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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Feb 13. 2023

제주 탐사, 은희네 해장국부터 시작

주님을 너무 영접한 나머지 우리는 거룩, 아니 거북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여행첫날의 파티.

제주에서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아침을 깨우는 인기척에 잠에서 깨었을 때 '수'는 벌써 인간다움을 장착하고 있었고, 나는 아직 인간의 껍질을 허물처럼 벗어던진 웅크린 존재였으나 이내 우리의 일정을 복기하고는 세상밖으로 나가기 위해 솜으로 만든 고치를 열고 큰 용기를 내어 이불 밖으로 나왔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군'


밤새 '주'님을 열렬히 사모한 덕분에 아침에 한층 "거룩".. 아니 "거북"한 느낌으로 잠에서 깨어난 상태. 입술과 혓바닥, 식도는 치열한 전장의 거친 들판을 지나온 듯 메말랐고 테이블 위에는 어제의 치열한 전투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전장의 승리자가 된듯한 기분에 취해 송로버섯(향)이 들어간 새우요리를(블랙새우깡) 두 손가락으로 품위 있게 집어 들어 입에 욱여넣고, 알프스의 정기가 남은 에델바이스 맥주를 홀짝거리며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테이블을 치우면서 양심의 가책을 덜어낸 후, 아직도 꿈속을 탐험하는 '은'의 상태를 살펴본 뒤, 합리적으로 내가 먼저 인간다움을 장착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고,  남은 흔적을 '수'에게 부탁하고 샤워를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저 씻을 때 뭐 틀어놓고 봐요! 이상한 소리가 들려도 못 본 척해주세요!' 너무 TMI 같은 이야기였나 싶었지만 보통 모든 일을 할 때 효율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귀나 눈이 쉬고 있는 걸 참지 못한다. 길을 걸을 때도 무조건 음악을 듣거나 뭔가를 보면서 걸어야 하고, 다른 어떤 감각이 쉬고 있는 것을 못 참는 주의(심심하니까)인 멀티플레이어랄까.  욕실에서도 씻으면서 눈과 귀가 쉬고 있으면 심심하니까 스마트폰을 들고 가서 새로 올라온 SNL코리아 '고수'편을 보면서 씻기 시작했다. 피식피식 웃으면서 씻고 있자니 밖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그래서 미리 말을 해놨으니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겠지.


짐을 다 풀지 않아서 그랬는지 우리 탐사대는 신속정확하게 짐을 챙겼고, 아침 9시 반쯤에 체크아웃을 한 우리는 숙소의 오전 그 특유의  소란스러움을 느끼며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머물렀던 골든파크호텔은 깔끔한 방, 방만한 크기의 욕실과 얼굴을 따갑게 만드는 수압, 그리고 뜨거운 온수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숙소의 3요소를 잘 갖추었고, 우리는 행운을 빌어주며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렌터카를 빌리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제 점수는 5점 만점에 4점입니다!'






어제의 경험을 발판 삼아, 이번에는 카카오 택시를 부르지 않고 택시를 잡을까 했지만 지난밤과 달리 관광객이 많아진 제주공항의 근처 시내는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는지, 빈 차량이 보이지 않았고 몇 차례 택시를 잡으려는 시도 후에 빠른 포기를 하고 카카오택시를 불러 렌터카 업체로 이동해서 우리의 이동수단을 확보했다. (콜이 잡히자마자 지나가는 빈택시들.. )


평소 같으면 운전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바로 운전대를 잡았을 텐데,  이번 여행의 키를 잡을 캡틴은 '수'가 하기로 했다. 모든 여행에는 선장의 역할이 중요한데, 우리는 각자가 맡은 부분에서 성실한 선원이 되어서 선장님의 운행을 위해 노력하는 선원들이 되고자 했지만 그 각오는 얼마 가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캡틴)


12월의 제주에서 맞이한 풍경


사진이란 취미를 시작하게 되면서 내게 있어서 여행은 어느 순간부터 '뚜벅이'의 속도에 맞춰져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사진기를 스트랩에 걸고 골목과 도로, 들판을 천천히 걸으며 이곳저곳을 탐구하던 여행은 오랜 시간 내가 지향하던 길이었고 홀로 순례길을 걷는 방랑자의 그것과 같았다. 때론 홀로 걷던 길 가운데 일행을 만들고, 그들과 조금은 빠르게 달려 나가는 여행도 또 다른 여정이었기에 마다하지 않고 운전대를 즐겨 잡았던 나이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지난 제주의 여행에서 운전면허증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뒤 한동안 도통 녀석을 볼 수 없었고, 행방을 알 수 없어서 챙기지 못했다 ) 본의 아니게 여행의 여정을 편안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면허증을 챙기지 못한 잘못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지나치게 길게 늘어놓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면, 그건 기분 탓이 아닙니다. 쉬.. 쉿! )




아무튼, 재빠른 이동수단을 확보한 뒤에 우리는 계획대로 '은희네해장국'으로 향했다. 이곳은  음식에 조예가 깊은 '은'과 '수'가 '주'님을 뜨겁게 만나고 난 다음에 아쉬움을 풀어내기 위해 전주에서 즐겨가던 곳(프랜차이즈)으로, 저번 제주여행에 방문했다가(본점) 깊은 감화와 은혜를 입은 뒤에 제주에 오면 매번 무조건 들리는 성지순례 같은 곳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듯 들었던 곳이라 내심 큰 기대가 되었던 곳이다.


 

전주사람에게 있어서 밥을 국에 말아먹는 음식은, 그 지역적 특이성과 전문성이 다른 지역에 지지 않는다는 로컬 특유의 자부심을 갖고있는터라 (너무 유명해진 현대옥 외에도 다양한 국밥집이 동네마다 고유의 맛을 지닌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지역을 뛰어넘어 명성을 듣게 된 은희네해장국이 내심 견제가 되면서도 기대가 되던 것이었다. 예상대로, 음식점은 이른 오전부터 손님들도 가득 차 있었고, 기대감은 점차 형태를 띠며 커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앞서 대기팀이 한 팀밖에 없었고, 우리는 곧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 우리의 여행에 풍미를 더할 어떤 재미있는 사건이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어떤 손님이 언성이 높이는 불편한 사건이 있었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듣게 만드는 발성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의사와 상관없이 상황을 인지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내용을 듣자보니 국에 넣어먹는 양념장이 빠져서 배달이 된 거 같았는데 다짜고짜 컴플레인을 걸면서 주변 사람들의 식사까지도 방해하는 상황이었다.


'은'에게 종종 요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참이어서, 그들의 입장에서도 요즘은 종종 생각하게 되기에 정말 큰 문제가 아니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게 레벨업이 된 나에게 있어서 그 여행자의 모습은 단순히 싸우기 위해 목적을 갖고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거센 컴플레인이었고, 도대체 무엇을 원하기에 좋은 여행지에 와서 저런 사건을 만드는지 궁금해졌다.


"네,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해드리기를 원하시나요?"

"새로 하나 다시 해주세요."


목적은 그것이었나, 제주까지 와서 양념장 하나 빠진 것으로 새로운 한 그릇을 등가교환하는 교섭술에 감탄을 하면서 막 우리 앞에 나타난 음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해장국의 첫인상은 '무척 맑다'라는 것이었다. 그 속에 양념장을 풀어내면 어떤 옷을 입을지 아직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지만 첫 모습만 봐도 맑은 가운데 진한 육수의 기운이 넘사리고 있는 것 같았기에 겸허한 마음으로 한 모금 떠먹었다. 

진하다. 비 온 뒤의 새벽에 나뭇잎의 냄새들이 진해지듯, 혀를 타고 식도로 넘어가는 국물은 첫맛은 맹한 듯했다가 뒤늦게 진한 한방을 갖고 후각을 한 대 치고 내려간다. 홀린 듯이 양념장을 풀어낸다. 

제대로 된 맛을 맛보고 싶지만 요원하다. 숟가락이 침범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다채로운 건더기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었다. 


콩나물과 선지, 소고기, 대파, 다진마늘, 배추들의 연합전선은 내 숟가락을 밀어내고 양념참모대장은 그들 뒤 육수 속에 숨어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상대군,  전략을 수정해야겠어. 먼저 콩나물 병사들을 젓가락 동지를 통해서 흩어놓기 시작했다. 약간의 저항이 있었지만 나 역시도 30년 이상을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전쟁을 벌여온 사람이다. 질 수는 없지!  앗, 중간에 '은'이 선지 한 부대를 내 전장에 투입시켰다! 이런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지.


해장국 연합군을 하나하나 분해하면서 전선을 넓혀가고 드디어 양념장을 사로잡아 풀어낼 수 있었다.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는 양념장은 음식 전반에 골고루 풍미를 더해주겠지. 제군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승리다.  머릿속으로 한바탕 상상을 하며 양념장을 풀어넣고,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긴 영상 주의, 치열한 전쟁의 전리품.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영상이 더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먹는 영상도 신경 써서 찍어보고. 최근에 4년 동안 사용했던 갤럭시 노트 9가 갑자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서 (이 정도면 자살한 게 아닐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계획에 없던 아이폰 14를 사게 되었는데, 일반사진은 갖고 다니는 펜탁스 DSLR로 찍지만 영상만은 아이폰으로 찍게 되었다. 뭐랄까, 펜탁스의 영상 쪽이 약하기도 하고 아이폰 14프로의 영상이 워낙 강력하기도 해서일까. 요즘은 사진뿐 아니라 영상도 같이 찍고 있어서 더욱 즐거운 취미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잠시 옆길로 새었지만, 은희네해장국을 먹고 난 뒤 감상은, '나 은희네해장국 좋아하네'였다. 뜨거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나이지만 그래도 정말 열심히 먹었고, 자꾸만 술이 생각나는 마성의 맛으로 해장과 반주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어울리는 공수 모두에 어울리는 완벽한 '해장음식'이었고 '근슐랭' 만점을 주며 기분 좋게 음식점을 나왔다. 이제 배도 든든해 채웠겠다.  후식을 먹을 차례! 




예전에 봐두었던 인상 깊었던 카페가 있어서, 탐사대를 데리고 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본격적인 제주도의 탐사는 배를 채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첫째 날의 일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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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의 시선

1화, 제주 탐사대를 꾸미다.

2화, 제주탐사대에겐 아지트가 필요하다.

3화, 제주탐사, 날씨요정의 횡포, 결항 또는 연착?

4화, 본격적인 제주탐사에 앞서, 체력보충시간


'은'의 시선

1화, 혼저옵서예

2화, 제주 행 비행기 탑승은 2Gate 입니다.

3화, 제주도도 식후경이다.



제주여행이 기록될 사진공간.

https://www.instagram.com/talkwithpentax/   '근'의 시선  

https://www.instagram.com/mome_morable/  '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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