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수면 다야?
삐삐를 확인한 후 내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간다.
“보고 싶어. 오늘 볼까?”
담백한 목소리에서 애써 애정을 찾아 내가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한다.
“좋아. 수업 끝나고 집으로 갈게.”
밤 10시.
수업이 끝나도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아.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너무 설레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택시 안에서 화장 파우치를 꺼내서 자연스럽게 화장을 고친다. 파우더를 톡톡 두드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손이 운전하는 택시 안이 흔들려서인지, 그냥 그를 만나는게 좋아서인지 미세하게 떨린다.
밤의 한강을 지나간다.
언제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동작대교를 건너는 일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비밀스럽다고 해야 할까.
언젠가 그의 콘서트에 갔다가 화장실에 갔을 때, 손을 씻고 있던 두 여자의 대화를 우연히 들었던 때가 생각났다.
“여자친구 있을까?”
“왜 없겠어? 줄을 섰겠지.”
“아~ 그 여자 진짜 부럽다.”
나는 뒤에서 거울을 보고 있다가, ‘그게 바로 저예요.’라고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뭔가를 쟁취해 낸 여자의 뿌듯함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던 기억이 났다.
설렘이 폭발하기 직전에 그의 집 앞에 택시가 도착한다.
“나 왔어.”
“어서 와~ 기다렸어.”
디자이너 지 선생님이 선물해 줬다는 통이 큰 바지를 입은 그는 더 키가 크고, 멋있어 보인다.
품이 큰 옷 속에 감춰진 그의 가냘픈 몸매가 그려진다.
두 팔을 벌려서 그를 꼭 안아준다.
“보고 싶었어.”
“나도.”
따뜻한 두 몸이 만나서 서로의 체취를 맡는다.
이를테면, ‘이제 시작할까?’의 신호 같은 거다.
씻고 나온 비누 향과 담배 냄새가 같이 난다.
그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늘 여유가 있었고, 부드럽게 리드할 줄 아는 남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첫사랑이기도 한 그의 눈에 내가 얼마나 어리고, 순진해 보였을지 짐작이 가지만, 당시의 나는 어렸고, 진짜 어른 남자 같은 그에게 푹 빠져 들었다.
침실에서 나오면, 가볍게 샴페인과 핑거 푸드 등을 준비해 놓고, 정성스럽게 대접해 주는 것도 20대에 만나던 또래의 남자들과는 달랐으니까.
거실 넓은 통 창 밖으로는 한강의 불빛이 아른거렸다.
또 언제가 될지 모르는 데이트이기에, 거실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둘만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나 졸려. 자야겠어.”
나는 침실로 들어가고, 그는 거실에 남아 담배를 피운다.
“어, 그래. 먼저 자.”
예민한 그는 새벽이 올 때까지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나 잤을까.
새로운 침대가 낯설어서 반짝 눈을 뜨니, 새벽 6시.
거실로 나가보니 그는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다.
담요를 가지고 나와서 그를 깨우지 않으려고, 살살 덮어준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샤워를 한다.
‘일찍 나가야겠다.’
나의 학원 출근 시간은 오후 3시지만, 직장인들 출근 시간 전에 집으로 가야 한다.
으스스 새벽 추위가 나가려는 발걸음을 따뜻한 집에 자꾸 묶어둔다.
6시 반. ’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가자.‘
서재로 발을 옮겼다.
그의 책상에 앉아서 그의 흔적을 별생각 없이 손으로 훑는다.
‘팬들에게 받은 편지인가?’
많은 편지들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편지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봉투에서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 오빠랑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함께 집에 와서 자고…
손이 파르르 떨린다.
콘서트장에서 그녀들의 대화가 다시 귓가에 맴돈다.
“여자 친구 있을까?”
“왜 없겠어. 줄을 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