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주말에 아이랑 어린이도서관에 갔다가 어린이 책 같지 않은 아련한(?)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세상 모든 언어에는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어요.
그런 단어들을 모으면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각 나라의 초상화를 그릴 수도 있어요.
그 독특한 감정들을 가지고 나라 전체를 설명할 수도 있지요. 그래요, 어떤 낱말이나 느낌은 익숙하게 다가올 거예요. 하지만 어떤 단어나 그 단어가 전하는 감정은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할 거예요. 앞으로 만나게 될 어떤 특별한 순간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지도 모르죠. 이를테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순간 같은 것을 말이예요.
그 단어와 감정들은 이제 당신 것이 될 거예요. 당신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당신이 그걸 말하고 느낀다는 거예요.‘
서문만 봤을 때는 아리송했는데 책장을 넘기는 순간, 서문이 어떤 의미인지를 완벽하게 깨닫게 됐다.
책을 넘기면서 한 번 읽고, 그림을 자세히 보면서 한 번 읽고, 그리고 뜻을 곱씹으며 다시금 읽었다.
책에 엄청나게 집중한 나를 보고 딸아이(6세)가 물었다.
딸 : 엄마, 이 책을 왜 자꾸자꾸 읽어요?
나 : 응, 엄마는 이 책이 엄청 마음에 드네!
딸 : 왜요??
나 : 음… 지구에는 엄청 많은 나라들이 있잖아? 그 나라들이 다 다른 말을 쓰거든! 서아도 알지? 알파벳 나라는 다른 말을 쓰잖아.
우리나라말로 이야기하면 엄—-청 길게 설명해야 하는 생각이나 느낌이 있는데, 어떤 나라에서는 엄청 짧게 똑같은 걸 이야기할 수 있대!
딸에게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생각,
특히 ‘일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내가 가진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언어는 생각이나 감정을 구체화하는 수단이 된다, 반드시.
‘짜증 난다’는 말을 쓰지 말라고 조언했던 김영하 작가님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된다.
뭉뚱그려 표현한 감정은 본질을 흐릿하게 만들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많아질수록 그만큼 그 사안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 ‘일’, ‘조직’, ‘사회’, ‘가정’, ‘사랑’, ‘인생’ 등에 생각하는 다양한 범주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구체적인 것들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필요한 것을 잘 건넬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일단 들었다.
가끔 나에게 일적으로 고민을 말해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충분히 ‘적확한’ 언어로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비슷한 놀라움을 이 글을 읽으시는 누군가가 함께 느끼길 바라는 마음, 나 스스로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남겨본다.
책에 적혀있는 모든 감정들을 다 그대로 남겨본다.
특히 ‘일하다 마주할 수 있는 마음들’에 붙은 이름은 조금 더 강조해서 남겨본다.
스트라이크히도니아(strikhedonia) : 일을 다 끝마쳐서 더는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
크랙(craic) :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기분. 가장 편안한 사람들 속에 있어야 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히라이스(hiraeth)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
쿠리(coorie) : 몸을 웅크린 채 구석에 누워 있는 것.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
페른베(Fernweh) : 아득히 먼 곳에 이끌리는 마음.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에 대한 동경.
토아슈루스파니크(Torschlusspanik) : 잃어버린 기회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블루슈트페르틀리(Blueschtfaehrtli) : 차를 타고 가면서 꽃구경하기. 활짝 핀 봄꽃을 보려고 속도를 줄여 차를 천천히 모는 일.
발트아인잠카이드(Waldeinsamkeit) :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 나무들 사이에 홀로 서 있을 때 지구에 남은 유일한 사람이 된 기분.
슈투름프라이(Sturmfrei) :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집에 혼자 남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게보르겐하이트(Geborgenheit) : 완벽하게 안전한 기분.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믿음과 사랑을 나누는 느낌.
필록센니아 : 낯선 사람을 향한 환대와 존중.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
볼타 :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들려오는 소리와 풍경을 즐기는 일.
페라차타 :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평온함.
초로스 :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돌아가는 정든 곳.
메라키 : 어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깊이 녹아 들어가 진심과 영혼을 쏟아붓는 상태. 무슨 일이든 메라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랑을 담아 누군가를 위해서 커피를 내리는 일. 우리는 이런 작은 일상에도 온 정성을 다하곤 한다.
모르켄프리스크(morgenfrist) : 잘 자고 일어난 새벽에 느끼는 상쾌하고 청량한 기분
휘게 (hygge) : 일상에서 얻는 기쁨. 맛있는 아침 식사, 친구들과의 만남, 영화 관람처럼 단순한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능력.
아르바이스글라에테(arbejdsglaede) : 일에서 느끼는 행복감. 남들이 얼마나 우러러보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것.
타라브 : 음악에 매료된 상태.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황홀감. 음악은 당신을 낯선 세계로 이끌고 전율을 안겨 주기도 한다. 심지어 바닥에 주저앉은 당신을 일으켜 줄 때도 있다.
사마르 : 해가 저물고 나서도 한참 지난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루칸 : 어떤 일을 서두르지 않고 즐기면서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뿌듯한 마음.
바라하 : 사랑, 헤어지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
나즈 :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자부심과 자신감.
주가드 : 즉흥성과 지혜.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면 적은 것으로도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셋타 렛다스트 :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
솔라프리 : 화창한 주말. 노동자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
아스 넨나 : 아무리 지루하고 복잡한 문제라도 끝내 해결해 내는 집요함.
글루카베드슈 : 창밖 날씨. 창문으로 내다보기에는 좋지만, 밖으로 나가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날씨.
비비르 알 디아 :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기에 오늘에 충실하기.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기.
소브레메사 : 함께 식사를 마친 뒤에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빈 접시를 앞에 둔 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바실란도 :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보다 목적지로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여정.
메리지아레(meriggiare) : 뜨거운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기.
아르치골라(arcigola) :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음식과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느린 저녁 식사.
콤무오베레(commuovere) :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것.
돌체 파르 니엔테(dolce far niente) : 모든 순간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달콤한 게으름. 그 순간을 즐기는 일인, 시간을 허비한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 시간은 이미 충만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바닷가를 따라서 걷기,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는 일에 있다.
셰더 : 무언가를 떠나보내거나 가만히 내버려 둘 준비.
위안펀 :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저항할 수 없는 힘. 정신적인 친밀감과 연대감을 말한다.
우웨이 : 어떤 일이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간섭하지 않고 두는 것. 구름은 언제 비를 뿌릴지 정하지 않는다. 그저 물로 가득 채워질 때를 기다릴 뿐이다.
러지성베이 : 커다란 기쁨을 맛본 뒤에 찾아오는 텅 빈 기분
헤젤리흐(gezellig) :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감각. 자신보다 더 굉장한 것에 속해 있다는 기분. 공원에서 즐기는 피크닉, 보트 타기, 카페에서 즐기는 데이트…. 그 어떤 일에도 헤젤리흐를 느낄 수 있다.
휘넌(gunnen) : 누군가 마땅히 받아야 할 축복을 받는 것을 보며 느끼는 기쁨.
베이무트(weemoed) : 슬픔을 이겨 낼 힘을 찾아내는 것.
보르프럿(voorpret) : 아직 일어나지 않는 기쁜 일을 미리 짐작하고 즐거워하기.
아윗바이언(uitwaaien) : 산책을 하면서 여러 가지 불필요한 생각을 거두고 머리를 비우기.
프릴루픗슬리브(friluftsliv) :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에 머무르겠다는 결심. 세상과 자신의 조화를 느끼게 해 준다.
피엘반트(fjellvant) : 산길을 걷는 습관. 등산은 목표를 만들어 주고 육체 활동은 기쁨을 가져다 준다.
포렐스케트(forelsket) :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
페이스코스(peiskos) : 타닥거리는 모닥불 앞에 앉아 온기를 즐길 때 느끼는 포근함.
엔쉰스글레데(gjensynsglede) :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
에테르포클록스카프(etterpaklokskap) : 실수로부터 얻은 지식
카푸네(cafenue) :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어 내리는 일.
데즈분다르(desundar) : 가슴속의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한계를 뛰어넘는 일.
데센하스칸쿠(desenrascanco) :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때에도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능력.
사우다드(saudade) : 깊이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거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찬란한 슬픔.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장소나 사물일 수도 있다. 사우다드는 슬픔으로부터 달아나게 하기보다 감정을 더욱 생생하고 날카롭게 만든다. 슬픔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슬픔은 삶의 기본값이다. 스쳐 지나갔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쪽은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이다.
뮈오타하페아 : 다른 사람의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내가 느끼는 수치심.
시수(sisu) :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단력과 회복력을 보여 주는 것. 어떤 도전에도 대처할 수 있는 내적 능력.
라스키아(raaskia) :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갖는 용기와 힘.
르트루바유 : 서로를 다시 찾는 일.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났을 때 느끼는 기쁨.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좋아하는 장소로 되돌아오는 일도 포함한다.
코 드 푸드르 :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 누군가 또는 무언가와 갑자기 사랑에 빠졌을 때 오는 숨 막히는 느낌.
데페이제 : 낯선 나라에서 익숙지 않은 상황에 놓였을 때 경험하게 되는 새로운 감정.
에스프리 드 레스칼리에 : 계단을 내려오면서 떠오르는 농담. 대화를 마치고 난 뒤에야 아까 어떻게 대답했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되는 그 느낌.
주아 드 비브르 :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뻐할 이유이다. 움직이고, 보고, 햇살의 따스함이나 친구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
라곰(lagom) :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필요한 만큼.
피카(fika) : 함께 모여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며 수다를 떠는 시간.
레스페베르(resfeber) : 여행을 떠나기 직전, 불안과 기대로 가득 차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
스물트론스텔레(smultronstalle) : 딸기밭.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찾는 곳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특별한 장소가 있다.
예코타(gokotta) : 이른 아침의 뻐꾸기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
이키가이 : 매일 아침 당신을 눈뜨게 하는 삶의 의미.
아운 : 가까운 친구끼리 아무 말 없이도 서로 이해하는 것.
고모레비 :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리고 그 햇살을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
고이노요칸 : 사랑의 예감. 첫 만남에서 피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
알파벳을 활용해 완전히 똑같이 표기할 수 없는 기호들은 비슷한 영문자로 대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