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에만 있어 바깥이 이리 추울 줄 몰랐다.
외출하면서 시리에게 날씨를 물어보고 깜짝 놀랐다.
'영하 9도가 넘는데 평양냉면 먹으러 가는 게 맞나?'
언니에게
'날이 추운데
혹시 다른 메뉴가 나을 것 같으면 알려주시라'
고 말했다.
그 말을 보내고서 알았다.
평양냉면집 가고 싶으면서
맘에도 없는 소리 했구나....
정인면옥은 여의도순복음교회 맞은편,
어느 기독교 빌딩 지하에 있다.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끝나버려서
자칫하다 주차장을 놓칠 뻔했는데
기막힌 순발력으로(?) 다행히
주차장 지나치기 직전에 알아차려서
무사히 주차했다.
들어가면서 보이는 주차요금 안내문이 심상치 않았다.
10분에 2천 원씩?
도적 아니야?
정인면옥은 주차 한 시간밖에 지원 안 해주는데...
슬펐지만 빨리 먹고 나오면 되겠지, 생각했다.
주차가 딱 한 시간 가능한 오늘따라
이상하게 20분 넘게 일찍 도착해 버린 건 뭘까...
얄궂다...
들어가서 대기해도 되나?
번호표 뽑으라고 하면 뽑고 문 밖에서 기다려야 하나, 차에 들어가 있어도 되나?
고민한 게 무색하게 정인면옥은
내부도 무척 넓고 자리도 매우 많았다.
원하는 데 앉으라고 하셔서
쭈글쭈글 2인석에 앉았는데
4인석으로 옮기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언니를 기다리며 앞치마를 받아두었다.
두근두근.
솔직히 언니가 도착하고 나서
메뉴 같이 보고 주문해도 충분한데
성질이 급한지 메뉴판을 사진으로 보냈다.
(이 행동이 상대에게 압박이 된다는 건 최근 알았다.)
언니에게 있어 첫 평양냉면 도전인 날이어서
혹시라도 평양냉면이 입에 안 맞을까 싶어
걱정이 됐다.
비빔 시키거나 해서 같이 먹자고 했었는데
언니가 그렇게 먹자고 해 주었다.
아까부터 자꾸
냉면 먹고 싶으면서 '딴 거 먹고 싶으면 말해라',
‘물냉 비냉 괜찮냐 다른 거 원하면 알려달라
(솔직히 본인이 만둣국 20% 정도 궁금해서 물어본 것)'
고 했던 게 찔려서 이제부턴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언니, 만두나 녹두전 중에 하나 시켜서
같이 먹는 것 괜찮아요?"
금세 좋다고 했다.
언니는 친절하고 몽글몽글한 사람이다.
나도 사실 둘 중에서 녹두전이 먹고 싶었다.
점원분에게
메뉴가 나오는데 얼마 정도 걸리냐 물었더니
냉면은 5분 안에 나오고
녹두전은 15분 정도 걸린다 했다.
녹두전만 미리 주문하면서 생각했다.
쿡..
센스 있다...
언니가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나니 더 반가웠다.
반가워 맞잡은 언니 손이 차가웠다.
역시 역에서 너무 먼 곳을 잡은 걸까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언니는 전혀 아니라고 따스하게 말했다.
금세 녹두전 도착!
젓가락으로 신나게 8등분을 완료했다.
처음 먹은 조각 안에 튼실한 돼지수육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행운은 단 한 번뿐이었다)
쫄깃하니 매우 맛있었다.
녹두전 맛도 좋았다.
물냉과 비냉도 금세 나왔지만
녹두전 맛에 취해 녹두전만 먹고 있는 사이,
우리 테이블을 쳐다보며 안절부절못하시던 직원께서
와서 말씀하셨다.
비냉은 바로 비벼놓으셔야 해요..
면 부니까 같이 드세요..
아까부터 느꼈지만 친절한 가게다.
후기에서 평양냉면 간이 센 편이라는 말을
보고 가긴 했는데
정말로 간이 평양냉면 치고 강한 편이어서,
평양냉면 초심자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맛이었다.
면은 특이점 없이 맛있는 맛이었고
고기는 고기 맛이 잘 나지만 부드럽지는 않은
조금은 거친 맛이었다.
놀랐던 부분은 비빔냉면.
주문할 때 많이 맵다고 하셔서 걱정한 것과 다르게
맵찔이인 나에게 다행히 크게 맵지도 않고
양념이 과하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간이 싱겁지도 않게, 조화롭게 맛있었다.
면과도 잘 어울리고.
난 비냉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여기 비냉이라면 또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맛있게 먹으면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있던 많은 손님들도 조금씩 떠나가고..
직원분께서 면수 두 잔을 가져다주시면서
조심스럽게 몇 가지 식기를 가지고 가셨다.
식사가 끝났음을 뜨끈하게 알려주는 이 방식마저도
따뜻하니 맘에 들었다.
어느덧 시계를 보니 이미 1시간 30분을 넘긴 체류시간!
아차 싶어 얼른 이동하기로 했다.
'호 옥시라도~ 오늘 손님이 적으니까 ~
1시간에서 주차를 조금 더 주실 수도 있나?'
5퍼센트 정도 기대했는데
당연히도 안내받은 대로 주차는 한 시간 지원을 받았다.
주차비로 8천 원을 내면서
다음에 오게 된다면 1시간 알람을 켜 놓을까,
잠깐 생각하고 웃었다.
맛도 서비스도, 주차비 낼 가치가 있는 가게였다.
올해 첫 평양냉면을
맛있는 가게에서 좋은 사람과 먹어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