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지르고 본다. 그리고 아님 말고!
홍보쟁이 4년 차의 짬밥은 '아님 말고' 정신에서 온다. 홍보인의 주요 업무는 별거 아닌 상품이나 자료를 시의성에 맞게 포장 해 기사화하는 것. 기자에게 준비한 자료를 보여주며 제품과 브랜드를 홍보한다. 나도 잘 안다. 며칠 야근을 하고 수많은 이의 검토를 거친 이 자료가 사실 기삿거리가 아니란 걸. 근데도 오늘도 기자를 만나러 가기 전 머리에 새긴다 '아님 말고'.
처음부터 아님 말고를 외쳤던 건 아니다. 오히려 시작 전에 지는 사람이었다. 외국인 상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양해를 구한답시고 대화 시작 전에 '영어를 잘 못해요'라고 말했다. 기자나 상사와 미팅에서는 아이디어가 별로라고 말할까 봐 입도 뻥끗 안 했다. 근데 일본의 유명 자위용품 업체 홍보를 맡으면서 '아님 말고' 정신을 머리에 입력하게 됐다. 두 달여간을 새벽 야근을 해가며 홍보전략을 짰다. 자위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성담론 문화가 돼, 인간의 필수 욕구를 조절할 수 있을 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었다. 또 자위용품은 내 몸의 자극 점을 인지하고, 적절하게 욕구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는 필수 상품으로 포지셔닝했다. 열심히 스토리 라인을 짜놓고도 막상 기자에게 홍보를 하려고 하는데 지고 싶었다. 점심시간 광화문 카페에서 남자 기자들에게 자위용품을 내밀며, 이 브랜드 철학을 기사에 녹여달라고 말하는 게 상상이 안 갔다. 첫 미팅때 남자 기자들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슨 마음을 갔는지는 기억난다. '제안해보고 아님 말고'.
홍보를 어떤 결과가 나오던지 간에 일단 난 해보고 아님 아님 말고라는 마음으로 부딪혔다. 1년간 만날수 있는 기자는 다 만났다. 대 낮 커피숍에서 한손엔 자위 용품을 쥐고 자위의 타당성을 설파했다. 부딪힌 횟수가 늘어난 만큼 승률도 높아졌다. 그렇게 홍보 KPI를 초과 달성했다. 한 번은 30대 남자 기자들에게는 홍보계의 구성애 선생님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냥 기사 안 나와도 돼 우리 한번 대화나 해보자 식의 힘 뺀 대화 때문에 미팅이 재미있다고도 들었다. 성인용품 홍보를 맡으면서 알았다.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은 '일단 해보고 아님 말고 식으로 부딪혀 모수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10명을 만나면 9명이 피드백을 주면서 거절을 하면 그다음 마지막 10번째 사람이 응답을 한다는 걸 알았다. 이 정신력이 베인 이후부터 회사 생활도, 홍보일도 재밌게 일했다. 뭐든 시도하는 게 일의 전부이고 반응이 올 때까지 피드백을 계속 받으며 또 시도를 하면 결국은 모든 일이 된다는 걸 체득했다.
이젠 무언가 할 때부터 지는 말을 먼저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어 발표나 질문을 받 하더라도 단어가 생각이 안 나면 안 나는 대로 당당하게 말한다. 뭐 알아듣겠지, 아님 말고.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사람들에게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민다. '괜찮지? 같이 하자! 아님 말고'. 이런 식으로 홍보일 뿐만 아니라 등산회 소모임, 신문 스터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요즘은 직무를 변경하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고 있다. JD를 보면서 아 이걸 내가 업무적으로 한적은 한 번도 없는데 라는 생각에 작아지는 것도 잠시. 심호흡을 한번 크게 내쉬고 어떻게든 쓰고 있다. 짬밥 4년, 확실하게 배운 거 하나. 아님 말고로 마음으로 원서를 낸다. 그리고 안다. 이 마음으로 계속 10번 지르면, 꼭 1곳은 응답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