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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Oct 21. 2022

도슨트가 들려주는 <내가 사랑한 예술가>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는 누구인가요?


화가들의 걸작품과 그들이 속한 문예 사조만으로 우리는 그들의 정신을 다 헤아리기 어렵다. 그들의 작품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드러내고자 했던 본질에 더 다가서게 되는 듯하다.     


스타 도슨트인 정우철 작가가 책, <내가 사랑한 화가들>에서 도슨트로서의 자신의 인생을 바꾼 열한 명의 화가를 소개하며 그들의 삶에 집중했던 이유일 것이다. 저자는 "화가의 인생을 알고 그림을 보면 좀 더 풍부하고 밀도 높은 감상을 할 수 있다"라고, "화가의 인생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공감하다 보면 눈앞에 놓인 그림뿐 아니라 그림 너머의 작가와도 교감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저가가 소개한 열한 명의 화가들은 19세기~20세기에 활동했던 이들로, 추상과 구상, 입체파와 야수파,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의 복잡한 전문 영역으로 화가들을 구분 짓지 않고 그들의 삶에서 공통분모를 찾아 범주화했다.

1장에서는 '사랑, 오직 이 한 가지를 추구했던 화가들'로 마르크 샤갈과 앙리 마티스, 아메대오 모딜리아니, 알폰스 무하를, 2장에서는 '자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모든 시련을 감수한 화가들'로 프리다 칼로, 구스타프 클림트, 툴루즈 로트레크, 케테 콜비츠를, 3장에서는 '배반, 세상의 냉대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화가들'로 폴 고갱, 베르나르 뷔페, 에곤 실레를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샤갈이나 마티스, 모딜리아니, 프리다, 클림트, 고갱, 에곤 실레 등은 더 익숙했지만 로트레크, 콜비츠, 뷔페, 알폰스 무하는 이름도, 작품도 낯설었다. 화가와 미술 작품들의 입문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화가들만이 아니라 그 시대에 활동했던 다양한 화가들과 그들의 생을 만나는 일은 무척 흥미로웠다. 다른 별세계 사람들만 같았던, 교과서 명화로 만난 예술가들에게서 우리와 하나 다를 바 없는 삶의 희로애락을 발견하면 훅 친밀감이 몰려온다.    

  

샤갈이 평생 자신의 연인이자 아내인 벨라와의 사랑의 감정만을 그린 화가라고만 알고 있다면, 그의 나머지 절반의 그림은 간과될 수밖에 없다. 98세까지 장수했던 그의 삶이 축복이기만 했을까. 유대인의 태생으로 양차 대전을 모두 겪어내면서 그가 겪었을 고뇌의 심상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러시아의 유대인 게토 지역이자 그의 고향 마을이었던 '비테프스크'를 모른다면, 그의 그림 속 곳곳에 등장하는 비슷한 모양의 작은 마을의 의미를 알기 어렵다. 하늘을 나는 성자에 대한 유대인의 종교적인 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그의 그림 속에서 인물들이 왜 그렇게 둥둥 떠다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신비롭다거나 재밌다거나 아름답다고만 느끼고 말았을 그의 그림들을 그의 삶을 알고 들여다보면 더 아름답고 더 애잔해진다. 난다 긴다 하는 화가들이 모두 모여들었던 19세기 프랑스에서 어느 사조에도 묻히지 않고 독자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그만의 확고한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샤갈의 <도시 위에서>라는 작품에서 벨라와의 사랑의 감정과 행위를 표현하는 방식도 너무 아름다웠지만, 그림 왼쪽 하단에 쭈그리고 앉아 몰래 ‘응가’를 하고 있는 남자를 그려 넣은 그의 위트에 마음의 온도가 몇 도는 오르는 듯했다. 도슨트(미술 작품 해설가)의 친절한 해설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쳐버렸을 장면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함께 했던 책이다.        

   

마르크 샤갈, <도시 위에서> (1914~1918) - 약혼녀 벨라와 한 몸인 듯 그린 표현 방식에 경탄이 절로 나와요. (그림 출처: 리디아의 미술 이야기)


여성 화가로 프리다 칼로와 케테 콜비츠만이 소개된 점은 아쉽지만, 여성은 공식적으로 미술학교에 입학할 수도, 미술 학회 정식 회원이 될 수도 없었던 당대의 보수적인 시대상을 감안하면, 저자가 얼마나 공들여 이 화가들을 택했을까, 싶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김선지, 2020)에서 생애 처음으로 19~20세기에 활동했던 여성 화가들의 이름을 만나며 얼마나 반가웠던가. 그들 대부분이 화가 아버지와 남성 화가 조력자가 없었더라면 기록으로조차 남지 못했겠다는 생각에 또 얼마나 서글펐던가. 그런 열악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마음을 그림으로 담아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여성 화가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다.   


                       

당신에게도 마음을 건드린 예술가가 있는가?  

   

개인적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학가였던 나혜석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한 재능 많던 여성의 삶이 결혼과 출산 이후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스러져 간 것이 못내 안타깝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모성에 대한 일종의 신화-모성은 여성이 가져야 할 천부적인 자질이며, 이것이 없거나 이를 거부하는 여성은 모(母)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를 모든 여성들을 대신해 속 시원하게 깨뜨려 주었기 때문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나혜석 저/장영은 편, 2018)에 실린 <모(母) 된 감상기>에서 나혜석은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떼어 가는 악마",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써서 당대 목소리를 내던 주류층인 남성 지식인들의 공격을 자초했으니 그 용기가 참으로 놀랍다.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그 순간은 단순히 한 개인이었던 존재가 새 생명을 탄생시킨 위대한 존재로 치환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 생명을 온전히 길러내는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자각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왜 자식을 기르는 일이 '모체의 살점을 뜯어 아이에게 먹이는' 고통의 과정인지 아이를 낳고 길러 본 여성이라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자들의 고통은 '희생'과 '헌신'이라는 고귀한 모성 앞에 고개를 들어서는 안 되는 금기 사항이었다. 누군가의 고통으로 누리는 영화(榮華)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면 그 고통은 드러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게 굳어진 모성의 신화에 정면으로 맞서며 모든 여성들의 고통을 대변해 주었던 그녀가 정말 고통스러웠을 때 어느 누가 그녀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는가? 주홍글씨 꼬리표를 붙여 화가로서의 그녀의 위상마저 깍아내리고 재능을 영원히 묻어버렸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다. 에곤 실레가 생전에 했다는 말로 애도를 대신한다.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다. 이러한 행위는 태어나는 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다."(p.302)        




주 1회 취미 미술로 겨우겨우 그림을 배우고 있는 나지만 순수한 마음이 끌리는 대로 화폭에 담아보려 한다. 유려한 문장가는 아니더라도 나를 둘러싼 세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로 남기려 한다. 그것이 이 시대 평범한 여성의 삶이 살아남는 길이라 믿으며.


최근에 내 마음에 들어온 친구의 함박웃음을 그리는 중이에요. 친구는 모르죠.^^ 멋지게 완성하고 싶네요. by 그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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