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10여 년간 일해온 마케터이며, 이 글은 2025년 한 해를 돌아보는 에세이다.
대단한 교훈도, 유익한 정보도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며.
때에 따라 '마케터' 앞에 다양한 단어가 붙었다. 글로벌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앱 마케터, 그로스 마케터...
안타깝게도 지난 10년이 깊이 있는 경력으로 축적된 것 같지는 않다.
마케팅의 트렌드는 멈춤 없이 변해왔고, 요구하는 역량도 그에 맞춰 변해왔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커리어 목표를 가지고 그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게 아니라, 당장 필요한 업무, 그때에 트렌디해보이는 공부를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내 마케팅 경력은 방향성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일부 대기업, 외국계 기업들은 HR 부서에서 직원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개선할 수 있게 커리어 코칭과 교육훈련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일했으면 더 좋았을까?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다.
2025년으로 좁혀서 이야기를 하자면 내 경력을 통틀어 가장 가치가 적었던 해였다.
업무의 보람도, 즐거움도, 경력상의 발전도 적었다. 다만 이는 팀과 내가 원했던 바가 달랐기 때문일 뿐이다.
사업에 있어서 마케팅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따로 글을 쓰려고 한다.
어쨌거나 지난해 8월부터 함께 일한 팀과는 올해까지만 함께 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더 이상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으며, 이제는 마케터로 일하는 게 즐겁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해야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ChatGPT가 출시된 다음날, 함께 일하던 네덜란드인 매니저가 사용해 보라며 URL을 공유했다.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AI에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AI를 사용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럴 때마다 사이비 종교를 권유받기라도 한 듯 어색한 미소로 대신한 거절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ChatGPT는 실수가 잦았고 많은 면에서 부족했다. 바꿔 말하면 AI는 고작 3년 만에 놀라운 발전을 이뤄낸 셈이다. 업무에 AI를 활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시대가 되었고, 나 같은 마케터도 간단한 프로그램은 직접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빅테크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AI에 대체되어 해고되었다는 뉴스가 익숙하다 못해 식상해졌다.
한국에서도 시차가 있을 뿐 비슷한 일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식상한 말이 되었지만 AI에 대체되지 않을 일을 해야겠다.
퇴사를 앞두고 다양한 일을 배우고 있다.
직접 운전할 일이 거의 없어 장롱면허 신세였는데 이번 기회에 운전 연수를 받았다.
지게차 운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할까 생각 중이다. 재미있어 보여서.
올해에는 일하면서 건강을 많이 해친 것 같다. 먹는 것에 신경 쓰고 가능한 강도 높은 운동을 해야겠다.
시간이 지나며 취향도 변하기 마련이다.
최근 몇 년간 보드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즐겼는데 이제는 별로 즐겁지가 않다.
오히려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서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이 쌓여있다.
그동안 가장 재미있게 일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외국에서 일했을 때거나 외국인과 일했을 때였다.
작년에는 싱가포르, 올해에는 덴마크에 출장을 다녀왔는데 다시 해외에서 일을 해보면 좋겠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배우고 싶었는데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인생의 불확실성이 올라가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
내년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이 또한 즐기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유튜브 Vlog나 에세이 서적을 본 일이 많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참고하면 나만의 답을 얻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