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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學林) 다방에서

학림(學林)은 내 마음속에만 있었네

by 석운 김동찬

학림(學林) 다방에서


눈 온 끝이라 추위가 코끝을 파고들며 자못 매서웠지만 난 대학로를 찾았다.


대학로가 예전의 대학로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거리 전체가 안팎으로 상혼(商魂)으로 얼룩져 서울 곳곳의 여느 카페 거리와 별다를 것이 없기에 가보면 실망할 것이라는 말을 몇 사람에게 들었지만 그래도 대학로를 찾았다. 모든 것이 바뀌고 내가 마음속에 담고 있는 옛 모습이 다 사라져 버렸다 하더라도 아직 그 속에 학림다방이 남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대학로는 꼭 가보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에만 오면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꼭 시간을 내서 찾아오곤 한 곳이 대학로였다.


작년 겨울 한국을 방문해서 딸네 집에 두 달 정도 머물렀다. 아침부터 눈이 쏟아져 내리던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 식탁에서 아내가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생각난 듯 혼자서 대학로를 찾을 생각을 했고 마음은 이미 오십 년 전의 눈 쌓인 학교 교정을 걷고 있었다. 잎은 다 졌어도 마로니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고 미라보 다리라 불렀던 대학천을 가로질렀던 다리는 없어진 줄 알지만 그래도 흔적만은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니 아니 다 없어도 괜찮아. 학림다방은 아직도 있다고 하니 그걸로 족해. 거기 가서 커피 한 잔 시키고 브람스를 듣자 아니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 거리의 악사를 들려 달래지. 그 겨울 아침 나는 어느덧 대학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렇게 찾은 대학로였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나온 나는 너무도 변한 거리 풍경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할 정도였다. 사오 년 전에도 왔었는데 그 사이 또 이렇게 변했나 하며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겨우 정신을 차려 동숭동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나는 학림다방의 간판을 찾았다. 두리번거리며 내려오다 겨우 찾은 학림다방의 간판은 예전의 그 정겨운 모습은 아니었다. 1층은 커다란 약국이었고 그 2층에 학림다방이 있었다. 옛날에도 학림다방은 2층에 있었지만 내 기억 속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그때는 분명 학림다방이 2층에 있었기에 건물이 살아났었는데 지금 멋진 외관의 약국 위에 얹혀있는 붉은 벽돌담의 허름한 학림다방은 무언가 어색하고 구차스러운 모습이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약국 앞을 지나 건물 끝 왼편으로 가자 나 여기 살아있어요라고 변명하듯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있었다. 통로를 들어서기 전 다시 한번 간판을 쳐다보았다. Since 1956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60년을 넘게 이 자리를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뭘 더 바래?’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다방 문을 열고 들어선 내 두 눈을 가득 채우고 들어온 풍경은 탁자 하나에 네 좌석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젊은 남녀들이었다. 둘씩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각각의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밖의 자리에는 삼십 대 후반이나 사십 대 초반의 아줌마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처럼 나이 든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 나의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들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고 나는 카운터로 갔다. ‘혼자인데요,’하고 내가 약간은 계면쩍게 말하자 여자 종업원이 입구 가까운 곳에 꼭 하나 비어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저기 앉으시면 되고요 주문은 여기서 하세요,’라고 말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키고 나는 돌아서 그녀가 가리켜준 자리를 향했다. 머릿속의 기억으로는 그 옛날 담배연기 뽀얗게 피워 오르고 다방 안을 꽉 채우던 음악소리를 더듬으며 나는 종업원이 가리켰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지만 음악소리는 너무 작았고 주변의 웅성거림은 너무 컸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라고 카운터의 아가씨가 내 쪽을 향해 소리를 치자 나는 일어나 카운터를 향했다. 카운터로 가며 힐끗 다방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훔쳐보면서 나는 귀 기울여 음악을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주 앉은 젊은 남녀들이나 중년의 아줌마들이나 모두 꽤나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간 김에 직원에게 음악소리 좀 키워달라고 부탁하려던 마음을 접고 나는 커피만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따뜻한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잡고 나는 비로소 정면을 바라보았다.

학림1.jpg 학림다방 전면

전면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커피 잔들과 커피를 담은 병과 봉투 그리고 포도주 잔으로 보이는 유리잔들이었다. 오른쪽 귀퉁이에 일이백 장의 레코드 판들이 겨우 그 옛날 음악다방의 면모를 엿볼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베토벤의 협주곡은 CD 소리였다. 턴테이블에 판을 올리고 바늘을 조심스럽게 내리고 앞 판 연주가 끝나면 뒤 판으로 뒤집어주고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음악에 귀 기울이는 손님들도 거의 없는 데 종업원들이 자청할 필요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소리는 꽤나 자주 났고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다방 직원들은 죄송하지만 지금 만석입니다. 입구의 긴 의자에 앉아 계시면 자리 나는 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했고 들어온 손님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입구에 마련된 대기 석에 앉거나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렇구나 비록 예전의 학림은 아니어도 학림의 명성은 그대로 남아있기에 이 추운 날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오는구나라고 나는 혼자 생각하며 커피를 마셨다.

학림의 뒷자리

뒷자리가 어수선해지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맨 구석 뒷자리에 있던 네 명의 젊은 손님들이 자리를 뜨고 있었다. 學林이라는 큰 글씨가 쓰여있는 액자가 걸려있는 그 자리를 보며 나는 문득 아 저 자리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저자인 전혜린이 즐겨 앉았다는 자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문리대(文理大)에 다닌 것은 이 다방이 문을 연 1956년 이전이었으니 그녀가 대학시절엔 이 다방에 올 수가 없었고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에서 강사로 지낼 때 여기 자주 왔었겠구나. 그러다 1965년인가에 삶을 마감했으니 67학번인 내가 만날 기회는 없었구나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조금씩 뜨거운 커피를 음미하였다.


전혜린 그녀는 왜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나는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런 너는 왜 이 눈 오는 날에 젊은이들로 가득한 이 다방에 와있니, 청승맞게 하는 질문이 전혜린의 자리로부터 내 뒤통수로 날아드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다시 전혜린의 자리를 살펴보았다. 새로 자리를 잡은 젊은 남녀들이 즐겁게 담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뿐 조금 전과 달라진 모습은 전혀 없었다.


다시 다방 문이 열리고 몇몇의 젊은 남녀들이 머리에 눈을 얹은 채 들어왔고 만석인 다방 안을 둘러본 그들은 입구의 공간에서 누군가 나가기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별안간 나는 내가 혼자서 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졌다. 내 앞의 비어있는 두 자리에 누군가가 와서 앉아도 나는 개의치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이어 어떤 젊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노인네와 합석하기를 좋아할까 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더욱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왕 왔으니까 조금만 더 있다 가자. 얼마 만에 맘먹고 온 학림인데 그렇게 금방 갈 수는 없잖아 하고 속으로 다독이며 다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면서 음악에 집중하려 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막 2악장을 시작했다. 고요한 피아노 솔로로 시작되는 라르고의 2악장을 듣기에 다방 안은 너무 시끄러웠다. 애써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피아노 소리보다는 그 옛날 50년 전의 학림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더듬고 있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몇 명이 들어와서 차 한잔 시켜놓고 몇 시간씩 떠들어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던 주인아주머니는 지금 살아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식어가는 커피잔처럼 써늘해졌다. 약주 한 잔 걸치시면 여기로 와서 음악을 듣고 계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손으로 나를 자리로 부르며 아주머니 여기 커피 한 잔 더 주세요 하시고는 시와 음악이야기를 해주시던 S교수님 생각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안경 너머의 가는 눈길이 항시 자애롭던 그 교수님께서는 오십 대 초반에 돌아가셨다. 브람스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선배 한 분의 생각도 났다.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피커에서 브람스만 나오면 별안간 두 손을 들어 지휘자가 돼버리던 분이었다. 이봐 음악은 역시 브람스야. 오죽하면 사강(프랑스의 여류 소설가)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겠어하고 열을 올리던 그 선배는 지금 어디 계시고 아직도 브람스를 좋아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이미 3악장의 후반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두 손으로 잡고 있던 커피 잔이 싸늘하게 식었다. 다방 입구에는 아직도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서있는 젊은 남녀들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겠지만 나는 꼭 그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커피 잔을 탁자 위에 놓고 일어섰다. 베토벤을 다 듣고 일어서려 했었지만 그 몇 분 동안이 내게도 그들에게도 너무 길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 지금은 60년대 후반이 아니고 학림(學林)은 더 이상 나의 무대가 아니고 나는 지나가는 길손에 불과하지. 이제는 이 세대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양보해야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문을 향했다.


‘거기 네 분 손님들 자리에 가서 앉으세요, 곧 탁자 닦아드릴게요,’라고 다방 여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입구에 서있는 젊은이들에게 말했다.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 아직도 눈발이 조금씩 흩날리는 대학로로 나왔다.


그 저녁 자기 전에 적어 본 시(詩)다.


학림(學林) 다방

학림(學林)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학림(學林)은 그 자리에 없었네

학림(學林)은 내 마음속에만 있었네


Since 1956

자리를 지킨 학림(學林)은 이름도 지켰지만

뽀얗던 담배연기 사라지듯

다정했던 사람들 모두 사라지고

풋내기 시인 개똥 철학자 엉터리 예술가 모두 사라지고

사람들 가슴 울리던 음악도 사라지고

학림(學林)에선 그냥 커피 냄새만 났네


학림(學林)을 찾은 나는 길손이었네

옛 친구 찾듯 나는 학림(學林)을 찾았지만

학림(學林)도 나도 오랜 세월에 바래 있었네

학림(學林)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나는 스쳐가는 길손처럼 차 한잔 마시고 떠나야 했네


학림(學林)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의 학림(學林)은 그 자리에 없었네

학림(學林)을 나와 거리를 걸으며

마음속의 나는 다시 내 마음속의 학림(學林)을 향하고 있었네


2018. 4월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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