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urger kim Mar 09. 2023

고독과 고립의 경계 <류블랴나>

어항 속 도시

 



누군가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습관처럼 '사람공부'라고 외친다.

그리고 '사람공부'를 가장 하기 좋은 장소는 그 도시의 대중교통 속이다.

눈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만,

미세한 동공의 움직임으로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아래

이 사람들의 생각, 직업, 감정

심지어 어떤 음악을 들으며 버스에 몸을 실었는지가 궁금하다.



이어폰 선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사람

책 속에 깊숙이 빠진 사람

시트의 먼지를 터는 사람

생각에 잠겨 창문을 바라보는 사람

반대편 자리에서 계속 쳐다보는 아기



이 모든 사람들의 행동과 그들에 대한 재밌는 추측이 나에겐 최고의 학습자료다.

버스라는 하나의 주제로,

승객들의 독립된 스토리를 늘어놓아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를 머릿속으로 구상하며 영사기를 돌려본다.

그럼 그날 공부는 끝이다.





슬로베니아어로 류블랴나(Ljubljana)는 '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이다.

Slovenija라는 단어에서도 'love'를 볼 수 있듯이 이 나라는 작정을 하고 사랑과 연관을 짓는구나 싶었다.


살인을 일으킨다는 동유럽의 겨울 때문인지 이곳에는 사람이 없다.


특유의 분위기, 텅 빈 거리 그리고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 추위.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내면 깊숙이 박혀있던 우울함에 빠진다.


하지만 류블랴나의 골목길에서 이어폰을 꽂고 낡은 음악을 트는 순간

우울했던 거리가 한 편의 명화가 된다.




어항 속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언덕길을 오르다가 마주한 광경이다.

헐벗은 나무, 어항 속 색감 그리고 듬성듬성 따뜻해 보이는 주홍빛 조명은

나를 충분히 감동시켰지만, 한 편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밝은 우울감이 찾아왔다.





어느 평범한 와인 가게라 할지라도

류블랴나의 향이 입혀지면 사연 있는 가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 같다.



옷의 색깔은 기분을 좌우한다.


쓸쓸하고 다운됐던 이곳의 분위기는

강렬한 빨간색 패딩을 입은 여인으로 인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공간의 아름다움보다 그 공간 속 사람들로 인해 그곳의 기억이 미화되거나 왜곡된다.




낡지만 당당한 자동차의 전조등이 너무 슬프고 고독해 보인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갔지만, 생각을 덤으로 얻어 온 곳.


개인적으로 호수의 전경이라는 결과보다 시내에서 호수로 오는 과정이 더 아름다웠다.

가끔은 결과라는 현실보다 과정이라는 이상이 더 끌리는 것 같다.





아무 이유 없이 찍은 허름한 폐허

벽화의 낙서나 그라피티는 언제나 카메라를 들게 만든다.


무서워 보일 수 있는 빈 건물은 낙서로 인해 미소를 띠고 있는 기분이 든다.





글을 적고 보니 슬로베니아(류블랴나)라는 도시를 너무 우울하고 어둡게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류블랴나'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 고독과 슬픔이라는 키워드가 뇌리에 스친다는 것은

도시의 개성이 뚜렷하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겨울의 동유럽은 우울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류블랴나는 우울과 고독이라는 옷이 가장 잘 어울린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은

고독과 고립의 경계에 있는 도시, 류블랴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