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관해서라면
최근 나는 무려 7년 만에 월급 다운 월급을 받는 일을 시작했다.
최근 읽은 책, 김영선 작가의 <존버씨의 죽음>을 떠올린다. 존버씨의 삶과 나의 삶은 아직까지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간 월급 받는 일을 하지 않았으니 노동환경과 노동조건 노동법에 대해 생각해 볼 일도 없다시피 했다. 7년간 부모님께 생활비 명목의 용돈을 받으며 지내왔다. 적은 돈도 아니었다. 처음엔 한 6개월, 길어봤자 1년이면 다 회복되어 원하는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며 돈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괜히 희귀난치질환이 아닌데, 나을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어쩌다 플라스틱 웅덩이에 고인 물 같은 삶이 시작됐고 지지부진하게 해가 바뀌길 반복했다.
내 삶을 스스로 꾸려갈 자유, 내 몸을 스스로 건사할 자유가 필요했다. 그러나 자유는 원한다고 얻어지는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경우, 오랜 계획과 실행을 필요로 했다. 더군다나 스트레스를 덜어내기 위해 집 바깥을 달리는 것도 1km 즈음 달리면 한쪽 몸에 힘이 빠지며 다리를 바닥에 끌지 않기 위해 뒤뚱뒤뚱하다 이내 지치고는 했다. 걷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하더라도. 몸의 중심-위치를 감각하는 고유수용체에도 영향이 있어 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어지럽기 일쑤였다. 시신경에 문제가 생겨 시너지가 일어난 어지러움은 오래도록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야 이새끼 맨날 밤에 뭐 하냐?" 카페에서 친구들과 만나는 것 같은 간단한 일에서도 온 존재를 짓누르는 듯한 피로감에 1/3 정도는 엎드려 잠 자는 것에 사용됐다.
현대의학에서 주지 않던 해답을 찾아 자연치유 요법, 면역력 증강법, 수기 치료, 마사지 치료, 체성분 검사 등 별의별 것을 다 찾아다녔다. 당시의 나는 흡사 매일 온 산을 뒤지며 돌아다니나 산삼은 캐지 못하는, 연거푸 실패하는 심마니 같았다. 유튜브를 뒤져 독일에 있는 한 기적의 마사지 치료사도 찾아갔으나 모두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되레 자연치유를 얘기하는 사람을 보면 의심의 눈 부터 꺼내들게 됐다. 그 과정 속에 삶의 모든 방면에서 길을 잃었고 길을 잃은 뒤엔 알고 있는 길만을 다녔다. 삶의 폭은 계속해서 좁아졌다. 가장 젊고 활기에 넘쳐 인생의 밑동을 다져야 할 시기를 소파나 침대에서 더 많이 보냈다.
원래 해오던 연극 연습과 훈련을 다시 시작하기도 했으나 솜방망이처럼 무뎌진 딕션과 몸의 움직임 그리고 언제나 부족한 에너지를 매 순간 체감하며 잃어버린 스스로의 모습이, 그리고 당장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했다. ‘연습으로 극복해야지’라며 연습량을 늘렸지만 그럴수록 더욱 빠르게 지칠 뿐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함께하는 나날이었다. 몇 편의 연극을 올린 후 감각이 무뎌진 몸, 항시 피로에 절어있는 몸으로도 이걸 놓지 않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것뿐이란 결론에 다다랐다. 더 이상 나는 재밌어서 그것을 하는 게 아닌 과거의 열망을 놓지 못해 꾸역꾸역 쫓아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쏟는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경제적 보상은 처참했다.
내가 노동이라 할 만한 것을 해본 일이 있던가? 질환을 얻어 조기 전역한 직후 연극 그리고 뮤지컬 마니아라며 연극과 휴학생인 나를 반기며 반색하던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뇌와 척수의 신경 전달이 원활하지 않아 일정한 밸런스를 유지하며 걷는 것이 안정적이지 못한 몸으로 서빙하다 아름다운 라떼아트를 연달아 흘려 망쳐버린 뒤 이틀 만에 그만 나올 것을 권고(?) 받은 일을 노동이라 말할 수 있을까, 파주 구석의 어느 책 공장에서 도서 포장이라는, 책을 30권 정도씩 박스에 담아 머리 높이까지 쌓아 올리는 업무를 하다 힘이 빠져 책 박스와 함께 엎어져 하루 일하고 그만뒀던, 알고 보니 중노동이었던 책 포장에 대해서 말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제주의 도자기 카페 겸 공방에서 일한 지 한 달 즈음 됐을 때, 나의 몸 사정 이야기를 듣고 "뭐든 다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 하며 그게 무엇이냐 묻자 '뇌호흡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내던, 적어도 2700년 정도 된 비기를 알려줄 것처럼 사뭇 의미심장하게 말하던 사장이 영 찝찝하고 불쾌해 그만둔 것을?... 마치 이단 종교 혹은 알 수 없는 컬트 집단으로 끌어들이려는 듯한 에너지를 게슴츠레한 눈에서도 그와 곁들인 괜스레 점잔을 빼던 말투에서도 느껴버린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좀 생각을 하다가 다음 날 도자기 체험수업 중이던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는 '천년의 비기를 친히 전수하려 했는데 그만두겠다니 그게 무슨?' 하는 것 같은 어이없음이 묻어나는 투로 "왜에에-?" 소리를 길게 끌었고 잠시 말이 없더니 일순 생각이 바뀐 듯 사무적인 목소리로 "그래요오-" 하고 전화를 끊고 도자기 제작 체험 고객에게로 돌아갔다. 천년의 비기로 꾀어 말 잘 들을 종신 알바 하나 둘 수도 있었는데 공쳤다는 실망감이 그의 '그래요오-' 에 묻어난 듯했다.
일을 하며 매번 몸의 한계를 느꼈다. 나아질 수 없다는 믿음이 짙게 내려앉은 몸은 엎어지기 일쑤였고, 뭔가를 흘렸으며 깼다. 그러는 동안 정신은 계속해서 위축됐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최근 나는 사정에 맞는 일을 얻었지만, 한 달마다 계약을 새로 하는 일용계약직이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노동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