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필사 열풍의 시대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필사'로 검색하면 끝도 없는 필사 관련 책 목록이 촤라락 펼쳐진다. 어른을 위한 필사 책뿐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책까지, 모든 이들의 어휘력과 표현력을 증진시켜 주려고 출판사들이 이리 열심인 데는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AI와 기술의 발전이 자칫 인간의 능력을 무력하게까지 만드는 시대에 왜 굳이 사람들은 직접 손으로 쓰는 '필사'라는 아날로그 방식에 열광하는 것일까.
김명교 작가는, <한 줄 필사로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디지털 세상에서 접하는 과도한 정보와 자극, 피로감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몰입을 경험할 수 있어 필사를 '손으로 쓰는 명상'이라고 부른다고.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한 모든 경험들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딱히 미술이나 음악적 재능이 없고 남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게 수줍은 내향인에게도 가능한 표현 방식은 글쓰기가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자의든 타의든 누구나 초등학생 때 일기를 썼던 경험은 있으니까.
그러나 어른이 되며 글쓰기와 멀어졌다면 다시 이것과 가까워지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글쓰기로 안내하는 '필사'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모든 배움의 첫 단계는 모방이다. 풍부한 어휘력과 유려한 표현력을 두루 갖춘 좋은 문장들을 필사하는 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는 첫 발이자, 첩경인 것이다.
특히, 글쓰기가 막연한 어린이들에게 무조건 쓰라는 강요 대신, 좋은 문장을 함께 필사해 보자고 권해 보면 어떨까.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필사하는 시간을 마련해 서로의 필사를 독려한다면 쓰기라는 자칫 어렵고 막막한 행위에 조금은 또렷한 윤곽을 그려 주지 않을까.
여기, 그런 시간을 위한 어른과 어린이를 위한 필사 책 한 권씩을 추천한다.
어른을 위한 필사책,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어른의 어휘력>, <나를 위한 신화력>, <감정 어휘>, <사랑의 도구들>을 쓴 유선경 작가의 어른을 위한 필사 책,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오래전부터 읽는 이들을 위해 존재했고 행복을 열원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 속엔 읽는 것만으로도 어휘력과 표현력이 느는 것 같은 착각이 절로 드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주옥같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어휘와 친해지는 문장 단계에서 시작해 어휘력을 기를 수 있는 문장들, 어휘가 주는 힘을 전달하는 문장들을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어휘력뿐 아니라 좋은 문장 필사를 통해 공감력, 이해력, 통찰력, 자기 조절력, 표현력까지 기를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문장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한 번 더 쓰고 싶은 마음에 책에 직접 쓰지 않고 필사 노트를 따로 마련해 썼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나면 왠지 아껴 쓰고 싶은 마음 있지 않은가. 필사 책 문장을 보고 다른 필사 노트에 옮겨 쓴 뒤, 스티커로 꾸미거나 간단한 그림을 그려 넣는다면 나만의 필사 노트를 꾸며가는 재미가 배가 된다.
어린이를 위한 필사책, <한 줄 필사로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한 줄 필사로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은 <어린이조선일보>, <한국교육신문>을 거치며 17년 동안 교육 기자로 활동하고, <"아, 이런 말이구나!" 문해력의 기쁨>을 쓴 김명교 작가가 쓴 어린이를 위한 필사 책이다.
어린이의 문해력을 쓴 저자답게 책 속에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문장들이 그득하다. 저자는 어린이가 좋은 문장을 단순히 필사하는 데 그치길 바라지 않는다. 좋은 글 필사하기, 필사한 문장에 대한 나만의 의미 더하기, 글쓰기 개념 배우기, 표현 확장하기의 4단계로 필사를 통해 어린이가 스스로의 글쓰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독려한다. 초등학교 글쓰기 교육과정과 맥락을 함께 하는 어린이 필사 책이라 하겠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인 필자는 이 책을 읽고 책 속 문장 중 어떤 것들이 우리 반 아이들 수준에 맞을까 골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초등 3~4학년만 되더라도 수록된 전체 문장을 활용 가능하고 평소 책을 많이 읽어 어휘력이 풍성한 어린이라면 2학년이라도 무리가 없다. 그런 우리 반 학생 몇이 떠올라 권해 볼 작정이다.
김명교 저자는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은 필사라고 단언한다. 좋은 문장, 잘 쓴 글을 따라 쓰면서 글 감각을 익힐 수 있어서다. 매일 조금씩 쌓은 시간은 몸이 기억하고 글쓰기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니, 글쓰기와 멀어졌지만 다시 간극을 줄이고 싶다면, 아이와 함께 필사하고 싶다면, 다 떠나 말할 때마다 어휘가 안 떠올라 자꾸 어버버 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면(요즘 나ㅠ)... 필사부터 시작해 보자. 좋은 문장을 내 손으로 쓰며 자꾸 나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어휘들을 내 몸에 착 붙여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