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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Aug 02. 2023

엄마가 나에게 물려준 강점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불안은 나의 유형도 성격도 아니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 선재랑 단 둘이 시간이 맞으면 꼭 데이트를 해야지 다짐했는데 아이 방학을 앞두고 또 마침 그런 시간이 생겼다. 나랑 아이가 좋아하는 '리틀 비엣남'에서 오랜만에 선재가 좋아하는 쌀국수와 내가 좋아하는 매콤한 소스가 들어간 반미를 시켰다. 나는 코코넛 커피도 시원하게 하나 추가해서 마시고. 앨리스에 빠져서 한참 책을 읽다 보니 때마침 걸려온 전화. 이제는 상담을 종료했지만 나의 상담 선생님이셨던 주영 소장님의 전화였다. 선재와도 짧은 통화를 하고 나와는 긴긴 통화를 이어갔다. 에니어그램을 해보니 신기하게도 4번 고양이가 아니라 이번에도 또 7번이 나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8번 날개를 쓰는 7번이란 말에, 어머나, 놀라시는 소장님. 


-저는 ENFJ에 에니어그램 7번이에요.


사려 깊고 이상주의적 성향의 선도자, 사명감을 가진 코칭의 자리에 있으신 선생님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주변에 7번 유형을 만나기 어려웠는데 MBTI도 나와 끝만 다르고(나는 ENFP) 전부 일치한다는 이야기에 아, 이래서 우리가 잘 통했나 봐요, 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놀이치료도 함께 해주셨는데 선생님의 에너지와 따뜻한 마음에 큰 아이가 불안을 자연스레 표현하고 해소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당시 불안하고 답답했던 내 마음을 들어주시고 같이 울어주시고 어루만져 주셨다.


-에니어그램은 왜 하고 싶으셨어요?

-그냥. 저를 자세히 알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은 매일 반복되는 말속에 진짜 내 모습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이들과 제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말을 하는지 쭈우욱 적다 보니 왜 이렇게 말하지? 궁금해졌어요. 궁금해지니까 또 우리 엄마가 저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고요.

-어머니는 어떤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나요?

-야무지게 살아라, 여우같이 행동해라. 저랑 언니는 확실히 여우과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동물로 따진다면 나는 나를 날카롭게 털을 세우고 일단 공격을 먼저 하는 산미치광이(호저)나 아무리 큰 적이 와도 일단 덤비고 보는 벌꿀 오소리, 라텔 같은 동물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름부터 미치광이라니 좀 그렇지만, 우리 둘째 선율이가 그렇다;;;;) 그런데 큰 아이에 비해 둘째가 나이 터울도 좀 있고 형이 크다 보니 행동을 다 따라 하고 스스로 하려는 독립심도 커요.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는 하트 뿅뿅 눈으로 '세상에 어마어마하게 야무져, 어쩜! 야무져!'칭찬을 하는데 갑자기 또 울컥하더라고요. 어느 날엔 그 말에 짜증도 나고 눈물이 나고, 왜 자식에 이어 손주에게까지 반복하는 '야·무·지·다'라는 그 말이 가슴 아팠던 걸까요.

-스스로를 생각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바라보는 건 정말 중요하죠. 그러면 반복된 감정 속에서도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준 강점이 있나요?

-(이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음..., 저한텐 별로 말을 안 했지만 밖에서는 저를 좀 자랑스러워하셨던 것 같아요. 사람들한테 이러이러하다 칭찬도 해주고.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 들은 거 말고 스스로 나에게 물려준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강점이요.

-(잠시 정적, 또 한참을 생각한다) 자라면서 한 번도 경제적으로나 물질적, 부족함 없이 자라게 한, 그냥 부모로서 교육열이 높아서 …

-아니요, 전부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관점이에요. 누군가의 생각, 들은 말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부모로부터 온 진짜 나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없는 거 같아요. 


Note. 이 말을 하는데 갑자기 왜 또 갑자기 짜증이 나는지. 눈물이 살짝 맺혀서 대롱거렸다. 사랑받아온 편안한 감정이 없어서 그렇다는 마음에 공허와 미움이 또 밀려왔고 몰아치듯 나를,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는 그 과정, 별 거 아닌 작업(생각)에도 나는 뭔가 버거움과 답답함이 있었던 것 같다. 분명 통화하기 전까지 내 상태는 잠잠하고 평온하고 모든 게 좋았는데, 아니 소장님의 전화 통화 시작에만 하더라도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말이다.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아빠에게 물려받은 강점이. 이제 그걸 생각해 보면 되겠네요.

-저는 늘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고 겁이 많았어요. 지금도 뭔가를 떠올리려 하는데 감정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정서가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게 하나의 유형일 뿐 사실은 성격, 성향, 기질일 뿐 

그게 어디 온전한 나인가요? 

어디. 그렇지 않아요. 

불안을 품고 있는 마음을 남들보다 민감하게 세밀하게 

느끼는 것일 뿐 또 불안이 곧 나 자신도 아니고요. 


성향의 틀 안에 나를 가두면 오히려 진짜 내가 보이지 않는구나, 느꼈다. 겁이 좀 많은 거, 남들보다 민감하여 불안함을 느끼는 거 그래, 그게 진짜 나는 아니지.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건 늘 그다음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으로 시작하는 내 이야기


단단한 벽

강점 에세이 쓰기 3주 차 몰입할 주제가 바로 이 벽이다.








                       벽


          약점과 한계, 좌절감




나는 글자를 보자마자 막막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기분을 느꼈는데 이너조이님의 코칭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약점과 한계, 좌절감을 쓰는 부정적 생각을 걷어내고 관점 전환 혹은 해결 방향을 정리하고 조력자를 찾는 파트란다. 


찾을 수 있을까, 글을 시작하는  서두에도 긴가민가, 나의 글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어느 곳에서 멈출지 나도 나를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한 번, 늘 그랬듯이 일단 써보는 수밖에.



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나는 바닥을 떠올렸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 늘 바닥에 떨어져 더 이상 올라올 수조차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종종 빠지곤 했다. 나는 그래서 감정이 조금만 우울해지려고 하면 공격적인 언어로 사람들을 상대했고, 우리 언니도, 친한 친구들도 많이 울렸다. 왜 그랬는지 조차 떠올려지지 않은 사소한 일에도 날을 세우고 덤볐던 것 같다. 뭐 살펴보면 늘 나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다만 남들보다 그 버튼이 더 빨리 뜨겁게, 나의 약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올라왔다.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드리지 말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지 왜 건드려, 이런 식으로 날이 선 순간, 이미 내가 통제할 수 없이 와다다다 잔인한 말이 쏟아졌다. 어떤 말이, 말투가 그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하는지 너무도 잘 파악한 사람처럼 내가 움직일 때가 많았다. 그래, 나는 밝고 에너지가 넘치게 보이는 한편 이면 속에는 혼자서 속 시끄럽고 복잡하고 민감한 감수성을 품은 겁 많은 아이기도 했다. 겁 많은 이 아이는 와들와들 잔뜩 떨면서, 이렇게까지 바닥을 보이면서 그래도 날 사랑할까, 누군가를 향한 공격하는 마음과 모순되게 늘 이런 의문을 품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것 같다. 불의를 보고 못 참는듯한 다 말하는 내 성격도 사실은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서 시작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먼저 말할게, 나는 다 쏟아냈으니 이 정도 다른 말과 상처를 받아도 그제야 내가 견딜 수 있을 것 같기에. 

나의 약점과 한계, 바닥 속에서 흐느끼고 울었다. 울음을 참지 않아도 분노가 휘몰아쳐서 눈물조차 나지 않다가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바닥에 엎드려 울고 기도 했다. 사과하는 건 부끄럽지 않았으나 화를 못 참고 그대로 질러버린 폭풍 같은 나의 말과 행동은 부끄러웠다. 두려움, 수치심이 몰려왔다. 나는 분명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드는데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완벽한 기준은 너무 높았던 탓일까. 단단하지 못하고 일관되지 못하게 요동치는 나의 감정의 기복이 나의 큰 약점 같았다.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는 버럭과 분노의 감정이 나를 감싸서 꽁꽁 묶인 것 같았다. 그 순간 욕을 하지 않고 당장에 따지지 않으면 미치겠고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전부 바닥까지 토해놓고 그렇게 내가 만신창이가 된다 해도 전부 다 내놓지 않으면 내가 아닌 거 같기에. 


수련회에 가서도 간절히 기도한 건 습관적인 나의 화와 욕하는 습관이었다. (뭐 대단한 욕을 한 건 아닙니다만, 늘 혼잣말 욕이었다고 해도 욕에 사실 대단하고 안 대단하고 가 있나요;;;) 뭔가 정결하게 기도하고 가꿔진 마음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또 뭔가 내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들면 그걸 공격이라고 받아들이고 따지고 싸우고 또 말로 그 사람을 엉엉 울게까지 만들었다. 우리 언니와 착한 난정이, 정희도 울었던가, 친구들을 한 번씩 돌아가며 다 울린 것도 같은데. 부모님도 나 때문에 내 앞에서 우시진 않았지만 많은 눈물을 삼키시진 않았을까. 차마 욕해 놓을 수 없을 때 엄마가 사준 지갑 가득 욕을 쏟아놓고 풀어놓은 것처럼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풀렸기에 그 방식이 옳은 거, 나에겐 맞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지금도 역시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화가 날 때마다 버럭!! 이 눔의 새뀌들! 하고 험한 말을 오고 가니 나도 모르게 반복된 이 말에 스스로 더 심한 욕이 나온다거나 하는 찰나에 깨닫는 거다. *새끼(이건 완전 나를 욕하는 말이라 나오기 전에 멈칫하게 된다는 게 웃기면서도 슬픈 일)로 이어지고 그래야 해소될 것 같은 기분. 아차 싶으면서도 나는 지난날들을 떠올려보니 눈물 뚝뚝 회개와 수련회의 삼박 사일, 선교의 일주일 기간으로도, 아니 날마다 주님을 부르면서 울면서 일기장 가득 기도문을 써도 나는 뭔가 고쳐지지 않는 사람인 건가 하고. 


버럭하고 나오는 전투적인 불 같은 성격과 다르게 너무도 섬세한 그 이후의 죄책감과 수치심이 나를 늘 힘들게 하는 이었다. 그렇다. 이건 나의 벽. 




너는 네 단점을 엄청 잘 파악하고 스스로 아무렇지 않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 게 대단해, 



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는 늘 그다음이 나의 무거운 마음의 숙제였고 벽이었다.

다 알아, 너무도 잘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안 고쳐지는 걸까. 나의 인격과 인성은 왜 이렇게 결함과 하자 투성이길래 분노와 화를 꿀떡 삼키는 인내와 끈기가 당최 안에 내재되어있지 않는 걸까. 하나님께서 설계하실 때 깜빡 잊으신 건 아닐까. 좀 참았어야 하는 내 안의 어떤 버튼을.


여러 번 넘어지고 울고, 그럴 때마다 단단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욕 한 마디조차 꺼내지 않은 우리 언니, 나에게 버릇없고 싹수없는 동생이라고 하면서도 내 손을 붙잡아주고 울고 같이 기도해 준 언니의 친구들, 내가 울려서 눈이 빨개지고 너는 너무 잔인한 애야, 하면서도 다음날 자기들이 사과하고 다시 내 손을 잡아준, 기꺼이 잡아준 나의 귀한 친구들과 동료들, 부족한 나를 제자로 삼아준 선생님들. 사실은 지금까지 기다려주고 넘치게 베풀어주신 부모님. 엄마가 말없이 사둔 수많은 책들, 가져오고 주워온 읽을거리들, 맞아, 그랬지. 책을 좋아하는 건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가 그 시작이었는데.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의 영미소설)란 책을 내가 하루 만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책을 먼저 재밌게 읽고 있었던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다정하게 내가 원하는 말로 내 마음을 채워주지 않았지만 -혹은 못했지만- 뭔가를 시작했으면 반드시 끝까지 해야 한다는 걸 매 순간 나에게 알려주셨다. 12년 개근의 결실! 그렇기에 그냥 땅 속으로만 숨고 싶고 미치도록 도망치고 싶은 질풍노도의 순간에도 나는 꾸역꾸역 학교에 가고 8년 간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눈높이 수학도 마지막 Z단계까지 완성해서 수료할 수 있었다. 해 놓고 보니 좋았던 순간들, 사실 뭐 대단한 감정은 아니었고 그 감정 역시 찰나였을 수 있지만 건성건성 덜렁거리는 성격 중에 '책임감'을 배운 것 같다. 엄마의 못다 한 열정과 꿈을 언니와 나에게 투영한 건지 어쩐 지는 모르지만 살림을 하고 아빠의 벌이가 넉넉했을 때도 엄마는 늘 일을 하시고 엄마의 공간과 시간을 만드시고 생활력을 놓지 않으셨다. 엄마는 요리도 살림도 척척 늘 맡은 바 일을 잘하시려고 애쓰는 분이셨다. 쉬는 시간이 없으신. 살림도 잘했지만 한 번도 일을 쉰 적 없는 엄마의 든든한 기반이 받춰졌기에 언니와 내가 좀 더 많은 걸 누리고 배울 수 있었고 그 부분이 나에겐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나에겐 하나씩 해냈다, 할 수 있다는 성취감과 탈출구가 돼주기도 했다. 나의 완벽에 가까운 기준과 높아진 배경 또한 이 때문은 아닐까. 

글을 쓰다 보니 알 것도 같다. 

또 하나의 약점과 한계에서 나의 강점도 나온다는 것을.



우리 엄마에게 물려받은 나의 강점은 이거구나, 끈기, 포기하지 않는 마음, 솔직한 생각. 어린 나이에 어린 삼촌 세 명을 우리 집에서 전부 돌보고 같이 키우면서도 언니와 나를 거뜬히 키워냈기에 엄마에겐 사실 아빠에게 늘 미안한 마음 한편 그래도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마음도 컸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끈기와 열심히 미련할 정도로 세상을 살아가고 일을 하고 살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버거워 보이고 짐을 덜어드리겠단 생각보단 늘 사랑을 더 표현해 주기 바라고 나에게 좀 더 시간을 쏟길 바랐던 내 어린 마음은 솔직함과 버럭 올라오는 화, 분노의 감정으로 표현될 때도 있었지만 그걸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진짜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만들기도 했다.

 솔직해야, 그 마음이 진실되서 통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표출하고 내세웠던 것 같다. 부끄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보다 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넘쳤던 것이란 것을, 결핍된 마음을 채우고 싶은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나의 벽이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아도 혼자서도 고요히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을 늘 좋아한다. 자기 만의 시간을 자기가 오롯이 주인공으로 쓰는 사람도. 나는 분명 사람들과 교류 속에서도 웃고 에너지와 기쁨을 얻을 때도 많지만 늘 혼자 있을 때조차 편안해 보이는 사람들이 진짜 대단해 보이고 멋져 보였다. 속을 열지 않아 답답해 보이는 게 아니라, 굳이 열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그 사람과 있을 때 편하고 그냥 내가 지지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성경을 보는 사람, 달달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 말씀대로 죄를 고백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느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괴팍하고 날카롭게 다른 사람 뒤통수만 치는 사람을 욕했지만 사실 전 인격적으로 만나면 진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일말의 그런 희망을 늘 품었기에 화를 내는 나의 분노를 낮추고 내 멋대로 하는 나를 통제하고 평안함을 가지고 싶었다.

*지난주 담임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행적과 삶에 대해 진술하는 사람은 많지만 고백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가 와닿았다. 나는 나 역시 생의 마지막 날까지 달렸을 때 그 앞에서 믿음의 고백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아닌 게 아니라고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 자기의 슬프고 아팠던 과거로부터 온전히 자유함을 얻고 당당히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Note. 이렇게 쓰다 보니 좀 혼란스럽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굴고 화를 낸 적도 많은데, 물론 그 화는 늘 이유야 있었지만 그냥 지나가거나 한 번 참았어도 될 일인데도 말이다. 나의 들쑥날쑥한 감정 기복에도 내 주변엔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삐뚤어졌다고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려는 순간에도 오히려 든든하고 단단한 사람들이 사람들이 이유 없이 어딘가에서도 나를 지지해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좋다고 말해줘서 나는 여태껏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이걸 떠 올다 보니 뭉클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남편과 우리 아이들, 엄마의 기복이 심한 성격에도 먼저 작은 고사리손으로 도닥도닥 엄마, 괜찮아요, 그래도 내가 있잖아요. 걱정 마요 하고 나를 안아준 선재의 손길이 이제는 어린 선율이에게 전달돼서 나를 조용히 안아준다. 기분이 좋을 땐 언제든 다 허용할 것만 같지만 내 인생의 기준이나 틀도 늘 즉흥적으로 바뀌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일관된 태도가 늘 부족한 엄마인데 단단한 신랑이 그런 나를 이미 좋은 엄마,라는 인정의 말로 잡아준다.


반복되는 습관성 분노와 끌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뱉어야만 전부 다 산산조각 갈기갈기 조각 내서 끝을 보고야 마는 그 성격 뒤엔 다시 혼자만 숨고 심고 내려가고 싶은 순간들도 많이 맛보았다. 그렇게 꽁꽁 숨어서 그냥 무기력하게 나를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물론 아이를 키우고 내 역할과 책임이 늘어났을 땐 이런 혼자만의 내 모습보단 큰 감정기복 속에 흔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육아와 살림 속에서도 종종 끌어 오르는 화를 잘 참지 못한다. 더 큰 일에는 오히려 잠잠하고 침착해지는 편이라면 반복되는 몸의 피곤함, 단순한 일 속에 육체의 피로도에 따라 나의 그때그때 언어도 기분도 곤두서는 편인 거 같다. 욕이 튀어나올 것 같은 순간에 



낑깡! 새우깡! 이런 단무지! 약과! 맛없어! 장티푸스! 




나름의 몇 가지 대체할 만한 말도 골라서 해봤다. 이건 선주언니가 화날 때 욕 대신 '포도'나 다른 과일 이름을 말한다고 한 말에서 나도 힌트를 얻었는데 나름 발음이 세고 입에 착착 붙는 걸로 세심하게 골라봤다. 실제로 이렇게 하다가 내가 웃음이 터지는 때도 있으니 효과 만점이다. 허공에 대고 이렇게 외치고 나면 어느 정도 속도 가라앉긴 하니까. 


▶▶ 도전을 망설이게 만든 요인


나에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 갈팡질팡. 정의롭다 하지만 조직과 관리의 허점과 불합리함이 보이면 바로 말하는 성격, 대안점보다는 일단 쏟아내고 말해놓고 보는 습성 탓에 사실은 그때부턴 흥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시작은 타오르나 끝까지 잡아가고 끌고 가는 힘이 부족하다. 


▷▷ 어떤 노력


이제는 그다음을 늘 생각해서 목표와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내 모습을 잡아본다. 나는 원래 짧게만 계획하고  한 주, 하루의 목표나 플랜 만으로도 만족해서 사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5년 후, 지금도 생각하긴 싫지만 10년 후 내 모습도 그려보려고 한다. 자, 이렇게 돼서 앞으론 또 한 걸음을 어디로 옮기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나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조금 더 인격적으로 대하고 건강하고 예의 바르게 대처한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화를 쏟아내놓고 그럼 그 마음이 후련할 수 있으나 아이들을 혼내고 짜증을 버럭내고 나서는 늘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좋아하는 설명하고 전달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 다를 수도 있는 부분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맞춰가야겠다. 



▷▷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들과 말


나영언니에게 듣는 위로, 막막하고 어려울 때 나를 응원해 주는 단단한 사람들, 뭐든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우리 신랑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조력자이다. 현실을 바라봐야 함에도 나의 꿈이나 이상을 이야기하면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도전을 만들어주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준다. 나의 친구들과의 대화, 한 단계 더 나가는 걸음에 손을 잡아준 연희도, 나를 어딘가에든 세워서 끊임없이 쓰게 만드는 이너조이님도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다. 나에게 늘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는 내 친구들, 고마운 언니들과 나를 안 보면 보고 싶다고 찾아주는 동생들까지 그리고 엄마의 타닥타닥 글 쓰는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이 나의 든든한 위로자들이다.

-주변까지 환하게 웃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사람

-나의 말과 행동으로 문제를 꿰뚫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사람

-그 시간에 몰입하는 사람

-솔직하게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하는 게 부러워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면서도 진짜로 즐거워하는 엄마



간절히 원했지만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나는 간절히 원한만큼 원한 대로가 아니라 뭔가를 꾸준하게 하고 쓰고 도전해야 하는 데 늘 그 실행으로 이어지기까지 실행조차 어려웠던 순간이 많았다. 부족했다. 일단 그렇다.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 지금 누군가 책임지고 있는 육아의 자리, 엄마의 자리, 살림하는 현실이 나는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것조차 그래도 내 식대로 잘하고 있어, 그런대로라고 여기는 마음을 갖고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다짐들도 써본다.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들 속에서도 나의 부족함을 바라보는 걸 놓치지 않는다. 단, 이제는 가슴 아파하기 위해서가 아닌 관찰하고 고쳐보기 위한 노력의 첫걸음이다. 












*시즌14 글로 코칭 강점 에세이 쓰기   with 이너조이

*세 번째 : 벽


주제는 약점과 한계를 가진 벽이지만 사실 쓰다 보니 글은 벽을 뛰어넘어, 손에 손 잡고 노래(*88 올림픽 주제가, 코리아나가 불렀다)처럼 맞잡은 손이 있다면 벽을 뛰어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배우게 됐다. 나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준 책, 사람들, 그 놀라운 비밀 뒤에는 책을 읽고 있었던 우리 엄마가, 디자이너를 꿈꾸고 전화 교환수였던 엄마의 이야기가 숨어있음도 알았다. 삼촌들과 함께 지냈던 유년과 사춘기의 성장 과정 속에서도 우리 엄마는 삼촌 방은 한 번도 만들어준 적 없지만 나랑 언니방은 제일 먼저 만들어줬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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