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결정적인 스포가 담긴 리뷰입니다. 영화를 보실 분은 지금 읽지 마시고 영화 감상 후 읽어주세요~^^
꽤 많은 동화에서 '친모'의 부재가 중요한 사건의 원인이 되거나 사건의 전환점이 되곤 한다. 그런 동화 속 주인공은 꼭 '어린 소녀'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미녀와 야수> 이야기가 그렇고, 우리나라 전래 동화인 <콩쥐 밭쥐>, <장화홍련전>,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그렇다(<헨젤과 그레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남매가 지분을 나눠 갖기는 하다).
이런 동화에서 친모가 있었다면 계모와의 갈등 상황은 전개되지 않았을 테다. 계모를 대신한 다른 악한(사람을 잡아먹는 마녀나 맹수 등)과의 대결 구도도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적인 모성을 신봉하는 이들에게는 이야기 속에서 모성의 존재를 아예 지우는 게 마음 편했을지 모르겠다.어린 자녀들이 고통을 겪으며 악과의 대립 속에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야기 흐름의 걸림돌이었을게다. 고통을 당하는 어린 자녀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어머니는 없을 것이라는 인식 하에.
이런 이야기 속 어린 소녀(년)들의 고난 이야기에 마음이 아파질 때면, 꼭 이런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엄마가 있었으면 이 아이들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절대적인 모성 신화에 반기를 든 영화가 개봉되었다. 모처럼 최신 개봉작을 본 것은, 긴 호흡으로 스토리를 들여다보기 싫어하는 중3 딸이 친구와 함께 극장까지 찾아가 보겠다는 영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이 용호상박의 대립각을 펼치며 열연한 영화, <크루엘라>다.
선한 엄마의 딸로 태어난 '에스텔라'(엠마 스톤 분)는 태어날 때부터 보통의 아이와는 '다른' 아이였다. 흰색과 검정 색의 머리카락 색을 반반씩 갖고 태어난 에스텔라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연민'이나 '조롱', 혹은 '우려'였다. 나와 다른 사람, 세상을 대하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 정확히 그것이었다.
선택하여 태어나지 않은 삶에 가하는 세상의 모진 시선 속에서 에스텔라는 숨어들기보다는 당당히 맞서는 쪽을 택했다. 놀리는 남자아이들은 때려눕히고, 걱정과 우려를 표하는 눈빛들에는 "모두의 비위를 맞추며 살 필요는 없잖아"하며 받아친다. 자신이 보통 사람들, 특히 여자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받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뭔가 해낼 줄 알고 있었다"라고 자신의 특별함을 오히려 앞세운다. 이 타고난 자존감은 결국 에스텔라를 당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바로네스'(엠마 톰슨 분)와 맞닥뜨리게 한다.
바로네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인을 내놓는 직원의 해고쯤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직원들을 하찮게 대하는 못된 상사다.그녀의 이름을 단 브랜드 의상을 취급하는 백화점 고위직조차 못마땅한 판매 실적과 부정한 회계 관리를 꿰고 있는 바로네스 앞에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바로네스는 그런 캐릭터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그런 바로네스가 에스텔라를 알아본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긴 했지만 바로네스의 수석 디자이너로 들어간 에스텔라와 바로네스의 패션에 대한 치열한 열정 대결은 시작에 불과했다.
에스텔라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바로네스가 자신과 엄청나게 특별한 인연이었다니, 에스텔라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리고 작심한다. 슬픔의 5단계 수용 단계인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에 '복수'라는 단계를 더하기로.
한때 미운 오리 새끼였던 에스텔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붉은색 가발로 숨겨왔던 자신의 허울을 벗어던진다. 마침내 흙과 백, 반반의 헤어스타일인 본래의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게 되었을 때, 그녀의 명칭은 '크루엘라'로 바뀐다. 크루엘라는 특수 의상을 바꿔 입어야 슈퍼 파워를 발휘하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배트맨'이나 '아이언맨'과는 다른 캐릭터다. 그녀는 자신의 본모습을 온전히 드러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한다. 엠마 스톤이 영화 촬영 후 기자와의 면담에서,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좀 더 대담하고 과감해지고 진짜 나를 찾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기존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역경 속에 자라난 재능 있고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능력 있는 남성들의 도움으로 한순간에 행복해지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다. 오롯이 타고난 천재성과 갈고닦은 역량을 발휘해 마침내 원하던 꿈을 이루는 크루엘라는 분명 통쾌하다.
한편, 크루엘라의 복수의 칼날이 자신을 낳아준 친모를 겨냥함은 편치 않은 지점이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에스텔라였던 그녀를 정성스럽게 길러준 엄마에 대해서만 "my mother"라고 칭했던 그녀에게 자신의 천재성의 근원은 기쁨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들의 화려한 패션 대결, 흥미진진하다 by 네이버 영화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친모'가 기쁨일 리는 없다. 디즈니는 동성 간의 대결구도로는 여성의 천재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 약하다고 판단했나 보다. 친모로까지 발전(?) 시킨 악의 구도에대략 난감한 것은 너무 '계모 이야기'에 익숙한 탓일까? 크루엘라가 타고난 천재성을 일신의 복수에 가두지 않고 더 큰 세상에서 발휘하기를 바란다면 너무 나이브한 소망일까.
패션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도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패션 대결은 흥미진진하다. 화려한 패션을 보여주는 방식도 하나같이 기발하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소장각 만렙' 영화임에 분명하다.
영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와 메릴 스트립의 멋진 의상 대결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영화. 한편, 태생의 비밀을 담고 모성 신화를 깨뜨린다는 점에서 또 다른 영화. 어찌 되었건 무더운 한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큰 한방'을 원한다면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영화임엔 분명하다.
영화 <크루엘라>에 대한 나의 한줄평은,
"화려한 볼거리와 풍성한 재미로 가득한 블록버스터에 더 큰 세상에 향하기를 바라는 복수의 칼날 더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