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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마음을 담다
by 그림 읽어주는 엄마 Jan 07. 2018

상처는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다

폴 세잔_열등감


좋은 친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통된 추억, 함께 겪은 시간,
그 많은 어긋남과 화해......
이런 것들로 이루어진다.

-생택쥐베리-


"누구누구는 이렇다더라"

"아니 글쎄, 누구는 뭐뭐 한다더라"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하는 속마음이 있습니다.  희안한 점은 아름다운 미담보다 나쁜 소문이나 험담은 전파되는 속도가 참 빠르다는 사실이에요. 가끔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되었다면 어떨까요?





30년 이상 우정을 지속했던 친구와 우정에 금이 가게 된 사람이 있는데 바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폴 세잔입니다. 세잔은 소심하고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이긴 했지만 한번 맺은 관계를 깊고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인데요, 세잔이 인생에서 가장 분노했던 순간은 바로 절친 에밀 졸라와의 우정에 금이 갔을 때였다고 말합니다.  세잔은 왜 30년 이상 우정을 함께했던 친구에게  분노했던 것일까요?    


어린시절

세잔은 1839년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세잔&카바솔 은행의 사장이었고 그래서 세잔은 어려서부터 아주 풍족하게 지내지요. 어린 시절 세잔이 다니던 학교에 에밀 졸라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에밀  졸라는 심각한 근시였고,  작고 허약한 아이여서 덩치 큰 아이들에게 자주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곤 했지요. 그 모습을 본 세잔이 이를 말렸고, 덕분에 아이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난 졸라는 고마움의 뜻으로 세잔에게 사과를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세잔과 졸라는 둘도 없는 절친이 됩니다. 두 사람은 사춘기의 불안을 서로 공유하기도하고 인문학적 토론을 벌이는 등 함께 예술가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폴 세잔(좌)과 에밀 졸라(우)


하지만, 세잔과 졸라의 가정 환경은 너무도 차이가 심했는데요, 세잔은  은행장 아버지를 둔 부유한  가정에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랐던 반면, 졸라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랍니다. 가정 환경만큼이나 성격도 매우 달랐는데요, 세잔은 아버지의 그늘 아래 소심하고 예민하고 우유부단했던 반면, 에밀 졸라는 권위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이었습니다.

세잔의 아버지는 세잔이 은행을 물려받을 것을 원해서 법학을 공부하길 강요하지만 세잔은 미술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등 방황하며 시간을 보내고, 이에 반해 에밀 졸라는 문학작가와 미술평론가로서 빠르게 입지를 구축하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세잔은 아버지의 뜻대로 법대에 진학하였고 따로 미술공부를 하는데  에밀 졸라는 이런 세잔에게  뜻을 굽히지 말고 화가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민자이자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좌절을 겪으면서 살았던 에밀 졸라에게는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과 권력을 배경으로 살아가려는 잔이 소심하고 한심한 게으름뱅이 처럼 보였을 것이니까요.


사실 세잔에게도 아버지는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원하는 법학 공부를 중단하지도 않은 채 미술학교에 등록한 것이지요. 세잔은 늘 늦되고 능력없는 아들로서 평생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절친한 친구였던 졸라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잔인한 충고를 해댔건 것이죠. 졸라는 시종일관 세잔에게 조언합니다. 졸라는 세잔의 재능은 인정했지만, 동시에 그의 게으름과 우유부둔함, 조급함, 변덕스러움을 가차없이 비판합니다. 그러나 세잔은 친구의 충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는 못하지요.


졸라는 세잔을 존중하면서도 세잔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1870년 평론가 테오도르 뒤레가 세잔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졸라는 제멋데로 '세잔이 자기만의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달라' 하면서 거절할 정도였으니까요. 한편 졸라는 당대 이단아였던 에두아르 마네를 지지하는 글을 신문에 쓰면서도 친구인 세잔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은 좀 꺼려합니다.

 세잔에 대한 졸라의 평은 적은 편이고, 그나마 “위대한 화가가 될 개성을 지녔지만 아직 기법을 탐구하느라 몸부림친다”라고 하면서 오랫동안 세잔의 작품에 대해서 판단을 유보한 채 모호한 태도를 취했으니까요. 마네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마어마한 칭송을 한 것과는 꽤 다른 태도이지요? 어쩌면 졸라는 세잔의 작품은 물론, 인상파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정에 금이가다

졸라의 이 모호한 태도에는 세잔에 대한 우월감과 함께 불신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둘 사이는  에밀 졸라가 문학과 미술비평가로 성공가도에 올라서고 호화롭게 결혼하는 1870년경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세잔이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으로 살아갔던 것과 반대로 에밀 졸라는 문학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자수성가하게 되자 서로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1886년 졸라의 소설 <작품>의 출간을 계기로 30년 우정의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졸라는 이 소설에서 세잔을 모델로 삼아 그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실패한 화가, 천재성이 있음에도 끝내 펼치지 못하고, 자기 화실의 실패한 걸작 앞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주인공 ‘클로드 랑티에’로 그려냅니다. 누가 봐도 <작품>의 주인공은 단박에 세잔을 상기시킵니다. 이 책을 읽은 세잔은 졸라와 절교를 결심할 정도로 크게 마음의 상처를 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몰이해와 그에게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세잔의 분노를 극대화한 것이지요.

<작품>이 출간된 후, 세잔은 그의 전기를 쓰기 위해 엑상 프로방스에 내려와 있던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에밀 베르나르에게 졸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 작자는 머리도 보잘 것 없고 친구로서도 고약하지. 자기밖에 모르니까. 그러니까 <작품>과같은 소설을 쓰겠지. 그는 나를 모델로 했다고 주장하지만 끔찍하게 왜곡시켰다네. 모두 자기의 성공을 위해 꾸민 것일 뿐이지.” 


계속해서 세잔은 “졸라는 자기의 명성이 높아갈수록 인정머리가 없어져서 나를 만나는 걸 무슨 선심이나 쓰듯 거드름을 피웠지. 오리려 내가 그를 만나는게 불쾌했는데도 말일세. 그래서 몇 년 동안 그와 애써 만나지 않았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작품>을 받아 보았어. 그것은 내게 충격이었지. 나는 우리 관계에 대한 그의 속셈을 간파했던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그들은 더 이상 만나지 않았습니다 <작품>이 간행된지 10년만에 두사람을 잘 알고 지내던 친구가 그 둘을 만나게 하려고 시도했으나, 두 사람 모두 만남을 회피하지요.


사과가 있는 정물. 1890-1894


은둔 생활

졸라와 사이가 멀어진 후 세잔은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으며 더욱 그림에 몰두합니다. 1895년 세잔은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시회를 보러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화상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기 어머니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던 세잔이니,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지요. 전시도 판매도 무관심했지만 세잔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고, 그는 그런 명성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은 듯 세속의 미술계와도 거리를 두면서 지냈습니다.


                                    

“나는 순간의 사과가 아니라
진짜 사과를 그리고 싶다.”


세잔은 사과의 본질을 계속 보고 집중합니다. 한 알은 위에서 내려다 본 각도로, 한 알은 옆에서 삐죽 들이밀본 각도로, 각가의 다른 순간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사과를 하나의 캔버스에 담습니다.


이러한 세잔의 시도는 현상을 뛰어넘는 본질이라는 현대미술의 모든 개념을 만들었고 '큐비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폴 고갱, 조르주 브라크, 바실리 칸딘스키, 한스 마이어까지 화풍과 장르를 뛰어넘어 20세기의 모든 미술의 거장들이 그를 아버지로 모시게 니다.  많고 많은 물건 중 그가 40년 동안이나 사과에 집착한 것은 어쩌면 에밀 졸라와의 추억과 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요?

졸라는 자신의 책에서처럼 죽을 때까지 세잔을 실패한 천재화가로만 생각했던 것일까요?


어쩌면 자신과는 너무 다른, 예술에 대한 지독한 몰입과 지나친 순수 그리고 현대미술의 혁명을 가져올만큼 그의 천재적 탐구 정신을 부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일말의 콤플렉스를 가진 것은 아니었을까요? 졸라는 1902년 벽난로 연기에 질식해 파리의 자기방에서 숨지게 되고 ,옛 하인에게 이 소식을 전달받은 세잔은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리고 죽은지 4년후인 1906년에야 치러진 졸라의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세잔은 제막식 내내 목놓아 울었고, 세잔도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습니다.


세잔의 분노가 이해가 가시나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과 위안을 받고 싶어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은 칭찬과 위안, 격려일 것입니다. 그런데 절친한 친구가 자신의 예술 작품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경멸하면서 실패한 예술가로 혹평한다면, 그와 우정을 지속할 마음이 생길까요? 세잔의 경우, 어려서부터 형제와 같았던 졸라의 혹평, 그것도 파리 예술계에서 소위 잘나가던 전문가인 졸라의 평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혼돈이요, 좌절이었을 겁니다.


현대 프랑스의실존주의 철학자이자 현상학자인 모리스 메를 로퐁티 는 세잔에 관한 졸라의 평가,<세잔의 회의>라는 철학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유년시절부터 세잔의 친구였던 에밀졸라는 그의 천재성을 발견했으며 동시에 그를 가리쳐 ‘좌절한 천재’라고 말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작품의 의미보다 세잔의 성격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그의 생애를 관찰한 졸라 같은 사람으로서는 그의 그림을 병적인 표현으로 본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

당대 피사로, 고갱, 모네를 비롯한 화가들이 세잔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작품을 사들인 것을 졸라가 알았더라면, 그리고 훗날 현대미술 태동의 기반을 마련한 선구자가 세잔이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세잔의 작품에 대한 자신의 비평을 호의적으로 돌릴 수 있었을까요?


가까운 사이는 객관성을 잃어버린다

어쨋거나 그 둘은 절친한 친구였기에, 서로를 객관적으로 알아보는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졸라의 잘못은 세잔의 작품 그 자체가 아닌 세잔의 성격으로 그의 예술작품을 병적인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졸라의 판단일 뿐, 당대의 지배적인 평판은 아니었는데도 세잔 역시 에밀 졸라에게 크게 실망하고 반목했으니 세잔  역시 여러 감정이 쌓였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관계의 재구성    

학교를 다닐때 까지만 해도 나와 너는 대채로 비슷한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서 있는 땅에 하나씩 금이 그어집니다. 취업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고, 더 나아가 다니는 회사의 규모, 연봉, 직급 등이 달라지면서 이른바 '사회적 신분'이 달라집니다. 뭣 모르던 학창 시절만 해도 같이 공부하고 놀며 온갖 찌질한 모습을 공유한 사이였지만, 사회에 진출하고 나서는 각자 걸치는 '갑옷'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이에 따라 서로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관계의 재구성이 일어납니다. 바로 이때 관계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만약 계속해서 전진하는 사람과 정체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어느쪽이 더 힘들까요?

당연히 정체기에 머무는 쪽입니다. 앞으로 뻗어나가는 친구를 보며 자신은 사회의 밑변 어딘가에 위치해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지요. 안그래도 인정하고 싶지 않는 사실을 친구로 인해 느끼게 된다면 이만한 고통도 없지 않을까요? 이렇게 정체기에 있는 사람은 균형잡기를 시도하게 됩니다. 상대방을 자신이 있는 쪽으로 끌어내려서 균형을 맞추느냐 아니면 자신도 위쪽으로 올라가 균형을 맞추느냐 사이에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후자를 택하면 그 관계는 변함없이 지속되겠지만, 전자를 택한다면 관계는 시한부 인생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순수했던 젊은 날의 추억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무너지면서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 상처를 입습니다.


험담의 심리, 열등감

우리가 살다보면 여러가지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같이 있으면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만날 수록 ' 밑지는 관계' 처럼 말이지요.  세잔의 분노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 에밀 졸라의 악평과 세잔을 주인공으로 한 그의 소설 때문이고, 그들의 관계 속에는 미묘하고 오래된 서로의 질투와 열등감이 섞여 있습니다.  30년이란 긴 세월동안 공유했던 시간만큼 나쁜 평판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세잔이 아니라 누구라도 화가날 법한 일이지요.


일본의 심리학자 사이토 이사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비하하고 험담하는 이유를 세가지로 정의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심리방어기제 중 투사인데,  사람은 자신이 싫어하는 부분은 항상 신경이 쓰이고 열등감의 원인이 됩니다. 열등감이 있는 부분에 마이너스 감정이 작용하게되고, 다른 사람을 볼 때에도 똑같은 결점이 있으면 바로 감지하여 비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공정성으로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공정함을 재는 자를 품고 있습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기대를 하게 되고 보상받기 마련인데 기대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뭔가 잘  되었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보상 자체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노력을 깎아내려 합리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외모나 가정환경 등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불공평한 조건이므로 열등감을 가지게 되는 것 처 럼 말이지요.   


세 번째 이유는 바로 험담 대상자와 나는 피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출근 길에 단순히 누가 내 발을 밟았을 때, 일시적으로 분개를 할 수는 있어도 오랫 동안 담아두고 험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동료가 지속적으로 내 발을 밟는다면 화가 쌓이게 되고, 나 또한 그를 공격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한 감정을 우리는 ‘험담’'뒷담화'란 형태로 분출하게 됩니다.



상처는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다.

 사람들은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을 질투하지 않는다.  
-알랭드 보통-


사람들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질투하지 않는 것은 전혀 연관성을 찾을 만한 연결고기라 없기 때문인 것처럼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것은 자신을 그 사람과  동일시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을 때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 형제, 동료,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질투나 열등감을 느끼며 때론 상처 주거나 상처 받습니다.

                                                                        

인간관계에는 '호흡이 긴 인연'과 '호흡이 짧은 인연'이 존재합니다. 학력, 재산, 거주지처럼 가변적인 자원을 기준으로 관계를 맺는건 호흡이 짧은 인연 맺기입니다. 반면 추억, 공감, 소통처럼 정서적인 자원을 기준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호흡이 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서적 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인연은 쉽게 변하기 않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상황만 보고 자신이 밑진다고 단정짓지 말고, 이왕이면 둘 다 소중하게 가꿀 줄 아는 아는 지혜를 가져야겠습니다.




"사과라는 대상을 객관화해서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 그 자체가 중요한거야. 그것이 바로 사과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지. 사과조차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고, 존중할 수 없는데 그보다 더 복잡하고 커다란 가치를 어떻게 알아보고 존중할 수 있을까?" -폴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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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그림에 마음을 담다
*그림, 너머에 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미술과 책을 좋아하고 글과 그림으로 위안과 통찰의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민선영 grimmom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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