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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이염 환자의 결의

그러니까, 지난주 일요일부터 술을 한 모금도 못마시고 있다. 자꾸 징징대는 것 같아서 페친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어쨌든 야밤을 틈타 썰을 풀자면 이렇다. 


월요일에 급작스레 귀가 아파 병원으로 달려가 중이염 판정을 받자 마자 이비인후과로 달려갔다. (밤에는 술집 사장이요 낮에는 의사인 바로 그 분의 병원)  중이염 판정을 받았고 약을 처방 받았다. 진통제와 콧물약, 그리고 페니실린 항생제로 구성된 세트. 일주일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즉, 내 몸의 세균들은 이미 페니실린이 보낸 카톡을 읽고 씹을 수 있는, 진화된 생명체였던 것이다. 그 동안 귀의 상태는 셋 중 하나였다. 핏빛 고름섞인 진물이 유황온천처럼 흐르거나, 수면위로 떠오르는 가시복어처럼 팽팽하게 부풀거나, 고막앞뒤를 귀후비개로 후벼파는 통증에 시달리거나. 24시간을 셋 중 하나로 보냈던 것이다. 당연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의 능률도 현저히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이 상태가 며칠 지속되니 심지어 자기 귀를 자른 반 고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경이었다. 그 때는 항생제도 진통제도 없었던 시절이었을테니 더욱 그랬겠지. 


이러면 사람이 욕구가 없어진다. 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옆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어도 싯다르타가 빙의한 것 처럼 결연했다. 마시고 싶다 마시고 싶다 했지만 그것은 참된 욕망이라기 보다는 관습적 언사였다. 아픈 상태에서 드립을 던짐으로서 병자 개그를 추구했달까. 성욕조차 사라졌다. 야동을 봐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는 듯 했다. 작년 언젠가 길상사에 갔을 때 혹시 법정스님의 혼이 나에게 임하신 게 아닐까 하는 되도않는 망상을 할 정도였다. 


약을 바꿨다. 어제 점심부터. 뭔지는 모르겠지만(문송합니다.) 아무튼 바꿨다.  빨리 이 고통을 벗어나고자 인터넷을 뒤져보니 우엉이 소염 효과가 있다 하여  집에 있는 우엉을 푹 달여 식혔다. 얼음을 넣고 우엉 달인 물을 마치 우엉 하이볼이라고 정신승리하며 마셨다. 어제 하루에만 무려 4리터를 마셨다. 때마침 바꾼 약도 효과가 있는 듯 하다. 양방과 한방의 협공이 먹혔는지 하루만에 지난 일주일간의 경과보다 조금 좋아졌다. 여전히 핏빛 고름섞인 진물이 유황처럼 흐르지만 양도 줄었고, 팽창감은 수면위로 떠오르는 가시복어 레벨에서 동양인에게 씌워진 콘돔 수준으로 줄었으며, 무엇보다 통증이 많이 줄었다. 중이염에 걸린지 딱 열흘만에 차도란 게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 것이다. 


오늘은 날이 무척 더웠다. 밤은 쌀쌀함에서 선선함으로 넘어 갔다. 꽃은 자신의 의지로 피고 지는 게 아니다. 때가 되니 피고 때가 되니 지는 법이다. 인간도 의지만으로 이뤄진 생물을 아닐 터. 날이 이러니 갑자기 열흘간 봉인되어 있던 욕망이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퍄틀라이외퀴틀 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맥주가 매우 마시고 싶어진 것이다. 처음부터 마시고 싶었던 건 아니다. 왠지 가라아케가 먹고 싶었는데 '이걸 테이크 아웃해오면 분명히 맥주가 먹고 싶ㄱ'라고 생각하는 순간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 욕망을 다시 강제 봉인해서 넣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행히 성공한 듯 싶다. 


타이밍도 공교롭게, 내일 술을 선물받는다. 그 술을 자린고비가 굴비쳐다보듯 바라보며 나는 머리속으로 그리고 또 그리리라. 다시 술을 마셔도 되는 짧은 미래의 그 날, 일단 오백 한조끼를 세 번 정도에 나눠 비울 것이다. 그리고 자극적인 안주를 벗삼아 빈 소주병을 볼링핀처럼 쌓을 것이다. 만약 그 때까지 나의 간에 부임한 히딩크 감독이 능력을 발휘해준다면, 싱글몰트 한 잔을 짜릿하게 꽂아 넣을 것이다. 진짜 끝내주지 않나? 호연지기가 용솟음치지 않나? 이런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나에게 올 연말 대종상이라도 하나 선물하고 싶을 정도다. 그리하여 나는 봄의 정취를 한 잔 술에 더하지 못한 스스로의 죄를 사하고 새로운 계절로 넘어갈 것이다. 가라, 중이염이여. 오라, 여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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