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영 Sep 08. 2024

대면 인터뷰를 하다(2탄)


인터뷰가 개학 직전 날짜로 확정됐을 때, 실로 나의 계획은 완벽했다.


1박 2일 시댁을 다녀오느라 질문지를 늦게 확인하겠지만 답변 작성이야 두 어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집에 늦게 도착하더라도 그 정도 시간은 여유 있으리라. 밤에 조금 일찍 잠이 들어 뽀송한 피부와 말간 멘털을 장전하고 인터뷰 당일 오전 일찍 학교로 출발하리라. 방학 중 학교에서 학생 책상을 전면적으로 교체했다고 니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교실을 깨끗이 청소해 두어야지. 말복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기세가 꺾이지 않는 맹렬한 더위로 따끈하다 못해 한증막일 교실에 미리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냉장고에서 갓 꺼내 베어문 수박처럼 시원하게 만들어 놓아야지. 인터뷰 중 긴장감이 아니라 더위 때문에 땀을 줄줄 흘리는 참사는 막아야 하니까.


그런데 늘, 계획은 계획일 뿐, 계획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특히 내게 그런 일이 잦은 것은 아무리 번듯한 계획이라 해도 그것에 잘 따르지 않는 내 반골 기질 때문인가.

인터뷰 전날, 질문지에 답변을 달다 절반도 못 채우고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억지로 잠을 청했다. 7시간 정도는 자 줘야 최적의 컨디션이 되지만, 채우지 못한 질문지 걱정에 더 오래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6시간은 자야 멘털을 붙들 수 있을 것 같아 부러 맞춰둔 8시 알람 진동이 경기하듯 울려댔다. 징, 지잉 징~

'아, 좀만 더 자고 싶어라!'

내 뇌는 여전히 멜라토닌을 분비하며 나를 잠에 붙들어 두려 했다. 내 이전 브런치 필명대로 그루잠(깼다가 다시 드는 잠)을 반복하며 20여분을 더 뭉기적거리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자마자 물 한 컵을 마신 후 노트북을 켰다. 인터뷰 질문지 파일을 띄워 남은 질문들에 답을 적어 나갔다. 인터뷰 질문지를 붙들고 있노라니 늦어도 10시까진 집을 나서리라, 세웠던 계획은 가뿐히 제쳐졌다. 시간 관계상, 마지막 두 어 개 질문엔 핵심 키워드만 입력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에디터님께서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신 아이들 글쓰기에 도움을 받은 책들자료, 내가 그동안 출간했던 책도 챙겼다.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3잔과 ABC주스 1잔을 샀다. 인터뷰어와 사진작가, 나 이렇게 셋 일 테지만, 주스는 두 분 중 커피파가 아니거나 먼저 커피를 마셨경우 대비 용이었다. 점심 식사를 할 시간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두유까지 사들고 부랴부랴 학교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인터뷰 약속 시간은 오후 2시. 남은 시간은 1시간,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인터뷰가 진행될 우리 반 교실 에어컨을 풀로 틀어놓고 연구실에서 5분 만에 삼각 김밥을 해치웠다.  배 고프면 뇌 기능이 정지되는 사람이 고민 없이 중요한 불부터 껐다.

그런 다음, 교실을 치우는데, 켠 지 얼마 안 된 에어컨은 실내 더위를 빠른 속도로 밀어내지 못했다. 여전히 한낮 온도가 33도를 웃도는 폭염실내 에어컨이 더디게 작동했다. 높은 실내 온도에서 밀대로 교실 바닥 청소를 하고 있자니 머리와 등에서 땀이 또로록 흘렀다.

대강 철저히 드라이한 머리 모양이 땀으로 틀어졌다. 가뜩이나 짧은 머린데 땀으로 달라붙어 골든 트리버가 큰 혀로 한번 쓱 핥은 꼴이 된 내 머리, 오 마이갓! 선풍기를 틀어 살살 말리며 급히 컬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사진 예쁘게 나오긴 글렀다. 이제 말이라도 버벅거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


약속 시간 5분 전, 인터뷰어인 홍현진 에디터님과 사진작가님이 도착했다. 학교 현관문에 마중 나가니 두 분이 나란히 서 는데 어느 쪽이 에디터이고 어느 쪽이 사진작가인지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봤을 게다.

노트북카메라. 서로의 무기가 다른 일의 차이는 옷차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밝은 머스터드색 폴로티에 청바지 차림의 모범생 같은 에디터와 올블랙 차림에 폭염에도 하지 않고 반팔 재킷과 캡으로 범상치 않은 스타일을 완성한 사진작가. 두 사람의 다른 스타일이 업무 협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찰나의 궁금증이 생기는 것도 잠시, 두 분은 익숙한 듯 곧 자신의 일에 착수했다.


24년 차 교사로서의 삶, 9년간 2학년 담임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했던 글쓰기 활동, 그로 인해 2023년 출판된 책, 어린이의 문장. 같은 해 가슴 아프게 겪었던 서이초 사건으로 탄생한 책, 어쩌면 다정한 학교...

'교사'라는 나의 일과 삶, 그간 출간한 책 이야기로 인터뷰 2시간이 거의 채워졌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듣는 쪽을 택하게 되지만, 인터뷰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말하는 양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할 말이 생각이 안 나서 버벅거리다 목까지 빨개지면 어쩌나, 우려했던 상황은 다행히 생기지 않았다. 인터뷰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끌어주신 인터뷰어의 노련함 덕분이었을 테다.


"올해 브런치출판프로젝트 대상 작가들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신 사진작가님이세요."

에디터님이 사진작가님을 소개하시는 말에 깜짝 놀랐다. 작년에 브런치출판프로젝트에서 수상한 뒤 생애 처음 프로필 사진을 찍으며 1시간 30~40분여를 웃는 표정 짓느라 입가에서 경련이 일었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땐 다른 사진작가였어요).

'주름은 덜 나오게, 예쁜 표정은 순간 포착해 주세요.'

인터뷰 내내 계속 셔터를 누르고 계시던 이민정 사진작가님께 마음으로만 주문드렸다.


인터뷰 후 3주 차에 지학사 블로그와 지학사 티솔루션 '선생님의 B면'에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에서 내 모습을 보는 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앞으로 책을 10권 정도 더 내면 좀 익숙해지려나.


따듯한 시선이 느껴지는 선생님을 더 빛나게 해 주신 기자님! 칭찬해!!!

교실인터뷰 사진은 굿. 교정사진은 덜 이쁘게 나와 아쉬움.


자칭 내 1호 팬이라는 지인께 인터뷰를 보내니 자세한 피드백이 날아온다. 저작권으로 부자 되면 뭐라도 할 테니 데려가 달라고 너스레를 떨던 지인이, "혜영님이 잘 되니 괜히 내가 좋다"는 결론으로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너의 글도, 너의 책도, 아름다운 너의 인생도 이렇게 술술 풀어나가는 모습을 30년 넘게 지켜볼 수 있어서 참 감사해! 내 인생마저 빛나게 해주는 친구라서 고맙고 사랑한다.
축하한다, 너의 인생 전부를.


35년 전 중학교 3학년 때 짝꿍이자, 절친인 친구가 인터뷰에 달아준 댓글엔 울컥해지고 만다.

함께 기뻐하고 응원해 주는 고마운 이들 덕분에 난 내가 가는 길에 더 마음을 담게 된다. 내게 주어진 기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세상에 다시 돌려줄 수 있을까. 그 생각으로 한동안 또 잠을 설쳐야 할 것 같다.




발행된 인터뷰 올립니다(얼굴이 나오는 건 늘 민망하지만 좀 뻔뻔해져 볼게요. :)).


선생님의 B면 홈페이지

https://tsolutioninterview.imweb.me/32/?idx=86969825&bmode=view




 

매거진의 이전글 서투른 마음은 우연을 인연으로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