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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Aug 27. 2023

[UFN:할로웨이 VS 정찬성] 후기

수고 많으셨습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 선수를 처음 알게된 것이 언제일까. 그의 경기를 처음 본 날이 언제일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격투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UFC를 챙겨보기 시작한 예과 1,2학년 어느 때였을 것이다. 더이상 경기를 하고 있지 않은 김동현 선수와 함께 UFC에서 당당히 상위랭커의 자리에 있던 그의 경기, 그의 커리어가 오늘 끝났다.


배당률에서 알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매치가 발표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정찬성 선수는 할로웨이에게 패배할 것이다. 페더급의 왕 볼카노프스키와 트릴로지를 할만큼 뛰어난 실력과, 링 네임 The Blessed에 걸맞은 강철 턱과 미친 체력의 볼륨 펀처 할로웨이를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국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정찬성 선수의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보여줬던 카운터 하나로 어떻게든 제대로 맞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1라운드가 시작되고 특유의 머리를 미끼로 쓰는 카운터 복싱을 봤다. 불안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선전했지만, 라운드 극 초반 투스텝으로 들어가다가 정확히 카운터에 걸려 휘청한 모습을 보고, 오늘의 경기가 판정승/패로 끝나지는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2라운드가 시작되고 또 좀비가 할로웨이의 카운터에 걸려 다운됐을때, 끝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롤링하면서 하체를 잡으려는 정찬성 선수의 모습에서, 10년 전 그의 경기에서 그라운드로 가면서도 깜짝 서브미션을 노렸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래서 슬펐다. 그때 그의 그런 기지는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의 젊은 탄력과 부상 전의 모습에서는 유망주의 무언가를 기대할만 했으나, 오늘의 롤링은 생존을 연장하기 위한 도구였다. 아나콘다 초크를 잡혔을 때, 초크가 완전히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손 그립이 너무 깊어서 풀기는 어려울거라 생각했고, 그라운드에서 주짓수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을 준비했다. 그런데 어떻게 일어나더라. 경기를 다시 보지를 않아서 어떻게 일어난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일어나는 그의 모습이 너무 슬펐다. 그로기 상태를 회복하려고 계속 아웃파이팅을 시도했지만, 중간 중간 얹히는 잽이 그로기를 연장시켰고, 하지만 그럼에도 회복하고 라운드 막바지에는 다시 공격을 시도하는 모습이 너무 슬펐다.


3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그냥 운영으로 5라운드까지만 버티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종이 울리자마자, 튀어나가서 할로웨이를 당황시킬 만큼의 펀치를 쏟아내고, 아 이번 라운드가 마지막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UFC에서 가장 개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누구냐 묻는다면, The diamond 포이리에와 The blessed 할로웨이를 꼽을 것이다. 그 할로웨이에게 개싸움을 걸었다는 시점에서 이미 끝났지만, 그로기 상태로 흐느적 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10년 전의 미국에 가기 전의 좀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뻤다. 그렇게 수십초 후, 스탠딩에서 맞아도 갈 것 같은 라이트 훅을 카운터로 맞으면서 다운되는 좀비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보통 이쯤되면 오늘을 위해 티빙을 결제해뒀음에도 그냥 화면을 꺼버린다. 관중을 위해 같은 KO 장면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다. 이제 좀비의 KO는 맥스 할로웨이의 모든 하이라이트에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승자에게는 그토록 멋진 KO였고, 좀비에게는 뼈아픈 상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끝까지 보고 싶었다. 아마 좀비의 은퇴를 마음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짧은 할로웨이의 하와이를 위한 승자 인터뷰 뒤에, 비스핑과 패자 인터뷰를 시작한 정찬성의 첫마디는 "그만하겠습니다." 였다.


"그만하겠습니다."


한국에 어쩌면 다시는 나오지 않을 타이틀 샷을 10년에 걸쳐 두번이나 받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UFC 선수의 은퇴다. 그가 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승리로 마지막을 장식하기를 정말 바랐다. 패배하고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고, 이제는 웃으면서 링을 내려오기를 바랐다. 그의 인터뷰를 보고, 팬들이 그의 주제곡을 불러주며 퇴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정찬성 선수는 절대 볼 일이 없겠지만, 그의 정말 깊은 팬 중 한명으로서 꼭 글을 남기고 싶다.


정찬성 선수, 정말 수고 많으셨고, 마지막 라운드에서 예전 코리안 좀비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동안 격투기 팬으로서 행복하게 볼 수 있는 많은 경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T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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