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친구의 靈前에 바쳐
김형, 그간 무량하시오?
7월이 되고 이렇게 비가 계속 내리는 날들이 되면 꼭 김형 생각이 나는군요. 그래 거긴 지낼 만하시오? 하긴 김형처럼 착한 성정의 사람은 어디에서도 어련히 잘 지내실 거라 믿소 마는 그래도 이렇게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부는 날이면 김형 떠나던 날 생각이 나서 내리는 빗줄기를 통해서라도 아님 불어오는 바람결에 부탁해서라도 안부를 묻고 싶소.
세월이 참 많이도 지났소. 난 그동안 한국을 떠나 이곳 먼 남쪽 나라 뉴질랜드라는 곳에 와서 산지도 벌써 오래되었지만 김형 계신 그곳은 어떠시오? 우리 아침마다 모여서 테니스를 치면서 껄껄거리고 웃던 서초동 테니스장이 요즘도 눈에 선한데 김형도 아마 생각날 때마다 거길 내려다보시겠지요. 그땐 참 재미있었던 매일 아침이었지요. 박 교수랑 나랑 한 편이 되고 김형이랑 그 키 큰 박 사장이랑 한 편이 되어서 복식 게임을 하다 보면 운동 반 웃음 반이었지요. 그땐 그게 뭐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공을 쫓아가다 놓치면 괜히 같은 편에게 미안해서 공을 가리키며 ‘쟤가 오늘 이상하게 튀어요’하며 그 사람 좋은 빈 웃음을 허공에 날리던 김형의 순전한 모습이 왜 오늘 이렇게도 가슴을 치는지 모르겠소.
그래 그 비 오는 날 뭐 때문에 무리해서 제자 문병을 가셨소? 그렇게 위중한 병도 아니었다고 나중에 박 교수가 그러던데 좀 기다렸다 날 좋아지면 천천히 가실 수도 있었잖우? 참, 김형의 그 너무 착한 성정은 주변 사람들 모두를 편하게 해 주었지만 김형 스스로는 너무 힘들지 않았소? 그러니 항상 바쁘고 몸에는 살 하나 안 붙어서 허약해 보이기만 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해맑게 웃고 다닐 수가 있었소? 박 교수에게 김형의 차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처음엔 그래도 설마 했었소. 그러나 곧이어 박 교수의 침통한 목소리가 전해주는 부음에 난 그만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소. 아니 차 사고로 죽다니, 김형 같이 침착한 사람이 차 사고라니, 아니 김형같이 착한 사람이 왜 그런 변을? 무엇 하나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 무엇도 사실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었소.
아 참 그럴 때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허약하기만 한지. 어제까지 우리 모두와 더불어 운동하고 담소하고 빛나는 눈빛을 주고받던 김형은 차갑게 식어 관 속에 누워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소. 기껏 영안실에 모여 앉아 소주나 퍼 마시고 한숨이나 쉬고 차마 용기가 없어 김형 가족들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때 나를 짓누르던 무력감과 자괴감이 너무 커 한참을 나는 영안실 바닥만 쳐다보다 고개를 들었는데 아 그때 나는 보았소. 평소와 다름없는 해맑은 웃음을 얼굴 하나 가득 담고 바로 내 옆에 앉아있는 김형의 모습을. 그리고 들었소. 김형이 나직이 내게 하던 말. ‘그러지 말아요. 난 아주 편해요. 웃어요, 노래해요, 날 위해서!’
김형, 그때 난, 장자(莊子)가 아닌 난, 초상집에서 결코 웃거나 노래할 용기가 없었던 난, 그냥 먹먹하게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세월이 무척 흐른 이제야 김형이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소. 그래요 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성경 말씀에 따르면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했으니 김형 계신 곳에서는 그냥 잠깐의 시간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그땐 난 가슴만 아팠고 더 이상 영안실에 앉아있을 자신도 없어 그냥 나와 버리고 말았다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참 소심하고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 그랬으니 용서하기 바라오.
그리고 다음날 급히 마련한 천안의 공원묘지에 김형의 관이 묻힐 때 그때도 비는 끈질기게도 내리고 있었지요. 비를 맞으며 비를 맞으며 우산도 내려놓고 비를 맞으며 나는 차라리 비가 오는 게 오히려 낫다고 느꼈지요. 관이 내려지고 흙이 덮이고 꽃이 놓이고, 그런데 나는 그 관은 빈 관이라는 생각만 들었지요. 어제 영안실에서 부스스 내 옆에 와 앉았던 김형이 다시 그 관으로 돌아갔을 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소. 또 누군가의 옆에 그 해맑은 얼굴로 슬며시 서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나는 사람들 사이를 살폈지만 어디에도 김형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소. 김형, 그때 어디 계셨소? 결코 관 속은 아닐 테고 이미 하늘나라로 가 계셨소?
다시 빗속을 뚫고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내 이미 하늘나라에 가 계실 김형 생각을 했었소. 그리고 전날 영안실에서 김형 말대로 웃고 노래하지 못한 미욱한 나를 탓하고 있었소. 누군가의 말대로 장례식에 가서 우는 사람들은 자기 슬픔에 운다는 것이 어쩌면 맞는 듯 느껴졌소. 죽은 이는 좁고 불완전하고 욕심으로 그득했던 육신을 벗어나 비로소 자유롭기만 한 데 살아남은 이들은 관 속에 들어있는 죽은 이의 껍질만 보며 애통해하는 것이 세상의 허구라고 생각되었소.
그날 밤 집에 돌아와 김형 생각을 하며 시 한 편을 썼는데 이제껏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소. 오늘 비가 계속 내리는 이 우울한 날에 김형 생각을 하다 보니 그때 써놓았던 시가 생각이 나서 꺼내보았소. 김형, 난 지금 고국에서 몇 만리 떨어진 머나먼 곳에 있지만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김형도 그날 생각이 날 터이고 또 내 생각도 나겠지요. 여기 봐봐요. 그때 김형의 미욱한 친구가 김형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썼던 시라오. 이제 처음으로 꺼내니 김형 한 번 읽어봐요.
그대를 보내며 (91년 여름 故 金敎授의 靈前에 바쳐)
어제는 그대와 더불어 술잔을 나누며
삶과 예술(藝術)의 그윽한 뜻을 논하였는데
오늘 그대는 차디찬 껍질로 누웠고
떨리는 손길 불 그어 향(香) 겨우 사르고
나 또한 그대 앞에 껍질로 앉았네
벗이여
죽음은 늘상 우리의 화두였지만
지금 돌연 죽음 속으로 들어간 그대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 그대인가
그대를 받아들인 것이 죽음인가
울며 몸부림치는 그대 가족들의 슬픔 앞에
눈물이 치솟고 오장(五臟)이 터져나가도
벗이여 나는 그대를 슬픔으로 조상(弔喪)할 수 없네
내 앞에 누워있는 것은 그대가 아니고
고작 그대의 비어있는 껍질에 불과하기에
일어서 등 돌려 나 이제 나가네
누워있는 껍질의 그대도 떨치고
앉아있는 껍질의 나도 떨치고
죽음을 슬퍼하는 모든 이에게 우리의 껍질일랑 모두 맡기고
어딘가 살아있을 진정한 그대를 만나러
나 이제 나가네
2015.7.18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