창조된 남성과 여성은 동종의 인류로 동등하게 존재한다는 믿어 남녀는 서로 보호자요 관리자요 협력자임을 알게 한다. 이슬람에서 결혼은 사회적 의무이자 종교적 의무다. 혼인문제에서 여성은 자기의 주권을 행사한다. 이슬람법에 따라 여성은 자신의 사유재산에 대해 절대적 권리를 행사한다. 의무 부여와 수행에서도 여성을 동격 시 한다. 부모에 대한 효도를 알라의 지고한 명령으로 받아들인다. “나 이외에 아무도 경배하지 말고 부모에게 선행을 베풀고, 부모 중의 한 분이나 두 분 모두가 늙으시면 절대로 싫다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지 말고 좋은 말만 할지어다”라고 코란이 말한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는 발생론적으로 보면 여성 보호를 포함한 사회연대라는 윤리적 요청에 부응하여 출현한 것이다. 우리 고대사의 ‘형사취수제’도 같은 맥락이다. 

   <이슬람 문명>의 저자 정수일은 우리 의식의 편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오늘 이슬람에 대한 여러 가지 무지와 오해는 서로의 만남을 난감하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 주 온상은 이른바 서구 문명 중심주의다. 이슬람을 한 손에는 코란, 다른 손에는 검이라는 폭력 종교로 오도하고, 근대의 이슬람 부흥 운동에 엉뚱한 이슬람 근본주의 딱지를 붙여 호전 종교로 몰아붙이는 것도 그 진원지는 예외 없이 서구 문명이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보는 남북관계

   남과 북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남북이 분단된 이래 70년이 넘어간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 여유 없는 사람을 살펴보는 일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우리가 북쪽에 관한 인식을 되돌아봐야 할 때가 지금이다. 내부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점이 있을 수 있다. 남과 북을 드나들며 연구한 학자가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미처 몰랐던 북한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면 다행이지 않을까.

   <선을 넘어 생각한다>에서 선은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 사이에 쌓인 불신을 은유한다. 책은 냉전과 냉전 시대를 살아오며 같은 민족임에도 서로를 증오해야만 했던 의식을 깨뜨린다.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독서의 효과라면, <선을 넘어 생각한다>가 주는 관점은 새롭다. 그만큼 자칭 보수는 물론 진보라는 사람까지도 사고가 매몰돼 있음을 방증한다. 질문과 답으로 구성한 책의 내용을 따라가 보자. 

여러 주제에 따라 질문과 답변을 풀어놓았다. 그중에서 ‘북한은 과연 붕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아니요’라 답하며, 이유를 집단결정체제, 국가의 정통성, 기득권층 차원에서 민중봉기나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설명한다.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방식이며, 북한 붕괴의 결말을 독일이라기보다 시리아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시리아 내전을 떠올리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압박과 인내는 북한이 중국에 종속되게 하는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북한은 통제되는 시장이 있다며 자본주의 시장과의 차이를 설명한다.

   이외에도 ‘미치광이 혼자 북한을 지배하는 것 아닌가’에 대한 답변에서 포악한 독재라는 프레임은 프로파간다로 해석한다. 김정은의 목표는 덩샤오핑이라며, 조선노동당의 운영 방식을 알려 준다. 장성택 처형도 그가 개인주의를 추구한 결과로 보고 있다.

   ‘선군정치가 군부독재와 같은 것이 아닌가’에 답하며 군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들에게 배우자, 군대가 인민들의 생활을 도우라고 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마오쩌둥이 옌안 장정 과정에서 보여 주었던 백성과 군대의 협력을 모티브로 한다. 북한 가정에서 수도꼭지가 고장 나면 군부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사례를 소개한다.

   외국인 억류에 대한 의견은 예상을 벗어난다. ‘북한은 외국인 억류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 북한이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요구하며 체면을 세우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돈을 요구하며 흥정하기 위해 외국인을 억류하는 것은 북한 체제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북한이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그런 식으로 북한을 대하기 때문에 북한과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시각은 냉전 시대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을 통해 다른 방향과 각도에서 북한을 대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자고 한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에 관해서는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 1, 2, 3>권의 내용과 같다. 혈맹이기도 하지만 밀고 당기는 사이다. 우리가 일부에서 우려하듯 중국의 속국처럼 취급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보는 남북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북정책의 역사를 노태우-김대중-노무현의 길과 김영삼-이명박-박근혜의 길로 나눈다. 영화 <대부>의 명대사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다”를 들어가며 우리가 주도하며 제안으로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작권도 없는 군대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우스울 뿐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전문가의 감식안으로 보는 예술

   시대상을 반영하는 미술 분야에서, 전문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의미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 하지 않는가. 전문가가 보는 것은 보통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다. 전문가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혜안을 갖고 있다. 전문가의 감식안을 느껴보는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한 까닭이다.

   옛 그림을 감상할 때 “그림의 대각선 길이 1~1.5배 거리에서 천천히” 감상하고,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감상하며, “그림을 찬찬히 봐야 한다”라는 감상의 원칙이 있다. 이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통해 얻는 전문가의 시선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재미있게 읽으려면, 서양사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와 미술을 공부한 작가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관>이 돋보인다. 서양의 그림을 감상할 때 구체적인 역사와 시대 배경을 알면 그림의 아름다움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몇 가지 전문가의 관점에서 배운다. 

   ‘고전 조각의 이상적인 남성상이 투사된 흰 피부의 키 크고 잘생긴 남성’이라는 예수의 전형이 탄생하는 과정과 BBC의 합리적 추론(검은 피부의 육체 노동자)을 소개한다. 어떻든 위대한 성인이자 스승임은 틀림없지만, 외모지상주의의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는 작가의 시선을 본다. 독일의 미술사가 빙겔만에서 자리 잡은 ‘백색의 미학’은 과학의 발전으로 고대 조각이 대부분 채색되었음이 밝혀졌으나,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경로 의존성을 쉽게 벗어나지 못함을 지적한다. 피그말리온을 리얼돌(real doll)의 창시로 보는 관점은 교육계에서 중시하는 ‘피그말리온 효과’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관점이다. 학생은 교사가 기대하는 대로 성장한다고 믿고 가르친다. 나아가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보고 싶다. 스페인에 가면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를 보기 위해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이것이 전문가의 힘이다.     




   정체성은 개인의 존재하는 모습이고, 지역성과 국민의 특징이다. 역사, 종교, 정치, 예술 분야에서 정체성은 개체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가 유기적인 결합의 결과다. 개방성을 바탕으로 행해지는 교류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하기도 한다. 

   중국에 다녀간 유럽의 선교사와 탐험가는 유럽과 다른 중국의 공자 철학에 놀랐고, 이를 유럽에 소개하여 유럽인의 의식을 깨워 계몽주의 시대를 열었다. 서양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만들어진 이슬람에 대한 테러와 폭력이라는 오해는 이슬람을 생활양식으로 본다면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은 냉전 시대의 사고방식을 벗어나 공존해야 할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정신을 반영한 예술 세계에서는 전문가의 감식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이 역사와 현실을 알게 된다면 지난 역사와 달리 다툼은 줄고 평화로운 세상이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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