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종강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간 매일 빠짐없이 12시간은 침대에 누워있는 듯하다. 잠도 이제 잘만큼 자서, 슬슬 후기를 써보려 한다.
브런치에는 글의 유입 키워드를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이 키워드 시스템을 알게 된 이후로, 가끔 들어가서 관찰하곤 하는데, 재밌는 점이 있다.
내 유입 키워드의 대부분은 ‘의대 본과’라는 점이다. 아마 대부분은 수험생이겠지만, 어떤 점을 궁금해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정말 의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본과가 공부량이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많다’ ‘힘들다’의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려움이 분명히 있기에, 그 점을 전달하는데 집중해서 써보려 한다.
시작은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 넘쳤다. 공부가 힘들다는 선배들을 보면, ‘나는 아닐 거야’, ‘나한테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고, 유급한 선배들을 보면 ‘대체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최상위권에 속해있는 친한 선배의 얘기를 들을 때면 ‘그래 이게 내가 들어야 할 얘기지’ 싶었고, 공부와 여러 가지를 병행하는 선배들을 보면 ‘나도 저래야지’ 싶었다. 그냥 한 마디로, 나는 분수를 몰랐다.
그럼에도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예전 글에서 설명한 골학은, 육체적으로는 피로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큰 문제없었다. 우리 학교의 골학 시스템은 굉장히 특이해서, 내가 못하면 같은 조에 민폐를 끼치게 되는 구조인데, 그렇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내용을 외우게 하면, ‘뇌지컬’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의 암기 재능이 드러난다. 다행히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편차가 좀 있기는 했지만, 상지(상완, 어깨, 넓게는 등까지) 날 전체 1등을 기록하면서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본 땡시에서는 평균 정도의 점수를 기록하며, 또 한 번 안도하고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지옥 같던 일주일이 끝나고, 이제는 진짜 시작이었다. 처음 정장을 입고 본과 진입식도 마치고, 왜 주는지 모를 방향제와 핸드크림을 선물로 받고, 바로 해부학 예습을 시작했다. 우리 학교 해부 과정은 추후에 따로 소개하겠지만, 일반적인 의대와는 달라서 필기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다. 따라서 본인이 정해진 교과서로 예습을 하고 들어가야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열람실에 거의 하루 종일 박혀있었다. 목표는 당연히 최상위권이었고, 성실함이 무기라고 생각해서 많은 시간 공부에 투자했다. 그렇게 2월 3일, 해부학이 시작된다.
해부는 지옥이다. 그냥 지옥이다. 짧은 내 23년 인생 중에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기억은 없었다. 모든 의대가 이렇지는 않다. 우리 해부 과정이 타 학교에 비해 2배 이상 짧았기 때문에, 바꿔 말하면 우리는 2배 더 밀도 있게 공부하고, 2배 이상 더 실습에 참여해야 했다. 해부 실습 과정을 잠깐 상상해보자.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적당히 선식 하나에 우유를 타고 섞으며 학교로 간다. 학교에 도착해서 선식을 마시고, 빨리 양치하고 해부실에 들어갈 옷으로 갈아입는다. 옷을 갈아입고 손에 핸드크림을 잔뜩 바른다. 그리고 8시에 가까워진 시계를 보면서 실습실로 뛰어들어간다. 들어가면 이제는 익숙해진 지방 썩는 냄새와 포르말린 냄새를 뒤로하고, 빠르게 장갑을 낀다. 라텍스 하나로는 부족해서 라텍스에 비닐장갑까지 낀다. 빠르게 표본실에 들어가서 가운을 입고, 카데바를 연다. 8시다. 교수님이 계시는 동안에는 총 로테를 해야 한다. 조원 모두 메스를 잡고, 각자 위치를 해부하기 시작한다. 카데바가 낮게 있어서 목이 아프다. 팔을 계속 들고 있었더니 어깨도 뻐근하다.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포르말린 냄새에 코가 아프고, 눈물이 흐른다. 이렇게 해부를 하다가, 점심 먹을 시간이 되면 교대근무를 서기 시작한다. 운이 나빠서 학생식당 시간이 끝나도록 실습실에서 나가지 못하면 배달해 먹거나 굶어야 한다. 밥을 먹고는 포르말린에 적셔진 몽롱한 정신을 붙잡고 해부 공부를 하러 간다. 열람실에는 이미 다른 친구들이 공부 중이다. 불안감에 휩싸여 앉아서 열심히 외워보지만, 포르말린으로 절여진 신체는 말을 듣지 않는다. 공부를 얼마 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또 해부를 하러 가야 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저녁 10시 총 로테를 하러 가야 한다. 각자 찾은 것을 짧게 설명하고, 기구를 세척하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다시 열람실로 돌아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실습실에 오랜 시간 있는 동안 머리는 왁스라도 바른 것처럼 딱딱하게 굳고, 몸에서는 카데바 냄새와 포르말린 냄새가 섞여서 난다. 독성 기체를 너무 마셔서 머리도 아프고 몽롱하다. 그래도 필기시험을 보려면, 지금 공부해야 한다. 또 얼마 공부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2시다. 이제는 가서 자야 한다. 씻고 쓰러지듯이 침대에 눕는다. 2시 반이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7시에 일어난다.
이게 해부학의 하루다. 지금 잠깐 떠올려봤는데, 아찔하다. 해부가 끝나서 너무 다행이고, 너무 감사하다. 동기들 중에는 이 해부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던데, 물론 극소수다. 잠도 못 자고, 약품에 절여져서 머리도 빠진다. 그리고 해부의 가장 큰 문제는, ‘하루가 너무 길다.’는 것이다. 정말 하루가 더럽게 길다. 해부 한 달은 한 것 같은데 아직 3일도 안 지나있고,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부 검사라도 있는 날이면, 불안감에 필기 공부도 잘 되지 않는다. 공부를 하고 들어가도, 해부 검사에는 교수님에게 처절하게 혼나게 된다. 신체적, 정신적 모두 피폐해지면서, 나처럼 멘털이 약한 사람들은 이제 살아남는데(유급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어찌어찌 버티다 보니 1차 시험, 2차 시험, 땡시까지 해부가 끝났다. 물론 성적은 망했다. 상태가 괜찮았던 시점에는 목표했던 등수 근처에라도 갔었으나, 한번 놓은 이후로는 회복이 되질 않아 정말 살아남기 위한 등수를 받았다. 이러면 또 불안감이 강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난 상위권이어야 하는데, 공부를 안 하는 것 같던 동기들이 나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받는 걸 보면서 자괴감이 심해진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다. 난 살아남기 위한 해부를 했으니까. 3D에 재능이 없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스스로를 위안하며 조발 신에서는 설욕하겠노라 다짐한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나눠서 써야 할 것 같다. 해부학에 이어서 조발신부터의 이야기를 다음에 이어서 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