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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근성 Sep 07. 2022

공부가 게임보다 재미없는 이유

토스와 왓챠피디아에 적용된 게이미피케이션


공부가 게임의 반만이라도 재미있었다면 우리 모두는 하버드에 갔을 것입니다.


공부는 대개 많은 것을 요합니다. 뾰족한 목표, 꾸준한 노력, 반복에 지치지 않는 뚝심. 요행이 통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도무지 재미를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게임은 어떻습니까. 크고 작은 퀘스트로 이루어진 게임 속에서는 목표나 계획을 따로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조금 질릴 만하면 새로운 이벤트와 아이템이 나와 흥미를 끕니다. 또 공부는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인 반면, 게임은 다른 유저와 얼마든지 경쟁하거나 사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게임의 장점을 서비스에 접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유저는 지겨운 과업일 수도 있었던 기능을 보다 즐겁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이번에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적용된 서비스 몇 가지를 살피고, 아쉬운 점은 제 나름대로 기획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토스 ‘키워봐요 적금’

금리 상승 흐름에 맞춰, 각 은행에서는 고금리 적금을 매개로 고객을 유치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번에 토스가 내놓은 ‘키워봐요 적금’은 타 은행 대비 이율이 낮은 편인데요(연 3%), 그럼에도 출시 3일만에 10만좌 돌파라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습니다.


이는 캐릭터 육성이라는 게임 요소가 크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우선 유저는 적금 가입 시 알 하나를 받습니다. 알은 납입 기간인 26주 동안 총 10단계의 성장을 거치며, 적금 만기일이 되면 전설의 동물로 진화합니다.


육성이라고는 하지만, 유저가 신경써야 할 것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매주 자동이체가 되도록 토스뱅크에 돈을 채워두기만 하면 됩니다. 이토록 낮은 난이도에도 유저는 나만의 캐릭터가 나날이 커가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토스뱅크 ‘키워봐요 적금’ 설명
토스뱅크 ‘키워봐요 적금’ 설명


사실 토스 이전에도 캐릭터를 내세운 적금은 있었습니다.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이 바로 그것입니다. 26주간 카카오의 간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모아가는 것인데요, 토스와 다른 점이라고 하면 캐릭터 육성형이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이에 대해 토스뱅크 송관석, 김준 PM님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카카오뱅크의 캐릭터는 인지도가 보장되어 있지만, 토스뱅크의 모든 동물들은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이다. (적금 주 차에 따른) 성장 단계에서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조금 더 재미있어 하고, 귀엽다고 반응할까를 (고심하여) 반영했다.
캐릭터 측면으로 이겨야 된다, 또는 이 캐릭터를 살려서 카카오처럼 사업화하고 활용한다는 생각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단순히 이 안에서 고객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게끔 하고 싶다.


카카오뱅크 ‘26주 적금’ 설명


카카오뱅크 카드가 처음 나왔을 때, ‘왜 발급 받았느냐’는 물음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히 ‘(카드에 그려진 캐릭터가) 귀여워서’라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카드 혜택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만큼 유저의 감성을 자극하는 포인트도 중요하다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저로 하여금 서비스 자체에 유대감과 같은 깊은 감정을 가지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요소로 게이미피케이션이 좋은 방법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왓챠피디아 ‘평가’

왓챠피디아는 영화, TV 프로그램, 책, 웹툰 등의 다양한 작품을 추천받거나 평가하는 서비스입니다. 이는 모체인 왓챠가 OTT에 주력하면서 추천, 평가 기능이 개별 앱으로 떨어져나온 것입니다.


작품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하단 ‘평가’탭으로 진입해, 나열된 작품들을 확인하고 별점을 부여하면 됩니다. 일정 평가 개수를 초과할 때마다 상단의 문구가 바뀌어 달성 욕구를 자극합니다.


기본적으로 나열된 작품은 모두 랜덤입니다. 이에 한 번 지나친 작품을 찾기 위해서는 ‘검색’을 거쳐야만 합니다. 이 점이 아쉽다면 리스트 우측의 메뉴를 클릭하여 보고싶어요, 컬렉션, 관심없어요 등 다양한 반응을 남길 수 있습니다. (남긴 반응은 ‘나의 왓챠’에서 한꺼번에 확인 가능합니다.)


왓챠피디아 평가, 별점 부여
왓챠피디아 평가, 메뉴 모달


왓챠피디아 ‘평가’에 적용된 게임 요소로 저는 도감을 떠올렸습니다. 도감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 즉 수집이라는 욕구를 건드리는 장치로써 기능합니다. 아무렇게나 나열된 작품들을 보면 왠지 미완성된 채 방치된 느낌, 별점을 주어 따로 보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게다가 왓챠피디아에서는 ‘OO의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유저의 보관 목록에 담긴 작품들을 추천해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별점을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나의 평가, 나의 취향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닌텐도 동물의 숲, 해산물 도감 (출처 : 트위터 @acnh_tip)
왓챠피디아 평가, 컬렉션


도감을 채우는 데 진심인 편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왓챠피디아 평가를 200개에서 멈춘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로 별점 평가의 동기부여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일단 평가를 하고 나면 ‘취향 분석’을 통해 상세 리포트를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은 혁신적이지만, 평가 과정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왓챠피디아 유저 대부분이 ‘평가수’를 캡쳐하여 일종의 자격 또는 인증으로 활용하는만큼, 평가가 더 쉽고 재미있게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개선 프로젝트에 투입된다면 어떤 점을 타겟으로 삼아야 할까 고민한 결과 다음의 항목이 나왔습니다.   


예전에 봤던 영화일수록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제목, 내용 모두)

기억이 잘 나지 않으므로 랜덤 또는 광범위한 옵션 내에서 봤던 영화를 일일이 걸러내 평가해야 한다.

평가하는 과정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왓챠피디아 평가, 옵션


위 항목 중 1,2번을 개선할 방안으로 저는 옵션 다양화를 생각했습니다. 위 캡쳐를 보면 ‘역대 100만 관객 돌파 영화', ‘느와르’ 등 옵션이 매우 광범위하게 세팅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러 개의 옵션을 선택해 필터처럼 걸러내는 방식도 불가능합니다.


만약 예전에 봤던 어떤 영화가 액션 장르이고,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던 것만 떠오른다면? 지금의 기능으로는 해당 영화를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왓챠피디아보다 구글 검색의 힘을 빌려야 할 수도 있겠죠.




1. 필터 및 다중선택 추가


먼저 테마별, 장르별, 시대별 필터를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개의 옵션을 선택해 결과값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다중선택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이로써 유저는 자신이 정한 바운더리 내에서 원하는 작품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기존처럼 옵션 종류가 아래로 나열된 형태인 경우, 유저 편의를 위해 옵션을 추가할수록 하단에 있는 옵션과의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러나 각 필터를 선택하는 형태로 분리한다면 대부분의 옵션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테마' 필터를 클릭해 옵션을 선택하는 모습


 

2. 평가 시 인증 뱃지 부여


위 항목 중 3번을 개선할 방안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뱃지입니다. 다음 단계까지 얼마의 평가가 더 필요한지 표시해주는 것은 물론, 단계 달성 시마다 뱃지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왓챠피디아 유저들은 ‘내가 이만큼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평가수를 캡쳐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수집 욕구를 충족하기엔 해당 화면이 너무 밋밋한 것이 문제입니다. 타 서비스(e.g. 당근마켓)에서 수집 가능한 뱃지를 제공해주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왓챠피디아 나의 왓챠(왼쪽), 당근마켓 활동배지(오른쪽)


나의 왓챠에 ‘획득 뱃지'를 추가하고, 카테고리별(영화, TV, 책, 웹툰) 평가수에 따라 뱃지 레벨과 함께 아이콘이 변하도록 만든 모습입니다. 책과 웹툰처럼 평가수가 매우 적은 경우는 아직 뱃지를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평가 탭 상단도 바꿨습니다. 다음 뱃지 업그레이드까지 얼마의 평가가 더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남은 양을 한 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프로그레스바를 추가했습니다. 이제 끝이 보이지 않는 평가에 지쳤던 유저는 뱃지 업그레이드라는 명확한 동기를 가지고 평가에 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치며

왓챠피디아의 경우 평소 느꼈던 불편한 점을 개선해봤는데요, 저 역시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밖에서 보이는 이슈와 안에서 체감하는 이슈가 얼마나 다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왓챠피디아에서 위와 같은 개선을 하지 않는 이유(또는 지금 하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짧게나마 개선 작업을 해보니, 역시 눈보다는 손을 움직이는 것이 프로덕트를 다루는 역량을 키우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작업을 많이 해봐야겠습니다.



+) 아티클은 브런치와 제 개인 블로그에 동시 작성됩니다! 로그로 놀러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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