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고등학생 두 명이 뒤에 앉는다.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도 까마득했는데 대학 원서를 넣고 오니 기분이 이상하단다. 교복을 벗고 정장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상상이 안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나중에는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하다 식의 얘기를 한다. 이미 어른이 된 나도 똑같은 고민을 한다. 나는 더 큰 어른이 되어서 뭘 하고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난 아직 자신이 없다.
저 아이들도 대학에 가고 어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갈 텐데.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버스에서 내렸다. 선선한 밤공기를 맞으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모르던 학생 시절부터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지금. 그리고 뿌옇게 앞을 가리는 미래까지. 짧은 산책길이었지만 머릿속은 긴 여행을 다녀왔다.
만약 어린 날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들려줄까? 미래의 내가 지금 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조언을 건넬까?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은 힘들고 불안하다고 하지 않을까? 동시에 그럼에도 어떻게든 인생은 살아지고 시간은 가고, 그리고 언젠가 죽는다고 말해주겠지. 현재를 충만하게 살고 방향을 잘 설정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라고 조언하겠지. 난 나를 아니까. 그래서 그렇게 말할 줄도 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래의 나도, 과거의 나도 만날 수 없다. 대신 현재의 남을 만날 수는 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도 수많은 이들이 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하게 힘들어하는 이들. 단순히 눈앞에 닥친 일만 처리하는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큰 현안을 두고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위로를 받고 싶으면 위로를 하면 되고 도움을 받고 싶으면 도움을 주면 된다. 단순한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위로나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내가 조금 더 나아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내가 배우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줘야 받을 수 있고, 베풀어야 얻을 수 있다.
퇴사 이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다. 그냥 퇴사라는 결정을 조금 더 먼저 내렸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을 뿐이다. 고민의 흔적이 쌓이면 남에게 공유할 수 있다. 그렇게 불안하게나마 스스로 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유가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적어도 경제력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내 지갑에 땡전 한 푼도 없는데 남에게 선뜻 돈을 내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 인생의 여유는 지갑이 아니라 도움에서 온다. 타인을 돕는 건 이타적이면서 동시에 이기적인 행동이다. 나 자신도 성장하면서 동시에 행복과 의미도 얻을 수 있다. 자신을 크게 갉아먹는 게 아니라면 손해 볼 일이 없다.
한 영상을 보니 일을 지속하려면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재능이나 능력보다도 내가 어떤 사람을 어떻게 도울지가 중요하다.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타케팅(Targeting)이다. 단순히 이타심에 남을 돕는 게 아니라 천직을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절차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남을 돕고, 그 과정에서 수익도 창출한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일의 형태가 아닐까.
어린 날의 내가 묻는다.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내가 대답한다. 난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처럼 인생의 의미와 충만함을 찾아 헤매고, 직장에서 만족하지 못하며, 인생도 알차게 잘 살아가고 싶은 누군가를 말이다. 브런치 포스팅도 그 과정의 일부이고, 앞으로는 더 확장해나가려고 한다. 퇴사 이후엔 남는 게 시간이니 이것저것 시도할 일만 남았다.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