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돌팔이, 사기꾼 그리고 나

2020년 5월 14일

by 펭귄들의우상

싸늘하다. 어깨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마라.


아니다. 걱정이 된다. 내 어깨.


예전, 아마 가장 처음 썼던 글에서 언급했듯이 2018년 9월 골프 수업 개강 첫 날, 나는 어깨를 다쳤다. ‘우둑’ 하는 소리와 함께, 처음 겪는 고통이 느껴졌고 그 길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초음파를 찍어보더니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저길 봐라, 회전 근개가 파열된 흔적이다.’ 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했다. 어깨 내의 뼈도 같이 부러져서 한동안 깁스를 해야한다고 했고, 그때부터 다음해 5월 14일까지 약 9개월동안, 나는 빠지지 않고 병원을 다녔다.


마침 학교 앞에 붙어 있던 ‘어깨관절 전문 병원’ 이라는 타이틀은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기에 충분했고, 의사는 유독 친절하게 나를 대하며 여러 의학 지식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그 의사는, 아니 그 새끼는 무려 9개월 동안 치료를 성심성의껏 받았는데도 낫지 않는 어깨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나는 운동은 커녕,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일들이 너무 많아져 우울감에 빠지곤 했다.


이듬해 5월, 평생 어깨가 낫지 않을까 무서워서 학교 병원 교수님께 진료 예약을 했었다. 어깨로 유명하기도 하셨고, 우리 병원에 한 분 밖에 안계시는 어깨 전문 교수님이셨기에 5월에 예약을 잡았지만 7월 중순에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 뭐 한 두달이 어때서 9개월도 했는데, 이러고 그냥 기다리기로 했었는데, 재밌는 일이 일어난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스승의 날이 되면 교수님들께 편지를 작성해서 ‘직접’ 가져다드리는 전통이 있다. 교수님들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학생들에게 편지를 받는 일에 굉장히 어색해하시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솔직히 재밌다. 평소에 들어가보지 못하는 교수님 연구실도 가보고, 병원 진료실 뒤의 의사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치 뭐라도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학생 한명에게 교수님 두 분이 배정되는데, 마침 옆에 있던 동기 형에게 내가 진료 받기로한 그 교수님이 배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뭔가 진료를 받기 전에 한번 찾아뵈면 뭐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형에게 부탁해서 담당 교수님을 바꿨고, 그 분에게 편지를 들고 찾아가게됐다.


긴장한 채로 교수실의 문을 두드리자, 교수님이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예과 2학년 000입니다. 교수님 스승의날 감사편지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아 그래 얼굴도 잘 모르는데 쓰느라 고생했다.”


“아 사실 교수님 제가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교수님 진료 받으려고 예약해서 두달 뒤에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그때 다시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전근개? 누가 너가 회전근개가 다쳤대?”


“그 학교 앞에 000정형외과에 갔더니 그렇다고 해서 9개월 째 치료받고 있습니다.”


“ 아 또 그 새끼네, 그 암덩어리 같은 새끼, 너 일단 됐고, 이따 1시까지 진료실로 내려와라 뭘 두달 뒤에 보냐. 점심먹으면서 봐줄게”


여기까지 대화가 끝나고 속으로 ???한 상태였지만 진료를 당장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서 준비하고 병원으로 갔다. 교수님은 점심시간으로 샐러드를 드시고 계셨고, 분주히 의사 분들이 일하시는 와중에 진료를 보게 된다. 약 10분 간의 아주 오랜 진찰 끝에 교수님은 입을 여셨다.


“문제 없네”

“전혀 문제 없어. 어깨 건강하네”


“..........?”


의문에 찬 표정을 본 교수님은 그 새끼가 어떤 사기를 치고, 어떻게 돈을 뽑아먹기 위해 노력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구슬리는지 설명해주셨다. 머리속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혼란했지만 결론은 명확했다.


9개월동안 속았다.


회전근개는 멀쩡했고, 초음파 사진은 초음파를 일부러 일그러지게 찍은 것이었고, 염증 상황에서 재활을 무리하게 하다보니 염증이 덧나고 관절 유착이 생긴 상황이었다.


알고보니 학교 교수님들 사이에서는 이미 악질 병원으로 유명했었고, 매년 여러명 나처럼 치료받고 더 안좋아진 사람이 학교 병원을 찾아온다고 했다. 그 의사는 이미 정형외과학회에서는 반제명 당했으며, 부끄러워서 학회에 얼굴도 못내미는 상태였다. 심지어 수련받았다고 자랑했던 국내 최고의 병원은, 이름만 같은 지방 병원이었으며, usmle(미국 의사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지만 1차 합격만 하고 다음 시험은 안봤다고.


미친놈이었다. 그냥.


그제서야 병원 후기를 읽어보니, 발목이 아파도 어깨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등이 아파도 어깨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의사라 욕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 5월 14일. 나는 아직도 그때 초기에 잡지 못한 염증 때문에 관절 유착이 생겨 고생하고 있다.


다른 병원을 가봤지만 염증이 너무 만성화되어서 관절낭과 막 사이가 굳어버렸다고 한다. 즉 앞으로도 나는 왼팔을 오른팔만큼 위로 들 수 없다. 그 새끼 때문에.


유착성 관절낭염(Adhesive capsulitis), 사람들 사이에 널리 쓰이는 말로 ‘오십견’ 이다. 난 반오십도 안됐다.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 의사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이에 대해서도 생각이 정리되면 글을 한번 써보려고 하는데, 뭔가 이 사건이 나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 것 같기는 하다.


이 스토리를 최근에 다른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 동기랑 얘기를 나눴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동기가 해준 굉장히 뇌리에 박힌 문장이 있다.


“나는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할래. 우리도 지식이 부족할 수는 있어도, 양심을 버리지는 말자.”


당연한 말이지만, 매일 공부하면서 힘에 부칠 때 이 문장이 생각난다.


최근에 그 병원을 다녀온 동기 말을 들어보니, 아직도 그 병원은 줄을 서서 2시간은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더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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