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 창직기금(발표지원 : 수필분야 선정)
뿌리, 울음소리를 듣다
깊은 밤, 가녀린 새하얀 것들이 축축한 어둠을 뭉쳐 길을 내는 소리가 들린다. 흐느낌일까, 희열에 찬 울음일까, 막막함일까, 두려움일까. 길이 보이지 않을 땐 스스로 길이 되라는 말은 야만적이다. 지상의 모든 식물들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흙 속의 길은 결국 뿌리의 눈물이 만들어 낸 길이다.
식물들의 마침표는 씨앗이다. 씨앗에는 뿌리, 줄기, 잎, 열매가 될 가능성과 언젠가는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야 하는 숙명이 들어있다. 씨앗의 어미인 바질은 마르고 여윈 몸으로 화분 안에 수많은 문장을 썼다 지웠다. 원산지인 이란과 인도의 하늘이, 땅의 숨결이, 하늘과 땅을 잇는 바람의 길이 담겨있는 검은 바질 씨앗에는 생의 다음 문장을 시작하라는 명령이면서 유언이 담겨있다.
바람결에 가을이 스며오고 있음을 식물은 몸으로 먼저 안다. 초록 잎과 탄력 있는 줄기, 화사한 꽃과 잘 여문 열매들은 이제 여름의 기억으로만 남았다. 더 이상 초록을 감당할 수 없는 바질은 저 혼자 말라 가고 노랗게 퇴색된 바질 잎사귀들 사이에 늙은 거미는 치밀하고 촘촘하게 조등(弔燈)을 달았다.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바질의 집, 마른 잎들의 덧없는 춤이 접근 금지 경고처럼 보인다.
화석이 된 바질은 화분 켜켜이 생의 기록을 새겨놓았다. 화분을 두드려도 보고 호미로 흙들을 잘게 부수어도 바질의 문장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두드림과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웅크린 것들과의 사투 끝에 마침내 빵을 찍어낸 틀처럼, 동그란 화분 모양을 고스란히 재연한 촘촘한 뿌리들이 햇살 아래 드러났다. 땅 위로 드러난 몸에는 동그란 몸짓, 동그란 눈물, 이제는 더 이상 어딘가를 향해 뾰족한 촉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흙 속에 생명의 길을 내었던 뿌리들은 서로 뒤엉킨 채로 푸석한 바질의 몸을 움켜쥐고 있었다. 뿌리마다 바질의 낡고 지친 몸을 지키려는 부릅뜬 눈이 있는 것 같았다. 무한 유혹으로 다가오는 허공을 향해 자꾸만 줄기가 손을 뻗어 나갈 때 뿌리는 흙 한 줌, 물 한 방울을 위해 온몸을 납작 엎드려 중력을 더듬는다. 냄새와 질감으로 존재하는 어둠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르면 내벽을 칭칭 감고 돌다 뿌리가 흘린 눈물은 고요한 흐느낌이면서 어둠을 가르는 포효였으리라. 깊고 융숭한 흙빛 울음소리가 밤새 돌림노래처럼 잔 뿌리털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빈 화분의 동공이 보인다. 어떤 몸부림도 달뜬 희열도 사라진 자리, 한때 터를 삼았던 생명이 떠나고 남은 것은 공허한 흔적뿐이다. 사전적 의미로 화초를 심고 가꾸는 그릇인 화분(花盆)의 용도는 결국 화분(花墳)으로 마감된다. 꽃들의 무덤, 화분(花墳), 그 무덤 한구석에 어미들은 생명을 남겨두고 떠났다. 생명의 시작이란 어미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뿌리는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만가를 부른다. 공간도 때론 시간처럼 흘러간다. 삶의 화분(花盆)에서 내 안의 뿌리들도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내려가고 뿌리 내린 화분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가 되어있다. 자발적 선택이었을지, 운명이었을지, 그저 우연이었을지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무엇이든 피워 낼 수 있는 가능성의 둥지 화분(花盆) 안으로 결핍과 충만,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열이 수시로 얼굴을 바꾸며 걸어 들어왔다. 나로 살고 싶었던 아침이 있었고, 환희와 절망의 정오가 있었고 짐승처럼 울부짖던 밤이 있었다.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 화분 밖으로 달아나려는 일은 결국 익숙한 나를 버리는 일이기도 했다.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는 도마뱀처럼 견고하고 치밀한 뿌리의 결박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어디론가 끝없이 도망치려는 사람들과 어딘가에서 끝없이 돌아오려는 사람들, 회귀와 도주의 변주 같은 삶에서 어쩔 수 없이 입양되어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뿌리란 숙명 같은 것이다. 강물을 거슬러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몸에 각인된 피의 언어, 뿌리의 이름을 찾아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회에 적합한 문화적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뿌리내릴 수 없었고 태생적 얼굴과 피부색을 지니고 있지만 모국의 흙에서조차 뿌리 내리지 못한다. 어디서든 흙 안으로 온전히 스며들지 못하기에 생각과 감정이 사는 몸, 소멸하지 않은 몸의 뿌리를 제대로 세워보고 싶은 소망을 지닌다. 그런 간절함이 모태 화분으로 회귀하는 동력이다.
내가 아닌 것들, 나답지 않은 것들을 쫓느라 상처투성이가 된 채 화분에 기대 있는 나를 뿌리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화분을 위태롭게 하는 세상의 모든 흔들림으로부터 뿌리는 자기 몸을 포박하면서 스스로 중심을 잡는 방법을 체득해 왔으리라. 화분(花盆)이 화분(花墳)이 되는 날까지 꽃과 열매와 잎의 찬란함을 잊지 않기 위해 뿌리는 날마다 문장을 새로 쓰고, 울음이 만들어낸 시간이 켜켜이 화분 안에 쌓여간다.
인도와 이란의 어느 들판에서 자라던 야생 바질들이 머나먼 타국의 좁은 화분에서 치열하게 살다 갔다. 흙을 탓하지 않고, 바람의 빛깔과 햇살의 강도를 탓하지 않고 오직 ‘가능성’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잎과 열매와 씨앗을 남기고 떠나온 곳으로 돌아갔다. 한때는 씨앗이었고, 싹이었고, 잎이었고 줄기였으며, 뿌리였다가 다시 씨앗이 된 바질의 기억이 비어있는 화분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있으리라. 연둣빛 어린잎과 화사하게 핀 하얀 꽃, 송골송골 맺힌 열매는 뿌리의 울음이 만들어 낸 환희이며 뿌리의 다른 표정들이며 다른 이름들인지도 모른다. 바질의 지난한 생을 완벽하게 재현한 뿌리가 햇살 아래 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시간과 기억과 목소리들을 증언한다.
생을 담아두는 저마다의 화분(花盆)이 화분(花憤)이 되는 날, 늙은 거미가 은빛 실로 조등을 조롱조롱 달아 애도해 줄 그 밤, 눈물을 뭉쳐 생의 동그라미를 수없이 만들어내던 뿌리는 동그랗게 웅크린 시간 속으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갈 것이다. 뿌리를 위한 뿌리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리라./ 려원
* <뿌리, 울음소리를 듣다> 는 2023 아르코 문학 창작 기금 (발표지원 수필분야 선정작 중 하나입니다)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