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멜로'가 아니에요
(스포가 많지는 않겠지만 극 보시는데 아무 사전정보도 얻고 싶지 않은 분은 뒤로 가기 눌러주세요!)
* 등장인물: 최우식, 박보영 등
* 방영: 넷플릭스
* 회차: 10부작(부당 1시간씩)
* 그루 지수: 한국 드라마 TOP 25~30
* 티슈 사용: 일곱 장
* 10시간을 볼 가치가 있는가?: YES
트렌드와 거리가 먼 내가 트렌디의 끝판왕을 만나 따끈따끈한 멜로무비를 보았다.
하루 만에 다 봐버렸고 또 재밌게 봤다.
최우식 씨의 약간 쪼그라들면서도 귀엽고 미워할 수 없는 연기가 이곳에서도 빛을 발한다(가끔씩 살인자ㅇ난감이 생각나는 건 내 탓이 아니다 ㅋㅋ). 박보영 씨의 드라마를 어쩌다 보니 이번에 처음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이곳에서도 사랑스러움이 최고봉이다. 물론 캐릭터 자체는 무미건조하다 느낄 수도 있지만. 조연분들도 다 좋은데 신기한 건 단역배우분들의 연기(ex. 행인 등)가 눈에 띄게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어서 웃겼다. ㅋㅋ 지인분들이 나오셨나? 서브주인공 커플 및 영화감독님, 바 사장님 등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무비 어머니 또한 눈물 한 바가지를 흘리게 해 주신다. 멋진 김재욱 씨가 이번엔 생기 잃은 형의 역할로 나오기에 당혹스럽고 아쉬웠고, 주연 배우급인데 왜 여기서 이렇게 앉아계실까 의아했는데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 김재욱은 김재욱이다. 티슈 2개가 형과의 에피소드에 사용되었다. 흑흑
드라마 전반부만 보면 알콩달콩 사랑냄새가 많이 나지만, 사실 끝까지 다 보고 난 지금은 이 드라마가 그저 사랑 드라마라기보다는 가족 드라마에 가까운 구원 서사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 모두 나름의 사연과 매력이 있어 재미가 있었고 또 그들의 대사와 편지를 보면서 많이 슬펐다. 기대와 실망, 상실의 고통이 커 누구와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멜로영화를 꼭 찍고 싶은 사람(무비), 일생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판에 들어갔지만 가족의 일로 일순간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된 사람(최우식), 갓 스무 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내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 아홉 살 난 동생이었던, 표정도 말도 많지 않은, 하고 싶은 게 없어 보이는 (최우식의) 형, 영화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영화 현장에서 사느라 딸을 챙기지 못하지만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하지만 영화현장에서 일을 하다 사고를 맞이한 (박보영의) 아버지, 삶에 보탬이 되지 않는 남편 대신 삶을 건사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무뚝뚝하지만 항상 행동으로 딸을 사랑하는 (박보영의) 어머니, 가족으로서의 정이라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는 가족과 그런 가족보다 더 나를 살뜰히 챙기고 응원해 주는 여자친구, 그리고 그 여자친구와의 이별 등.
영화 이름이 멜로'무비'여서 그런지 화면비도 영화 같고 화면 색감도 무척이나 예쁘다. 그리고 구도도 멋지고 장면 하나하나도 예쁘게 담기 위해서 신경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트 디렉터도 아름답고 멋진 걸 좋아하는 분 같았다. 모든 집과 사무실, 바부터 아름답고 회마다 등장하는 영화 같은 신(그림으로도 그려서 기념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아름다운 해바라기밭과 빨간 차가 등장하는 드론 신부터 해서 눈이 즐거운 신이 많다.
'멜로':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묘사보다는 허구가 많은 파란만장한 줄거리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하여 희비가 엇갈리는 장면 속에 전개되는 통속극을 가리킨다. 또한 권선징악적인 귀결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멜로드라마는 오늘날과 같이 기업화된 상업영화의 최대의 요소이다.'
- 나무위키
이 정의대로만 보자면 이 드라마는 그다지 '멜로'스럽지 않다. 인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상실 및 가족 간에 겪은 절절한 아픔은 드러나지만 메인 주인공의 사랑을 가족, 병마, 성공 등이 가로막지도 않고, 동네에 살인마가 있어 생명을 위협하는 것도 아니며, 둘의 신분차가 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계략을 쓰고 둘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다. 메인 주인공은 사랑을 할 때 현실 위를 붕 떠서 헤엄치지만 평소 그들의 삶은 두 발이 땅에 박혀있다.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있음 직한 팍팍한 현실이다. 부모의 부재, 간병, 아버지의 사망, 인간미 없는 가족, 몇 년째 인정받지 못하는 커리어 등. '멜로무비'를 보는데 메인 주인공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현실과 가족 때문에 더 많이 울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서로의 어려움을 알고 둘도 없는 힘이 되어주는 구원 같은 모습에 안도했다. 요즘 흔치 않은 '비멜로'물이라 오래간만에 마음 졸이지 않고, 스트레스받지 않고 보면서도 크게 지루하지 않은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음악. 남자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 두 친구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다시 만나는 이야기의 서사, 그리고 그 사이에 등장하는 '음악' 자체가 그냥 '음악 영화'와 무척이나 닮았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큰 틀또한 서브주인공 둘의 사랑 이야기를 쓴 극본을 토대로 음악 영화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고. 둘의 사랑이 노래에 담겨 있고, 노래로 다시 이어지고, 또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노래 곳곳에 영화가 등장하고, 또 음악만큼 아름다운 배경과 장면도 많이 나오고. 대놓고 음악 영화 서사 맞네!
그리고 음악으로 엮인 사연 많은 커플은 절대 이어지지 못하는! ㅠㅠ 서사에도 충실했다. 흑흑.
이 드라마에서 노래가 얼마나 다양하게 나오는지, 같이 시청하던 폭스가 4화 정도 보고 있는데 "여긴 노래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와?"라고 눈치챌 정도였다. 위에 인용한 이준영 님의 노래도 스토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목소리가 엄청 멋지시다. 전반적으로 피아노, 그리고 바이올린 첼로 정도가 사용된 깔끔한 음악들이 많이 나오며 극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런데 중간중간 사용되는 비지엠에서는 기존에 많이 들었던 익숙한 멜로디가 일부만 변형되어 들리는듯한 기분을 두어 번 받았다(ex. 중간쯤 비지엠 - 같은 음이 세 번 반복되는 부분에서의 A thousand years와의 유사성 / 10화 마지막에 나오는 음악과 오혁 음악의 유사성). 완전한 창작은 없고 내가 그저 유사하게 느끼는 걸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 음악 드라마라고 느끼는 와중에 어디선가 들은 음악같이 느껴지는 다소 익숙한 음악의 등장은 조금 아쉬웠다.
10부작의 드라마를 보았지만 잘 만든 예술영화를 본 기분도 같이했다. 제목에 '무비'가 들어가는 만큼 영화 스태프 이름 나열하는 부분부터 화면비, 영상 스타일 등등에서 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요즘 통속적으로 나오는, 매 화가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그런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라면 성미에 맞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잔잔한 듯 깨알개그가 들어가 있고(과하지 않아 좋다) '도대체 왜 저럴까?' 하는 인물들의 속사정을 스토리 후반부에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느끼는 슬픔과 감동이 있다. 다양한 가족과 인물, 내가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과의 소통과 화해, 그리고 종결과 치유를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가족으로부터의 슬픔을 투영하거나, 다른 사람의 대사로서 내가 치유받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이 드라마는 과하지 않고 너무 느끼하지도 않고 너무 우울하지도 않고 너무 달달하지도 않은,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많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드라마였다. 10시간을 쓸 가치가 있는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