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선가 환상 속에선가 만난 파랑새 한 마리
파랑새, 젊은 날의 회상(回想)
그때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고 광희동 집에서 동숭동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얼마나 되고 싶었던 대학생이었던가? 동숭동 대학로, 언제나 아름다운 그 길을 걸으면서 그렇게 되고 싶었던 대학생이 되었던 나는 왜 그렇게도 죽음만을 생각했었던가? 그러다가 꿈속에선가 환상 속에선가 나는 파랑새 한 마리를 만났고 그 파랑새에 관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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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입버릇처럼 죽음을 뱉어놓던 파랑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작은 파랑새가 나의 친구로 된 그날부터 죽음, 그것은 차라리 연 초록 아늑한 베일인 양 나를 휘감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의 보금자리는 내 집과 학교 중간, 어떤 아름다운 저택의 햇볕 잘 드는 창가였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나는 항상 그 새에게 발길을 돌리었고 거기 그 창가 아래서 그 새가 끊임없이 토해내는 죽음을 들어야 했습니다. 어느 땐 몇 시간이고 멍청히 서있는 나를 그 댁 밥 아줌마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빠끔히 치어다보곤 했지만 나는 저녁 해가 그 붉은 머리를 도시의 지평선 너머로 빗어 넘긴 뒤에야 발을 옮겼습니다.
참 알 수 없는 것은 때때로는 그 새가 토해내는 죽음이 너무 헤프지 않나 느끼면서도 어쩌다 그 죽음을 듣지 못한 날은 저녁 내내 못 견딜 정도로 가슴이 허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월이 무척 흘러간 지금에도 비 오는 날이나 바람 세게 부는 날은 공연히 가슴 한 구석이 쓸쓸해지나 봅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센 날엔 그 새의 보금자리가 창 안으로 들여지곤 했었기에 내가 그 새를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새가 토해내는 죽음은 공포가 아니었고 평안, 아니면 오히려 하나의 아늑한 쾌락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약같이 내 속으로 파고 들어와 나를 어쩔 수 없는 중독자로 만들어 버렸으니까요. 사춘기를 막 벗어나 앳된 청년이었던 그때 나는 시(詩)에 빠져있어서 많은 시인들의 시를 읽고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 나는 그 새가 토해내는 죽음들이 다양한 시 구절이 되어 내 귀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이 작은 새가 그렇게도 많은 시들을 알고 있었던지 토해내듯 노래하는 그 시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들이었던지 나는 이 새를 죽음의 시인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좋아하다 못해 사랑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무척도 맑던 가을날 오후, 나는 이 저택의 급작스런 불청객을 자청해버렸습니다. 이 댁 마나님은 꽤나 교양 있는 분이어서-내 작은 새의 주인다운 태도로-내게 진한 커피 한 잔을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새를 키워 보긴 이 파랑새가 처음이라서 새를 보러 온 손님에게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군요.’
나는 공허한 웃음을 한 아름 선사하므로 대답을 대신하였습니다. 눈치 빠른 마나님은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를 보고 곧장 자리를 피해 주셨습니다. 파랑새와 단둘이 있게 된 나는 내 바로 앞에서 토해내는 내 작은 시인의 그 달콤한 죽음을 그 오후 내내 마음껏 음미하다가 어둠이 창문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자 마지못해 그 댁을 나섰습니다. 더 있다 가도 된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마음씨 좋은 마나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이 아주머님이라면 언젠가 저 새를 내게 달라고 하여도 팔짝 뛰지는 않으실 거야’라고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엔 멀지 않던 그 길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던지, 구름도 없던 하늘이 왜 그렇게도 어두워만 보였던지, 나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겨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자리에 누워 열병을 앓았습니다 열이 40도씩 오르기를 망설이지 않는 무서운 열병을 몇 날 며칠이고 앓았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내가 죽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꽤나 많은 낮과 밤을 열(熱) 속에서 헤매며 또 꽤나 많은 것들을 병상에서 꿈꾸듯 느끼고 보았습니다. 그러다 열이 조금 내린 어느 날 나는 만류하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나의 새를 찾았습니다. 그전 날 저녁 기다시피 하여 돌아왔던 그 길을 다시 거슬러 가서 내 파랑새의 집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있어야 할 내 파랑새는 보이지 않았고 파랑새의 보금자리가 놓였던 그 창가는 휑하니 비어있었습니다. 열병에 시달렸기에 내 눈에 이상이 생겼나 싶어 몇 번이고 눈을 문지르고 다시 보았지만 새는 여전히 없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그 댁 대문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곧이어 대문이 열렸고 그 댁 마나님께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를 맞아드렸습니다.
‘학생이 왔다간 뒤부터 새가 울지를 않았어요. 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다음 날부턴 먹지도 않는 거예요. 먹이도 바꾸어보고 새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보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점점 눈에 뜨이게 쇠약해졌고 그러다가 결국 며칠 전에---‘하고 마나님은 말문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마나님의 시선이 창문 밖 정원 한 구석에 머무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나도 한참 그쪽을 바라보았지마는 차마 더 이상은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눈시울을 훔치며 돌아 나왔습니다. 문 밖까지 따라 나오는 마나님의 주름진 눈가에도 물기가 어리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이제 다시 새를 또 키우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대문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내게 마나님이 던진 마지막 말씀은 애잔하였지만 어쩐지 내게 동의를 구하는듯한 여운이 내 귓가에 남았습니다
내게 입버릇처럼 죽음을 뱉어놓던 한 마리 파랑새는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내 마지막 사춘기도 가버렸습니다. 나는 그 뒤로는 죽음을 노래하는 새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은커녕 삶의 비장한 가락을 노래하는 새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새의 울음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고 다른 소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 그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만난 소리가 음악이었습니다. 음악 속에는 참으로 많은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가 그렇게도 찾던 내 파랑새의 울음소리도 있었습니다. 아아, 맨 처음 음악 속에서 내 파랑새의 울음소리를 찾아냈던 그 순간의 즐거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더더구나 이제 내 파랑새는 그 울음소리로 죽음만을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노래해내고 있었습니다.
음악 속에서 내 파랑새를 찾아냈고 음악 속의 내 파랑새는 죽을 염려가 없는 파랑새였고 내게 삶의 모든 진실들을 노래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내 파랑새와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삶을 배우며 내 젊은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파랑새
내게 죽음을 깨우쳐 준 것은 작은 파랑새 한 마리였다
젊은 날
왜 죽음은 군것질마냥 그렇게도 자주 날 찾아와
미루어놓은 숙제처럼
항시 머리를 짓눌렀던가
파랑새야
네 울음소리 듣던 날 죽음은 노래가 되어 나를 휩쌌고
조청(造淸)보다 끈끈하게
조청보다 달콤하게
나를 휘감고 늘어졌다
젊은 날
왜 죽음은 군것질마냥 그렇게도 자주 날 찾아와
미루어놓은 숙제처럼
항시 머리를 짓눌렀던가
파랑새야
네 울음소리 듣던 날 죽음은 더 이상 형이상학의 어휘가 아니었다
유리(琉璃) 보다 투명하게
유리보다 차가웁게
나를 베이며 들어왔다
젊은 날
왜 죽음은 군것질마냥 그렇게도 자주 날 찾아와
미루어놓은 숙제처럼
항시 머리를 짓눌렀던가
파랑새야
네 울음소리 그치던 날 죽음은 망가진 유성기가 되어 멈춰 섰고
아편(阿片)보다 집요하게
아편보다 치사하게
난 네 소리를 찾아다녔다
젊은 날
왜 죽음은 군것질마냥 그렇게도 자주 날 찾아와
미루어놓은 숙제처럼
항시 머리를 짓눌렀던가
파랑새야
내게 죽음을 깨우쳐 준 것도 너였고 내게 삶을 가르쳐 준 것도 너였다
눈부시게 기쁘던 나날에도
눈물 나게 슬프던 나날에도
난 네 울음소리를 찾아 음악을 들었다
2020. 10월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