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에 다정함이 섞인다면 어떤 맛일까

<퍼스트 카우>, <파워 오브 도그>, <브로크백 마운틴>

by 신거니
*각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서부극'이라는 말만 들어도 연상되는 사골 같은 이미지가 있다. 시가를 입안 가득 물고 있는 마초남, 비포장도로에서 펼쳐지는 권총 결투극, 쓸쓸하게 굴러가는 회전초, 치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낭만스러운(?) 풍경까지. 실은 서부극은 그 광활한 배경과는 다르게 굉장히 긴 기간 동안 클리셰의 영역에 남았다. 마치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는 컨트리 음악처럼.


하지만 컨트리 음악에 여러 세션과 주제의식을 뒤섞으며 변주를 주듯, 가장 '마초마초'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서부극의 서사에도 점차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대표적인 예가 '카우보이의 남성성'을 점차로 비트는 일이었다. 본디 '거친 서부의 환경 = 마, 내가 상남자다!'라는 공식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었다면, 몇몇 작품은 '거친 서부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라는 또 다른 이미지를 여러 갈래로 펼쳐낸다.


<퍼스트 카우> 내가 만든 쿠키~ 너를 위해 구웠지


'다정함'과 '서부극'은 '민트'와 '초코'만큼이나 이질적인 조합이다. 하지만 민트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단단하게 팬덤을 형성할 무렵, 조용히 앉아 빵을 굽는 스윗남의 서부극 역시 치사량의 향기를 뿜어내었다. 얼마나 스윗하면 이름조차 쿠키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쿠키 역의 존 마가로가 분한 <패스트 라이브즈>도 보았기에 그 농밀한 다정함에 한창 스며들던 참이었다. 어떻게 보면 다정함이란 인내에서 온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아내의 전(前) 썸남을 참아내는 대인배 남편의 모습을 보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서부개척시대의 폭력성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신만의 관계성을 만들어가는 파워 F 쿠키의 '대안 남성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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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감독은 클리셰를 허물기 위해 '남성성의 해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이는 배경에 깔려있으되, 초점은 어디까지나 우유 서리(?)와 제과제빵 사업을 통해 우정(또는 사랑)을 쌓아가는 두 인물에 맞춰져 있다. 심지어 비스킷을 만들기 위해 밤에 몰래 우유를 짜면서도 쿠키는 계속 암소에게 다정한 말을 건넨다. 거친 서부의 세계에서도 제과제빵 사업은 이토록 다정했을진대, 왜 현대에는 이토록 냉혹한 비즈니스가 되었는지 조금은 안타까워졌다.


| <파워 오브 도그> / <브로크백 마운틴> 가장 마초적인 서부극에 동성애 코드의 등장이라


넷플릭스의 빨간 N딱지만 스쳐도 무작정 멀리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영화는 더욱 그러했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소위 '때깔'과 착상은 좋으나, 그 신선한 착점을 클리셰 덩어리로 뭉개버리며 이도저도 아닌 양산형 작품만 찍어내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래서 애초에 거장으로 인증받은(?) 마틴 스콜세지나 데이비드 핀처 같은 사람들의 영화만 선택적으로 보곤 했다.


그런 편견을 깨준 게 바로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커스틴 던스트의 심리 스릴러 <파워 오브 도그>다. 전형적인 서부 개척시대와 카우보이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 초점은 다분히 '남성성의 전복'에 있다. 가장 마초적이던 필이 동성애와 섬세한 취향이라는, 가장 마초적이지 않은 특성을 감추고 살아간다. 비실비실한 체형과 여성스러운 성격으로 놀림받던 피터는 필에 대한 복수에 성공한다. 특히 그의 최후를 고려한다면 결국 '필의 남성성이 필을 죽이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멜랑콜리아>에 이어 커스틴 던스트의 신경쇠약 연기도 최고조를 찍으며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끌고 간다.



역시나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이 두 인물 간의 애상을 톺아본다면, 이번 작품은 마음을 옥죄는 필의 웨스턴 시월드 vs. 로즈 모자의 심리적 전투를 지근거리에서 다룬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전투법이 있다.


퀴어 카테고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 단연 <브로크백 마운틴> 일 것이다. 히스 레저의 맨 얼굴과 더불어 <다크 나이트> 조커와의 갭을 한층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세상 순박하고 애절하면서 아름다운 여운의 연속이다. 제이크 질렌할의 틱틱거리는 츤데레(?) 연기도 일품이다. 이 영화가 개봉한 뒤로 엄청나게 많이 놀림을 받았다고 하나, 그래도 이런 훌륭한 작품을 보게 되었으니.


p.s. 그나저나 미셸 윌리엄스는 극 중에서 항상 모종의 이유로 연인과 헤어지는 것 같다. 히스 레저와도 사귀었으니 현실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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