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한 글쓰기 강의 2

글을 써야 하는 이유

by 영점오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두 번째 글쓰기 강의를 해보려고 한다. 1편을 본 사람들은 조금은 나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을 확률이 높지만 지금 이 강의만 듣더라도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 자신하는 바이다.


우선 나는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 지 오늘 11일째인 초보 작가이다. 하지만 1편에서는 나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기발한 생각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하여 어떠한 시도를 실험같이 해야 하는지, 또한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용기 있게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그리고 잘 모르는 분야와 다른 장르에 도전하여 글을 쓰는 유익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하루가 지나니 말하지 못했던 것이 남은 것 같아서 다시 강좌를 열었다.


오늘의 주제는 '한 번뿐인 삶이기에 글을 쓴다!'라는 커다란 명제를 놓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내가 느낀 나름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한다.



1. 글쓰기는 고정관념을 깨는 유익한 도구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하니 말로 하기에는 민망한 생각들도 글로는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실명을 들어내고 어느 대형서점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주 목요일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 '그리고'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 선 것은 다름이 아니고 글에 관심이 있으나 쓰기가 두려운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짧은 강의를 들어주십사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선입견을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저의 글쓰기 강의를 들어주십시오. 그렇다면 분명 여러분들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이력에 민망하긴하지만 분명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도, 저에게도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만약 여기까지 말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면 그 순간 서점에서 책을 보던 시민들이 들고 있던 책을 던지지만 않아도 절반은 성공한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현실을 안다. 현실에선 아마도 나를 미친 사람으로 보던지 아니면 한쪽에서 호기심에 듣고 있던 소수의 사람들도 이윽고 다 알만한 내용을 떠벌리는 것처럼 느껴져 비웃음만 남기고 떠나갈 것이다. 어쩌면 천 명이나 만 명 중에 한 명만이 나의 강의내용보다 그 '발상과 용기' 자체에 큰 감명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넬지 모른다.

"당신의 강의는 정말 기발한 실험을 현장에서 눈으로 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강의를 들으며 나는 왜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나는 고마운 그에게 또다시 대답할 말이 준비되어 있다.

"당신이 저와 같이 못하는 것은 기발한 생각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천 명 중에 구백구십구 명에게 욕을 먹기 싫을 뿐이죠. 사실 저는 바보고 당신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이제 알겠는가? 오직 글쓰기만이 온갖 기발한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고 누군가의 비난이 두렵다면 차단하면 그만인, 세상의 모든 고정관념을 깰 완벽한 공간인 것이다. 우리는 고정관념을 깨는 방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 기술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행할 의지가 역설적으로 고정관념이란 벽에 막혀 있는 것이다. 나는 한 가지 악기를 지난 이십삼 년간 전공한 사람이다. 그래서 무언가 가르칠 수 있으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함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 내가 가르친 학생이 나보다 잘 된 경우도 있으니 그 가르침보다 배우는 학생의 재주와 이해력이 더 중요할 수 있음도 깨달았다. 글을 쓰다 보니 또다시 무언가를 그토록 열심히 배워야 하는 것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글들을 써 내려가고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는 중이다. 또한 오랜 시간 전문적인 소양과 기술을 쌓지 않으면 좋은 소리를 내기조차 힘든 클래식 현악기와 다르게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과 삶에 대한 철학이 큰 역할을 하기에 남다른 생각만 할 줄 안다면 누구나 다른 사람을 가르칠 자격이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송구한 글쓰기 강의'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 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열흘만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말인가! 지금 나는 이 세상이 아닌 '글'이라는 세상에서 살기에 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



2. 아무나 글을 쓰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써야 하는 것이 글이다.


사람마다 개성과 취향이 다르기에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고 외향적인 사람들 중에는 독서나 글을 쓰는 취미가 없는 경우가 간혹 있다. 슬픈 일이다. 글쓰기가 어렵고 소수의 재능 있는 사람들만의 영역이라는 인식은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재능 있는 작가들이 심어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뛰어난 작가들은 본인이 신이 아닌 이상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도 과감히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그 물음에 스스로 대답하려다가 피투성이가 되고는 한다. 물론 피투성이가 되었다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데에 분명히 한걸음 나아갈 위대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자신의 고통이 숨겨지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그 위대한 작가들도 시작할 때 어설펐던 글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초보 작가가 용기를 내서 글을 쓰려고 하면 침팬지가 이제 글을 배웠나 싶을 정도로 민망한 문장때문에 속으로 '역시, 아무나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라고 생각해 버린다. 나는 브런치에 작가로 합격하기 전, 성인이 된 이후로 이력서 외에 제대로 쓴 글이 하나도 없었다. 일기도 초등학교 때 검사받기 위하여 쓴 저학년 이후로는 쓰지 않았으며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장려상 같은 것을 받은 적은 있지만 진지하게 글을 쓰려는 시도는 십 대 후반에 한창 빠져있던 판타지 소설을 썼던 일 외에는 없었다. 그 판타지 소설조차 그 동기가 너무나 유치하여서 '나도 이 정도 재미있는 먼치킨 소설은 쉽게 쓸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돈이나 좀 벌어봐야겠다'였으니 그 사고의 수준도 알만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과 담을 쌓고 지낸 것은 아니어서 내가 읽었던 고전 문학들 중에 기억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5대 희극(윌리엄 셰익스피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J.M. 바스콘 셀러스)

-제인 에어(샬롯 브론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레프 톨스토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요한 볼프강 폰 괴테)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

-데미안(헤르만 헤세)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위대한 개츠비(F. 스콧 피츠제럴드)

-달과 6펜스(윌리엄 서머셋)


이 작품들 외에도 세계 고전문학전집 시리즈를 탐독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우습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인 중학생 때 인생은 무엇인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읽었던 것이었다. 그마저 끝에 위치한 위대한 개츠비와 달과 6펜스는 작년에 읽은 것이니 어떤 뛰어난 선배가 "당신은 작가라기엔 기본적인 어떠한 소양도 갖추고 있지 않아서 당신이 글을 쓴다면 그것은 동물원의 표지판을 제작하는 일일 것이요!"라고 비난해도 할말이 없다. 심지어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는 이해 못 할 명작들을 이해하는 척을 그만두고 무협과 판타지에 몰두하였던 나였다. 어떤가, 이만하면 당신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글을 쓴 지 11일째이지만 지난 몇 년간, 아니 솔직히 조금 부푼 마음을 과장하여 말하자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10년을 학교에서 배웠어도 그 십 년 동안의 성숙과 배움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난 열흘이 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평소에 나라면 결코 하지 못할 생각과 세상을 보는 눈,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심리(특히 자신)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글을 쓰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글을 쓰면 어떠한 사람도 무척이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생각이 정리되며 사고가 유연해지면서 성숙한 삶의 태도까지 견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재미있게 살다가면 그뿐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예능만으로는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의미 없이 살다가도 그뿐이라서 지금 '동물원에 갇혀서 먹고 마시다가 옆에 오랑우탄이 넘어지면 좀 낄낄거리고 또 때가 되면 죽는 것이 인생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 말이 지나쳤다면 이 글이 실험실에 있는 글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해주면 고맙겠다. 어쨌든 글쓰기는 아무나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모든 사람이 하면 좋을 운동(건강에 유익한)같은 일임을 명심하자! 당신도 글창(헬창의 반대말)이 될 수 있다!



3. 글쓰기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재미를 준다.


인간으로서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프랑스의 철학자 R.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해보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렇다. 사고의 영역이다. 감정이 있으며 창의력을 발휘하고 유머를 아는 우리가 인간임이 감사하다. 우리는 신이 만들어 놓은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신의 흉내를 내는 존재들이다. 무엇을 만들고 소통하고 메시지를 전한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발전하는 기분을 느낄 때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의 부산물들을 보면서 그것이 영화든 예능이든 재미있는 넷플릭스의 시리즈이든 간에 우리는 크나큰 자극과 지적 욕구를 충족하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 100% 맞춰 공감되는 이야기는 이 세상에 없다. 그 어떤 위인도 99%까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 1%가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그와 나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영혼을 이해하기 위하여 스스로 생각을 키울 필요가 있다. 내가 학창 시절의 십 년보다 지난 열흘이 더 사고의 성숙에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이유는 글쓰기가 나에게 무한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하고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생각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으며 반대로 글을 쓰고 있다면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경우에는 대다수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잠시후 흩어지거나 엉켜버려서 다시 다른 사람의 정리된 생각(작품) 들을 보러 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심심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남의 생각이든 자기 자신의 생각이든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기쁜 존재들이다. 무념무상해야 어떤 경지에 오르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사상은 실상 인간의 고통을 잊기 위한 멍때리기에 지나지 않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득도한 도인이 무념무상을 한 달동안 하다가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어서 굶어 죽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는 방금 내가 지어낸 것이니 웃고 넘어가자. 아무튼 어떠한 생각이라도 글이라는 세상에서는 허용이 된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너무 창피해서 글로 적어보았는데도 꺼낼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면 조용히 혼자만 알고 있자. 꼭 보여야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만의, 나다운 생각을 했으니 그것으로 만족을 하면서 성장해 나아가자. 그러다 좋은 생각(글)이 표현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 중에 가장 재미있고 기쁜 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4. 급하게 마무리.


몇 가지를 정해놓고 강의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는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추워서 손이 시리다. 난방기구가 고장 나서 손을 호호 불며 타자를 치는 러시아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급하게 마무리를 하니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자. 그럼 과제는 하루에 억지로라도 글을 하나씩 써보는 것으로 하겠다. 어차피 확인은 못하지만... 그럼 다음 시간에 또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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