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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도시 13화

강당

by 안개홍


오후 2시 30분. 으뜸중학교 강당


으뜸중학교 강당은

마치 거대한 관속처럼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크고

동시에 기묘하고 조용했다.


무대 커튼은 오래된 극장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상단의 황금색 테슬은

단 한 번도 손길이 닿은 적 없는

머리카락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무대 중앙에는 번들거리는 태극기.

그 사이 붉은 깃발 두 개.

큼지막하게 교훈이 새겨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성실·정의·배려'


금박이 벗겨진 글자들은

조명을 받아 맥없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이곳의 공허함을 깊게 드러냈다.


누군가 작은 헛기침만 해도

강당은 과장된 울림을 토해냈고

의도적으로 숨을 죽이면

그 침묵조차 증폭되는 듯했다.


강당의 무대 위 A구역에는

학군지 권력층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학원협회장, 장학사, 변호사, 교감.

서로 견제하듯 빳빳하게 다려진 정장.

매끈한 구두 끝 광택.

그들의 존재감은 강당 전체를 압도했다.


그 중앙에는 학부모회 회장 한태준.

그는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었지만

손목시계를 반복해서 확인했다.

얇은 초침이 한 칸이 넘어갈 때마다,

그의 표정은 미묘하게 흔들렸다.


잠시 비운 병원.

쌓여 있을 환자 대기표.

시간의 흐름은 곧 수익의 손실.


태준의 초조함은

억제된 호흡 속에서

서서히 번져 나오고 있었다.


강당 무대 앞 B구역.

평범한 학부모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값싼 잠바, 낡은 코트와 청바지.


그들의 웅성거림은

A구역 인사들이 자리를 채울수록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서로 다른 위계의 공기.


그들의 시선은 불안과 경계심이 가득했고

자신의 자녀가 이번 사건과 연관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역력히 드러났다.


"자, 모두 정숙해주시기 바랍니다."


교장의 첫마디가 마이크를 타고

강당 전체로 쩌렁하고 퍼져나갔다.


마이크는 목이 비뚤게 꺾여 있었다.

손이 닿을 때마다 '삐— 지직'하는

불쾌한 잡음이 흘러나왔다.

학부모회가 자주 열리지 않았단 증거였다.


"오늘 안건은 으뜸중학교에서

체육시간에 발생한 폭력사건에 관한 건입니다."


폭력이라는 단어가 공중에 떠오르자

강당 여기저기서 작은 탄식과 웅성거림이 일었다.

뒷줄 학부모 중 한 명은 가방을 움켜쥐었고

다른 이는 아이 이름을 중얼거리다 말았다.


학원협회장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변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책상 위 서류 모서리를 가지런히 맞췄다.

그 사소한 제스처는 마치 전투를 앞둔 병정들 같았다.


폭력


태준은 그 단어를 듣고

입속에서 오래도록 굴려본 듯 익숙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그 단어가 가진 파괴력을 알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의사로서, 학부모회 회장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지위는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교장은 준비된 문장을 읽었다.

호흡은 느렸고, 단어는 분절적이었다.

한 글자씩, 천천히.

마치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이번사건은 1학년 3반에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사소한 다툼으로 파악되었고,

이미 양측 학부모 합의 하에 종결되었습니다.

상처는 경미했으며

피해 학생 측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다시 짧은 웅성거림.

종결된 사건이라면 안도해야 할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강당에 모인 모두가 궁금했으나

질문은 목구멍을 넘기지 못한 채

의문스러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맴돌았다.


"김현우 학생부장님,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적막한 가운데

교장의 요청에 현우가 천천히 일어섰다.


현우가 마이크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짙은 네이비 재킷과 단정한 와이셔츠.

긴장과 피로가 뒤섞인 현우의 얼굴.

눈 밑에는 지워지지 않은 그늘이

깊숙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미 원만히 합의된 사안입니다.

학부모회의에서 굳이 논의하고

기록으로 남길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사실은 그랬다.

현우네 반에는 전교 1등 아이.

전교 2등인 태준의 아들과 같은 반이다.


전교 1등을 시기질투한

태준의 아들은 친구를 시켜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폭로했다.


화가 난 전교 1등 아이는

그 친구의 멱살을 잡은 게 다였다.

그 친구는 전교 1등의 절친한 친구.


태준의 아들은 벌써부터

약자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잘 알고 있는 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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