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한마디

“어머님, 오늘부터 저는 어머님의 아들입니다.”

by 석운 김동찬

우리 가족에게 몰아친 비극

그때로부터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살아가면서 어떤 일은 쉽게 잊지만 어떤 일은 결코 잊지 못한다. 잊기는커녕 무의식 속에 침잠해 있던 어떤 일은 어느 순간 무의식의 표면을 뚫고 나와 삶을 흔들고 가슴속을 회한과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꽉 채워놓는다. 40년 전 어머님에게 발병한 폐암이 그랬다. 그 생각이 날 때마다 나는 한참 동안 몽유병을 앓는 야행성 환자처럼 삶의 뒤안길을 이리저리 헤매야만 했다.


그때 왜 우리 가족에게 그런 엄청난 비극이 몰아쳤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폐암입니다. 진행이 꽤 된 것 같아 정밀검사를 해야 하니 입원 수속을 하세요.” 어머님을 진단하고 나온 의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폐암이라니요? 어머니는 평생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으신 분인데 폐암이라니요?” 청천벽력과 같은 의사의 말에 둔탁한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아 정신이 없었던 내가 한 질문에 의사는, “담배가 아니어도 폐암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냉랭하게 답하더니 뒤따르던 간호원에게 우리를 맡기고 가버렸다.


그때 우리는 그냥 평범한 소시민의 가족이었다. 자식들을 키우며 작은 가정을 근근이 지켜 나가신 착한 부모님과 그 부모님을 모시고 오손도손 살아가던 다섯 남매가 있던 가족이었다. 가난했던 그 시대 대다수의 가정이 그랬듯 매일의 양식을 위해 하루도 삶의 터전을 떠날 수 없으셨던 부모님이셨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커서 직장에 나가고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어 독립하자 겨우 허리를 펴면서 하나 둘 태어나는 손주들의 재롱을 보시면서 노년의 평온을 즐기실 때였다. 그러던 때에 돌연 남편과 같이 외국에 나가 있던 막내딸이 사고로 죽어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왔고 딸의 죽음을 슬퍼하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 같은 해 12월 그믐날에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전화를 받고 우리가 달려갔을 때 영안실 앞에 백지장처럼 앉아 계셨던 어머님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정밀검사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암세포가 사방으로 전이되어 수술은 전혀 불가능하고 항암주사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데 부작용이 무척 심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님이 얼마나 생존하실 수 있느냐고 의사에게 낮은 목소리로 묻자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 속에서 나는 하늘을 우러르며 외쳤다. ‘안됩니다, 하나님! 어머님만은 안됩니다. 여동생을 가져가고 아버님을 가져갔으면 됐지 어떻게 어머님마저 가져가려 하십니까? 안됩니다, 어머님은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나를 가져가십시오!’ 말도 안 되는 투정이었지만 나는 누구에겐가 부르짖어야만 했고 끝내는 병원 복도 바닥에 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

그때, 나와 아내는 집 근처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때였다. 여동생이 죽고 이어서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삶의 한구탱이가 무너져 나간 것 같이 느껴져 아내와 같이 교회에 나갔다. 미션 스쿨(Mission School)인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과 과정에 성경 과목이 있었고 교회도 다녔었기에 중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나가는 교회이지만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항암치료가 준비되면 연락할 테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어머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그 옛날 중학교 때 배웠던 성경 구절 하나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성경 어느 책에 있는 구절인지는 몰랐지만 분명 그 구절을 배웠던 기억이 났고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어머니의 치유를 위해 하나님께 매달려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었다. 폐암이 왜 어머님께 생겼는지 이유도 알지 못하고 항암치료를 해봤자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라는 의술을 믿기보다는 차라리 하나님께 매달려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성경책을 뒤져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는 구절이 출애굽기 15장 26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곤 곧장 성경책을 들고 어머님께 다가가 내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총동원해서 어머님을 설득하며 치유를 위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며 같이 교회에 나가자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뿐만 아니라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얘야, 너도 너희 아버지가 어떻게 태어나셨는지 알고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에 할머니로부터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버님은 3대 독자이셨다. 아버님 위로 고모님이 한 분 계셨는데 아버님보다 12살이 위이셨다. 2대째 독자인 집안에서 고모님이 태어난 뒤로 10년이 넘도록 할머니에게 태기가 없어서 주위의 권고로 할머니가 절에 나가기 시작하셨고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드린 덕분에 태어나신 분이 아버지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열심히 절에 다니셨고 시집온 뒤 어머님도 할머니와 같이 절에 다니셨다. 어렸을 적에 나도 어머니따라 절에 가서 스님들께 절도하고 절밥도 먹고 온 적이 꽤 있다. “평생을 부처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병 낫게 해달라고 종교를 바꾼단 말이냐? 난 못한다.” 그리고 어머님은 자리에 누우시더니 벽을 향해 돌아누우셨다.


나중에 조상님들을 무슨 낯으로 뵙겠니?

하지만 그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동생이 죽고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머님까지 이대로 돌아가시게 놓아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막막하기만 했다. 수술도 불가능하고 의사는 길어야 6개월이라고 사형선고를 내린 상황에서 자식인 내가 너무도 무능하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혼자 울부짖고 머리를 쥐어뜯는 상황 속에서 다시 내게 떠오른 성경 구절은 다시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였습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어머님께 다가가 용기를 내고 지혜를 짜내서 애원하듯 말씀을 드렸다. “어머님, 부처님은 참으로 훌륭하고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그분에게 배우고 그분의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어머님, 부처님은 사람이지 신이 아닙니다. 신이 아니기에 살아가는 좋은 길은 알려주실 수 있지만 병을 고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배운 성경 말씀에 의하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의 별을 낫게 해 주시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셨습니다. 어머니, 제 말을 믿으시고 같이 하나님께 매달려 같이 기도하시지요.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어머님을 살려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고맙다, 아들아.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살아서 나중에 조상님들을 무슨 낯으로 뵙겠니? 제발 나를 이대로 있게 해 다오. 내가 부탁하마.” 아무리 이런저런 말씀을 드려도 어머님은 듣지 않으셨고 나는 기진해서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올 때 방 밖에서 우리 모자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아내가 내게 말했다. “목사님께 부탁드려 보면 어떨까요? 목사님 말씀이라면 들으실지 몰라요.” “목사님께?”하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부부가 몇 달 전부터 나가던 교회의 목사님은 나와 동갑내기였다. 한양공대를 나와서 큰 회사에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자꾸 불러서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신 분이었다.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우리 부부가 교회에 나가자 반갑게 맞아 주시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이런 목사님이라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내에게, “좋은 생각이오. 우리 오늘 오후에 찾아뵙시다,”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

그날 오후 우리는 목사님을 교회에서 만났고 자세한 말씀을 드리고 어머님을 만나달라고 부탁드렸다. 어머님이 절에 나가신다는 사실과 어머님의 성품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씀을 드렸다. 목사님은 쾌히 승낙하시며 “오늘 저녁 8시쯤 괜찮으실까요? 지금부터 어머님과 집사님 부부를 위해 기도한 뒤에 그때쯤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어머님께 저녁에 목사님이 오실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이 뭐 때문에 오시냐고, 나는 결코 교회에 안 나가겠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님께 그냥 인사하러 오시는 것이니 제발 만나만 보시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지만 어머님은 마땅치 않다는 표정이셨다.



8시쯤 초인종이 울렸고 우리는 목사님을 맞아드렸다. 목사님이 방 안으로 들어오시자 어머님이 누워계시다 일어나 앉으셨다. 반갑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려는 어머님의 모습이셨다. 그 순간이었다. 목사님이 어머님에게 큰 절을 올리더니 일어서서 “어머님, 오늘부터 저는 어머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어머님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이구,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어서 앉으세요.” 그러자 목사님이 다시 어머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저는 어머님께는 목사가 아니고 그냥 아들입니다. 저를 아들로 받아주십시오. 그래야만 앉겠습니다.” 마치 떼를 쓰는 아이처럼 어머님을 대하는 목사님을 보면서 어머님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아이구 참 큰일 났네, 그럼 그렇게 해요. 목사 아들이 생기면 좋지요. 제발 앉으세요.” 그러자 목사님은 다시 한번 큰 절을 올리더니 “고맙습니다. 이 절은 아들로 드리는 절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매일 찾아와 어머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날부터 목사님은 매일 저녁 집으로 오셔서 어머님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해 주셨지만 교회 이야기는 전혀 없으셨다. 그렇게 보름쯤 지난 어느 주일날 아침 어머님이 “얘, 그 목사님 계시는 교회가 어디니? 멀지 않으면 오늘 같이 가보자!”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어머님을 모시고 같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말 한마디였다. 어머님의 마음을 움직인 말은 거창한 구원의 교리도 아니었고 성경 말씀도 아니었다. “어머님, 오늘부터 저는 어머님의 아들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는 딸을 잃고 남편을 잃고 건강마저 잃은 한 여인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졌던 것이다. 그 말 한마디의 위력은 참으로 커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비록 어머님의 병은 완치되지 못했고 얼마 뒤 돌아가셨지만 짧은 교회 생활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웃으시며 소천하셨고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셨다. 돌이켜보면 연약한 여인의 가슴에 딸과 남편을 묻고 고통 속에 이 땅에서 사시느니 고통도 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사랑하는 딸과 남편을 만나 사시는 편이 한결 행복하셨을 것이다.


“어머님, 오늘부터 저는 어머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그 말 한마디로 우리 가족 모두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 동갑내기 목사님은 지금은 은퇴하시고 미국에서 살고 계시다. 목사와 성도 이상의 친교를 평생 나누고 있는 나와 그 목사님은 지금도 가끔씩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며 옛날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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