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머리카락은 물론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도 잘라본 적이 없었어요. 코로나 19가 오기 전까지는요. 처음에는 미용실을 가지 않고 버텼어요. 그런데아무래도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가위를 들었죠. 연세가 많으신 엄마가 미용실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셨기 때문인데요.덕분에 저도 고등학교 이후 다시 엄마한테 머리를 맡기게 되었죠.
엄마의 조언을 듣고 동영상도 찾아보며 연습을 했더니 처음이지만 엄마가 만족스러워하셨어요. 물론 전문가가 보면 엉성하지만요. 엄마가 만족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한 베란다 미용실이니까,소문이 퍼져 언니네도한 번씩 출장(?)을 가니까, 우리끼리는 만족스럽다며 웃었습니다.
준비물은요.
한 달에 한 번,우리는 베란다로 쏟아지는 햇빛에 실눈을 뜨고 은박 돗자리를 깝니다. 고객이 앉을 플라스틱 의자와 거울을 세울 튼튼한 식탁 의자를 갖다 놓고요. 의자 위에는핀셋, 하얀색 손잡이 가위,염색약을 사면 같이 오는 플라스틱 솔빗도 챙겨요. (미용실 영업이 얼마 안 갈 줄 알고 집에 있던 것들로 시작했거든요.)
분무기와 머리카락을 털 스펀지, 일회용 비옷(옷에 머리카락들이 들러붙는 것을 막기 위해),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조끼(핀셋, 빗, 가위 등을 쓰다가 잠깐씩 꽂아 두기 위해), 머리카락이 모조리 빨려 들어갈 것 같이 생긴 우주선 모양의커트보까지 갖다 두면, 모든 준비는 끝!
베란다 미용실 개업 3년째, 이제는 제법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작합니다. 분무기로 물을 머리 전체에 쓱 뿌리고 목에 닿는 아랫부분부터 조심조심 잘라요. 삐쭉거리는 머리카락들을 일자로 잘 정리하면 된답니다. 바로 위 머리카락은 가운데 가르마를 중심으로 각각 두 부분으로 나눠요. 그런 다음 귀 주변에 있는 머리카락은 핀셋으로 잡아 뺨 쪽으로 보낸 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면서 손목을 비틀며 (소심하게) 커트!
그다음은 옆머리. 뺨으로 넘겨 둔 옆머리를 이미 다 자른 뒷머리카락과 함께 쥐고 길이를 맞추면서 자릅니다. 앞에서 보면 옆 머리카락이 귀를 지나 뒤로 갈수록 사선이 되면서 짧아지도록 합니다. 그런 다음 왼쪽도 똑같이. 자, 옆머리도 끝났습니다.
마지막 앞머리입니다. 엄마는 앞머리를 자를 때 불안한 눈빛을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잘랐던 날 엄마를 '몽실이'로 만들었기 때문인데요(레고머리라고 하면 알까요). 팔순을 넘은 엄마의 짧은 일자머리를 본 순간, 우리는 웃음이 터졌어요(엄마 미안♡). 그 뒤로 앞머리를 자를 때면 엄마는 랩 하듯 말씀하십니다. "쪼매만(조금만), 쪼매만(조금만), 쪼매만(조금만)"
이제 마무리해 줘요. 큰 브러시로 뒤쪽 머리를 모두 쓸어와 얼굴로 쏟아내리고 전체적으로 정리해 줍니다. 옆머리는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의 김숙이 했던 '따귀소녀'처럼 양 볼 쪽으로 보내고 다듬어 주지요. 이번에는 앞머리를 모두 넘겨 영화 <나 홀로 집에> 주인공 케빈의 올백머리를 만들어요. 그런 다음 길이가 안 맞는 녀석들을 골라 자르죠. (진짜) 마지막. 이제 가위를 쥐고 머리 끝선을 살짝살짝 비스듬히 잘라 숫을 치고 붙어 있는 머리카락들을 스펀지로 털어내면끝입니다.
엄마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알게 된 것들
3년째 이 과정을 하다 보니 새로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조금만 더하면 완벽할 것 같은데'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몰랐을 땐 적당할 때 멈출 줄을 몰라 늘 데드라인을 넘겼고 엄마 머리는 하염없이 짧아져 갔어요.
세상 일도 이만하면 됐으니 그만둘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놓치면 '넘치면 모자란 만 못한'상황을 꼭 보게 되더라고요. 머리를 자를 때는 양쪽 길이를 맞추는 것에 신경쓰다가 전체 길이가 짧아져 당황하고, 배부르면 숟가락을 놔야 되는데 그게 안 돼서 다이어트는 항상 내일부터 시작하고, 그때 팔았어야 했던 주식은 결국 파랗게, 파랗게 사라져 가지요.
또 하나, 머리 끝선을 정리할 때는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하지 말고 눈높이를 맞춰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정리하면 우두커니 서서 하는 것보다 당연히 힘들어요. 그렇지만 잠깐 편하자고 쉽게 하다 보면 결국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게 되더라고요. 베란다를 다 치웠는데 '메롱, 나 여기 있는데' 하며 삐죽 나온 머리카락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무릎을 구부려 매너다리를 하고 눈높이를 맞추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다른, 그 높이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돼요. 이건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 같아요. 상대방의 마음에 눈높이를 맞춰야 비로소 보이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잘 맞던 엄마와 저도 같이 살게 되면서 서로의 마음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섭섭한 상황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그럴 기미가 보이려고 할 때 재빠르게 생각을 바꿉니다. "엄마한테 눈높이를 맞춰 생각해 보자."라고요. 그러면 서로의 여린 부분을 더 잘 알게 되고 이해의 폭도 점점 넓어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