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랩메탈의 시대 선언

Rage Against The Machine의 Wake Up

by 핵보컬

1999년 극장에서 관람한 끝내주게 재미있던 영화 '매트릭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네오는 기계 세력을 향해 어느새 그들과 대등해진 인간의 힘을 과시하며 막판에 공중전화 부스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그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검은색으로 온몸을 도배한 패션의 키아누 리브스의 기럭지만으로도 멋이 폭발하는 그 장면에서 디스토션이 강하게 터져 나오는 기타 사운드와 빠르지는 않지만 절도 있게 터지는 비트,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얹힌 보컬 잭 데 라 로차의 귀에 팍 꽂히는 랩까지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내 속에서 뭔가가 쿵쿵거리는 울림을 느꼈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그 순간은 단순히 "와, 이 영화 재미있다."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 경로에서 뭔가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비단 내 개인에 국한시키지 않아도 아마 추측컨대 이 엔딩 크레딧 직전의 짧은 순간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도 새로운 세기말 문화의 흐름, 뉴메탈 시대의 도래에 대한 선언과 같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까다로운 음악 팬이라면 이미 99년이라면 밴드 Korn은 4집이 나오고 후발주자인 Limp Bizkit도 2집이 발매될 시기였고, 이미 그전에 뉴메탈/랩메탈 계열의 앨범들이 빌보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는데 뭣도 모르는 소리 한다며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락에 대해서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이들, 해외 음악에 대해 크게 파고들지 않았던 일반 대중에게 과연 이만큼 이런 계열의 음악의 매력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순간이 있었을까 묻는다면 난 아마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대답하겠다.


이 순간 이후 향후 10년 가까이 모든 액션 블록버스터와 호러 프랜차이즈의 OST는 뉴메탈 컴필레이션 앨범이 될 것이라는 것(물론 이전에 Judgment Night, Spawn OST도 존재감이 상당했지만), 한국 CF에서도 뉴메탈을 BGM으로 듣게 될 거라는 점, 학교 밴드 동아리들의 카피 대상 1순위에 이제 Metallica의 Enter Sandman이나 Steelheart의 She's Gone에 이어 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이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게 된다는 것, 홍대 밴드맨들은 이제 가죽을 벗어던지고 힙합바지를 입고 레게머리나 호일파마를 하고 무대 위를 휘저을 것이라는 점 등을 선언하는 순간이 바로 매트릭스의 이 마지막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고 되짚어본다.


물론 림프 비즈킷을 세상 무엇보다 싫어하는 Rage Against The Machine의 베이시스트 Tim Commerford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I apologize for Limp Bizkit."이라는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겠으나, 뉴메탈 무브먼트의 선두에 있는 밴드가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RATM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락/메탈의 날카롭고 공격적인 사운드와 힙합의 어딘가 삐딱한 특유의 멋을 결합한 이 필연적인 조합을 가장 멋있는 방식으로, 끝내주는 음악과 영화가 결합되어 관객의 심장에 쿵 하고 떨어뜨리는데 그걸 버텨낼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매트릭스 관람을 마친 이 날, 나와 친구들은 뭔가 끓어오르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고, 그랬기에 조용히 PC방으로 향해서 2시간가량 레인보우 식스를 하면서 서로의 머리에 열심히 총질을 하며 그 감정을 해소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그래도 모범생이었으니까. 어쨌든 끝내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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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ge Against The Machine - Rage Against The Machine (1992)

밴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데뷔 앨범으로 Killing in the Name, Bombtrack, Freedom, 그리고 상기한 Wake Up 등 지금 들어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강렬한 트랙들이 즐비한 명반이다. 롤링 스톤즈 매거진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100선 중 무려 24위를 차지하고 있다. 꼭 앨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길 권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