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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Feb 20. 2024

22. 천재작가, 출간 계약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작가의 꿈이 현실이 될 시간이다.


당신이 만약 아래와 같은 메일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읽길 바란다.


안녕하십니까?

원고에 관심 있고, 저희가 출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좋다면 출판계약서를 보내드리고 진행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천재작가는 원고 투고 3일 만에 30년 전통의 한 출판사로부터 회신을 받는다. 금요일에 메일을 발송하고 월요일에 답변을 받았으니 영업일 기준으로는 딱 하루 만이다.


"출간 계약이 이렇게 쉽게 된다고? 정말?"


기쁨도 잠시, 무명작가에게 전화 한 통 없이 바로 계약서를 보내겠다는 제안에 덜컥 의심부터 다.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최근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독자들을 빼앗기면서 출판 시장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저자가 제작비의 일부를 부담하는 반기획출판이 만연다. 이와 같은 시대 흐름을 고려해서인지, '이성' 자꾸만 "조심해. 출간 계약이 이렇게 쉽게 될 리가 없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사기꾼이 분명해"라고 속삭이현실을 부정하라 다. 다행히 '본능' 지지 않으려 애쓴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거리 "아니야. 드디어 때가 된 거야. 기적을 믿어. 이분은 귀인이 분명해" 소곤거리 맞선다. 이성과 본능이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간다. 기회를 엿보던 본능이 결단을 내린다.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이성의 손을 뿌리치며 결국 승기를 잡는다. 설렘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짧은 답신을 적는다.


안녕하세요^^

기쁜 소식으로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쿵쾅거리는 심장 부여잡고 출판계약서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류00 드림


출판계약서 본문에 ‘저자 부담 000만 원’, ‘저자 구매 000권’이라는 조건이 붙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며, 최대한 공손하게 메일을 발송한다.




"한 시간 뒤, 출판계약서가 첨부된 메일이 도착을 알린다."


출판계약서 첨부합니다. 내용 살펴보시고 의견 주시고, 없을 경우 출력 후 서명 날인하신 다음 스캔해서 파일을 첨부하셔도 되고, 저희 사무실로 우송하셔도 됩니다. 우송 시는 출력을 2부 하신 후 1부는 보관하시면 되겠습니다.
만약 사무실을 구경하고 싶으시면 계약을 직접 오셔서 하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첨부 문서를 다운로드하는 손길이 '첫날밤을 맞이하는 새신랑'처럼 다급해진다. 파일이 열리는 3초 3년 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긴장감을 견디지 못한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갈 듯이 빠르게 움직인다. 손이 '덜덜덜' 떨려서 스크롤을 내리기도 어렵다. 본디 부동산 계약서도 대충 읽고 사인하는 성급한 성격이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한다. 다행히 반기획출판이 의심되는 어떠한 문구도 발견되지 않는다. 참고 있던 눈시울이 기다렸다는 듯이 작동을 시작하여 금세 촉촉해진다. 두 눈을 꼭 감고, 신에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를 외친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이 가슴에 온기를 더한다.


“계약금 100만 원, 인세 00%, 내년 상반기 내 출간”


계약서에 적힌 모든 조건이 아름답다. 기대 이상이다. 글자와 숫자가 완벽한 조화 만들 내며 서명을 유도한다. 꿈에 그리던 상황임이 분명하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문장을 확인하고 나니, 본능이 순식간에 이성을 제압한다. 곧이어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다.



삐이이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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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우주가 활동을 잠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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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화려한 축하 세리머니가 시작을 알린다. "쿵! 쾅! 쿵! 쾅!" 그룹 '오장육부'의 리더를 맡고 있는 심장이 센터에서 요란하게 움직이며 분위기를 띄운다. 넘치는 흥을 쉽사리 주체하지 못한다. 'BPM 150'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을 겨우겨우 달래 가며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자꾸만 다른 숫자를 누른다. 어렵게(?) 전화가 연결되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격양된 목소리로 "자기야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계약서까지 보내왔어. 읽어 보니 기회출판인 것 같아"라고 말한다.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의 목소리 미세하게 떨린다. 잠시 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박 씨 집안의 귀한 장녀에게 "정말?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라는 따뜻한 인사를 받는다. 순간 천재작가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비로소 출간이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11개월을 기다린 오른손이 드디어 주인공이 될 시간이다."


그날 오후, 천재작가는 난생처음 출판계약서에 개인 인적사항과 계좌 정보기록하고 서명을 남긴다. 소중한 한 부를 출판사에 보내고 나서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은 계속 비워지지 않는다. 여태까지 당한 게 너무 많다.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다시 읽어보니 출간이 어려울 것 같아서 계약금을 보내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까지 다. 불안감은 100만 원 입금을 확인해야만 해소될 듯하다. 계약서에 '1주일 이내 계약금 지급'이라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으니 1주일만 참으면 된다. 그런데 평소보다 시간이 한참 더디게 흐른다. 기쁨에 두려움이 적절히 섞인 채로 어찌어찌 밝은 달을 맞이한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는 전날 밤처럼 아주 어렵게 잠이 다.


"몇 시간 뒤, 둥그런 해가 고개를 내민다."


이른 아침부터 휴대폰이 짧은 진동을 전한다. 오전 8시면 자동이체 알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금이라는 단어는 유독 하루를 무겁게 만든다. 늘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월급을 아쉬워하며 상단 바를 지우려는 순간, '출금'이 아닌 '입금'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계약금을 확인한 순간, 몸의 모든 감각이 다른 차원으로 이동이라도 한 듯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고, 맥박도 분당 140회 정도의 속도로 정상 범위를 위로 한참 벗어나 움직인다. 계약금 100만 원을 받고 출간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 버킷리스트 첫 줄에 적힌 ‘작가 되기’과감히 두 줄을 다. 진한 행복감이 가슴 깊은 곳까지 꽉꽉 채워진다.


"천재작가는 드디어 '시급 천 원' 작가가 된다."


하루 3시간, 337일. 1,000여 시간을 투자해 100만 원을 벌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고작 1,000원 수준이다. 그런데 작고 소중한 선인세 100만 원이 100억 원보다 더 하게 느껴진다. 역시 인생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천재작가는 무려 150번의 투고 끝에 출간이라는 기적을 일으킨다. 아침저녁으로 진통제를 삼키는 고통의 시간이 이렇게 끝이 난다.


"출판 계약이 이렇게 쉽게 된다고? 미팅도 없이? 정말?"


천재작가는 반년을 고생한 끝에 원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출판사 대표를 만난다. 그는 아무런 조건 없이 원고만 보고 선뜻 계약서를 내민다. 출판사를 30년 넘게 이끌어온 수장답게 안목이 남다르다. 그에게는 글이 곧 작가의 얼굴이다. 훈남(?) 천재작가에게 출판계약서에 서명은 요구하지만, 만남은 요청하지 않는다. 목소리 한 번 듣지 않고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글은 팩트가 중요하다. 모두 사실이다. 이메일로 "원고가 좋네요. 계약하고 싶습니다" 하고 연락이 와서 "네, 그럼 계약서부터  보내주세요" 하고 답하니, "출판계약서 첨부합니다. 서명해서 보내 주세요"라는 회신이 바로 온다. 이 모든 게 꿈만 같다고? 아니다. 현실이다. 관련해서 할 말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 출간이 눈앞이다. 출간 일정에 맞춰 책부터 공개하고, 계약 후일담은 나중에 상세히 전하겠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읽고, 당신도 투고 3일 만에 출간 계약에 성공하는 기적을 경험하길 바란다.


"출간 예정일은 2024년 2월 26일 월요일이다."


이 모든 단계를 거쳐 계약된 원고가 현재 새 옷을 입고 대기 중이다. 따스한 색감이고, 특히 뒤태가 매력적이다. 천재작가의 오만방자 원고 투고 과정을 알고 있는 독자분들에게는 더욱더 특별한 책으로 다가가리라 믿는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이제 곧 서점에 갈 시간이다. 용돈 아껴 쓰고, 며칠 후에 만나자.




#작가의 말


작가에게는 저마다의 때가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 포기만 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 힘들었던 과정은 경험이 되어 자산으로 남는다. 삶은 우연을 가장하지만 사실은 필연이다. 믿음을 가지고 묵묵히 도전하다 보면, 귀인을 만나 미소 짓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나 됐어”라고 소리치는 짜릿함을 꼭 경험해 보길 바란다. 중간에 지칠 때면 언제든지 찾아와 댓글을 남겨라. 계속해도 되는지 물어라.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쉬지 말고 퇴고하고, 끊임없이 투고하라."


언제까지?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온 우주는 당신을 위해 잠시 멈출 준비가 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 썼던 천재작가의 페르소나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벗을 예정이다.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시도 때도 없이 춤을 추는 그룹 '오장육부'리더는 요령껏 잘 달래고, 며칠 뒤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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