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늘 가는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글쓰기 교실이 열린다는 공지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마감은 되지 않은 것 같았고 3월부터 시작할 수업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죠.
사실 군산 한길서점 글쓰기 교실에 대한 기사를 <오마이뉴스>에서 보고, 제가 사는 지역에는 그런 곳이 없나 찾고 있었거든요.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인데요. 물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제 글을 읽는다는 것이 부끄럽기는 했지만, 꼭 해봐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글쓰기 수업이 시작되었고 첫 시간이라면 당연히 나올 질문, 네 맞습니다. 선생님은 바로 그 질문으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왜 글을 쓰시나요?"
그러게요. 요즘 SNS든, 글 쓰는 플랫폼이든, 정말 많은 사람이 글을 쓰는데요. 글쓰기가 도대체 뭐길래,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번 쓰면 멈추지 않고 계속 쓰는 걸까요, 정말 왜 그런 걸까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의미 있는 작업, 글쓰기
저는 그 답을 수업 시간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단언컨대 글쓰기의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 말은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운명이 된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무의식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각성되지 않은 심적 상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각이 없는 상태라고 되어있지요.
이 무의식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 큰데반해의식적으로 불러일으킬 수가 없는 것이라, 저에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단어였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이 그대로 다운로드되어 꼭꼭 숨어있다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툭 튀어나오는 무의식.
누군가와 친밀해 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때로는 이 무의식이 관계의 발전을 어렵게 만들기도 해서 난감했던 적도 있지요.
그런데 글쓰기를 통해 무의식을 의식화할 수 있다니, 정말반가웠습니다. 글을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무의식을 의식화할 수 있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의식되지 않은 무의식은 곧 운명이 된다'는데 무의식을 일별 하지 않고 글을 쓰면서 의식화하다 보면 누구든 달라진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글쓰기를 하기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마치 오래된 숙제를 풀 수 있는 비법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 한 번쯤 다 해보잖아요. 그런데 그걸 누구나 할 수 있는 글쓰기로 가능하다니, 소오름!(웃음)
인생의 어떤 순간을 붙잡아 차분히 글로 정리하면 무의식을 의식화하게 되고, 자아를 정화시켜, 서서히 삶의 방식까지 바꾸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면서 운명까지 바뀐다니, 이제는 글쓰기가 믿음직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계속 쓰는 것을 넘어, 즐기면서 쓰는 것
그러려면 계속 글을 써야겠지요. 그래야 무의식을 의식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계속 쓰려면 글 쓰는 것 자체를 즐겨야 하는데요. 저도 즐기면서 쓰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될 때가 있더라고요. 제 안에는 분명 저만이 갖고 있는 파워풀한 힘이 있을 텐데, 저는 글쓰기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부담감이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창작하는 것이 좋고, 그것을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하는 힘은 있는데, 그것을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인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고 싶어 하잖아요. 예전의 삶은 그러지 못했다면 이제는 몸에 맞는 일, (자신을 잘 찾아간 이들처럼) 정말 잘하는 일, 그 일을 통해 살아있다는 느낌을 저도 갖고 싶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글쓰기가 맞는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요. 타고난 재능이 있어 보이진 않기 때문이죠. (하하하, 또르르르 ㅠ)
그렇지만 글을 쓰는 동안 집중하는 제 모습은 참 좋아요. 글을 쓰면서 제 글이 세상 어딘가에 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좋고요. 그래서 도서관 글쓰기 수업은 끝났지만 글은 계속 쓰려고 합니다. 제 안의 힘을 세상에 펼쳐내는 방법으로 글쓰기가맞는지는 계속해 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쓰다 보면 알게 되겠죠. 즐기면서 계속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요. 부디 즐기면서 쓸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