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엄마

by 꾸주니작가

나는 경제적으로 위기를 겪고 나서 가난은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갈 때 둘째를 안고 집을 보러 다니며 피눈물을 흘렸다. 새 아파트에서 계속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둘째가 돌을 앞두고 쌀쌀한 2월에 이사를 해야 했다. 엄동설한은 아니지만 어린아이들 둘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 보증금 일부로 빚을 갚고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10년 된 아파트였지만 베란다가 넓게 2개나 있어서 짐이 많은 우리에게 적합하였다. 밤 8시에 되어서야 이삿짐은 거실, 방 가득 너저분하게 벌려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오며 이곳이 우리가 살 곳이구나. 돌아보며 마음이 울컥하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내가 잘못한 건가? 하염없이 울었다. 신랑이 씻고 나오며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왜 그래?..”

“그냥, 너무 속상해서 짐을 보니 답답하기도 하고 여기서 어떻게 시작해야 되나 다시 처음부터 인데..”

“괜찮아, 우리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자.

애들이 있잖아. ”

“그래, 애들이 있어서 더 속상해. 깨끗한 환경에서 살게 해주고 싶은데.. 여기 화장실, 베란다, 전등, 문 진짜 손을 다 데어야 되잖아..”



"내가 할게, 하나씩 일주일 쉬잖아.

그때 내가 전부 다 고쳐놓을게..


생각보다 아파트는 건물이 낙후가 되어 손이 가야 할 곳이 많았다. 200만 원 남은 여유금으로 하나씩 집을 고쳐 가며 내 집으로 만들어갔다. 새로운 환경에 아이들은 웃음이 가득했다.


이전 집보다 더 넓은 놀이방은 만들어주었더니 첫째 딸은 여기 집이 더 좋다고 했다. 내 마음은 뭉클했지만 딸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해맑게 웃는 아이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이 곳에서 다시 일어나서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한 푼,두 푼 모아야겠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원하는 곳은 아니지만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세상에 어떤 부모도 자식에서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엄마로서 책임감을 갖고 나약해지지 않아야겠다. 그렇게 다짐한 후 14개월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시작하였다.


욕심부리지 않고 두 아이 어린이집 등원 후 하루 5시간 시간강사로 수업을 하였다. 첫 월급 50만 원을 시작으로 지금은 110만 원까지 올라갔다.


힘든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힘들다고 좌절할 때 해맑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일을 할 수 있었다. 날마다 일을 힘들 때 생각한다.


“가난은 물려주지 말고 아이에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엄마가 되자.” 오늘도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