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메론빵과 크리스마스

경험하지 않은 추억에 대하여 - 나는 왜 메론빵을 좋아하는가

by 호지차와 낙지좌

1. 메론빵의 환상


요새야 어디서든 메론빵을 볼 수 있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메론빵은 명실상부 '일본 음식'이었다.

메론빵의 존재도 실물로 먼저 보게 된 것이 아니다.

오타쿠였던 나는 <작안의 샤나>라는 애니를 보고

있었는데 여자 주인공인 샤나가 항상 지 얼굴만한

메론빵을 입에 물고 있었다.

씹덕 같아보이겠지만 정말 먹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마치 스펀지밥의 게살버거처럼 맛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맛 이상으로 메론빵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본의 상징으로 내 안에 자리잡았다.

뭔가 우리랑 다른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보내는 것 같은

일본, 그 일본 생활에 대한 환상의 상징으로서 메론빵이

있었다.


그렇게 마침내 대학생이 되어서야 가게 된 일본에서

처음 메론빵을 먹게 되었다.

만든 지 이틀 지난 소보로빵 같은 맛이었다.

(요즘은 메론빵에 크림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가장 기본 메론빵은 사실 소보로빵 같은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맛에 놀랐으면서 애써 무시한 나는

지금도 일본에 가면 꿋꿋하게 그 퍽퍽한 메론빵을

사먹는다. 도처에 메론빵이 깔려있는 지금도 굳이

일본에 가서 그 크림이 없는 메론빵을 먹곤 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창문으로만 접한

'일본스러움'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맛이 아니라 분위기를 먹고 있는 셈이다.


2. 본 적도 없는 벽난로를 추억하며


크리스마스가 한 달 남짓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는 곳은 다름 아닌 스타벅스다.


한 달이 좀 더 남았는데 오전 7시부터 캐롤을 틀어준다.

거지꼴로 아침 커피를 사러가서 멍하니 앉아있자니

캐롤송이 들려왔다.

아침 7시, 속옷에 가까운 옷을 가린 롱패딩, 다 뻗친

머리를 해서 멍하니 캐롤을 듣고 있자니 어딘가 좀

이상하다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가 오는 느낌은 어딘지 모를

따듯함, 풍족함, 마음의 편안함을 준다. 연탄이나

써봤지 벽난로는 본 적도 없는데 무언가 벽난로에서

흔들의자에 앉아서 핫초코를 먹어야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델리만쥬 같다. 냄새는 끝내주지만 그만큼의 맛은

안 나듯이 크리스마스는 항상 당일은 정작 별 것이

없다. 그럼에도 어딘가 휴일 이상의 느낌을 주곤

한다.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항상

'제일 서구적이고 세련된 휴일'이었다.

추석이나 설은 친척들로 가득 차서 방으로 도피하기

바쁘다. 크리스마스 이후 신규등록된 기념일들은

초콜렛이든 빼빼로든 사고 나누고 하는 것들이라

즐겁지만 정신이 없다. 무엇보다 산타와 다르게

초콜렛이나 빼빼로는 못 받을 확률이 높다


반면 크리스마스는 공식적으로 무언가를 할 일은

없었다. 그러면서 어딘가 내 주변이 서양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는 시기였다.

그 시골 로타리에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 선물

포장지의 그 질감과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색깔.


결국 그 분위기를 잊지 못하여 매해 별 거 없을

크리스마스에 괜시리 마음이 풍요로워지곤 한다.

본 적도 없는 벽난로, 그곳에 걸린 양말, 따듯한

핫초코와 빨간 스웨터.


모순적이만 '경험하지 않은 추억'이란 것이 있다.

선망하는 것 자체가 추억이 된다고 해야할까.


그 가상의 분위기, 추억, 느낌을 떠올리며 지금도

퍽퍽한 메론빵을 찾고 캐롤이 들리면 거지꼴로도

앉아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