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몇 주 동안 목요일과 금요일 아침은 화장실에 가서 눈이 얼마나 부었는지 보는 걸로 시작했어. 최근에 끝난 드라마 때문인데, 그 드라마를 본 날은 엉엉 울다가 잠이 들어서야.
드라마는 친구 한 명이 시한부가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마지막’을 보내자고 결심하는 단짝 친구들의 이야기인데 그걸 보면서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그랬나 봐.
너 시골로 이사 가고 얼마 안 됐을 때 그런 적 없던 애가 밤에도 한 번씩 전화했잖아. 드라마를 보면서 그때가 가장 많이 생각나더라.
처음으로 독립을, 그것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로 요양차 갔으니 얼마나 무서웠을지. 주중엔 혼자인 너에게 “가서 같이 있을까?”라는 말조차 나는 왜, 하지 않았는지.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때는 뭐가 그렇게 담담했는지.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평소와 많이 달랐는데, 너를 보내고도 왜 그 이유조차 생각해 보지 않고 묻어두었는지.
그러다 드라마를 보다가 깨달았어. 틈만 나면 서로의 일상에 불쑥불쑥 끼어들어 고통마저 함께 나누려는 그녀들을 보며 알게 됐어.
나는 그때 너무 무서워서, 너를 보면 내가 먼저 무너질까 봐 그랬다는 것을.
겉으로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곧 좋아질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상황을 회피했던 거 같아.
미안해, 너에게 가서 하염없이 울고 쓰러져도 그때 니 옆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이 참 그립다.
20대 중반부터 단짝으로 지낸 추억이 이제는 나만 간직하는 보물이 됐어.
생각해 보면 각박한 서울 생활에 어떻게 너를 만나 그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는지. 때로는 섭섭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우린,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니가 빌려줬던 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도 그런 말이 나오잖아.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다'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도 너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좋았던 게 더 많이 생각나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게 뭔지 아니? 우린 술 한 잔 하고 나면 항상 깔깔대고 웃었다는 거. 이런저런 인생고민들로 우울해하다가도 맥주 한 잔 마시고는 늘 웃으며 헤어졌지.
고마워. 그런 기억을 남겨줘서. 우리가 만나서 그렇게 많이 웃었던 건 아마도 좋은 인연이었기 때문 일거야.
지금도 나는 니가 좋아했던 맥주를 한 잔 하는 날이면 기분이 업되서 웃곤 해. 너와 마시며 늘 웃었던 게 이제는 술버릇이 되었나 봐.
그렇게 먼저 떠난 니가 문득문득 생각날때면, 나는 혼자 다짐해.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고. 다정하게, 솔직하게,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울면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용기'를 내자고. 너한테는 그렇게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고 살자고.'
어쩌면 이건 니가 나에게 주고 간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고마워, 영원한 나의 단짝.
내 친구로 와줘서 고마웠고, 많이 웃게 해 줘서 고맙고, 귀한 선물주고 가서 고마워.
나중에 다시 만나면 맥주 한 잔 하면서 우리 또 세상에서 가장 신나게 웃자.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