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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Feb 15. 2024

20. 천재작가, 아내 몰래 투고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원고 작성에 5개월, 투고에는 6개월.


이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출판사 투고 가이드라인'이라도 있으면 참고해서 진행할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천재작가는 머릿속이 하얘진다. 기약 없는 원고 투고를 계속 이어나가는 게 맞는지 고민이다. 속상함과 우울감이 식후 디저트를 자청하며 속을 가득 채운다. 잘 다독여온 '포기' 마저 말을 듣지 않고 '끈기'를 구박하기 시작한다.


"그래, 반년이면 오래 참았다."


어느덧 너덜너덜해진 '끈기'에게 조금만 더 버텨 달라고 무릎 꿇고 사정해 보지만 끝까지 붙들 명분이 없다. 상처 투성이인 끈기가 주섬주섬 짐을 챙기더니 끝내 이별을 고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버텨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여비를 두둑이 챙겨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천재작가는 투고 6개월 만에 아내에게 시계를 선물하고 '출간 포기'를 선언한다.


"욕심을 버리니 이승이 곧 천국이 된다."


자음과 모음에게 이별을 고하고 나니 만성 두통이 싹 다 사라진다. 피로감도 덜하다. 출근길에 "휘이~휘이~"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혀를 통해 느껴지는 공기의 맛도 평소와는 다르다. 꿀처럼 달다. 공기 중에 떠 있는 질소와 산소도 기분이 좋은지 손을 꼭 잡고 플라멩코를 춘다. 상쾌한 아침이다. 작가를 포기하고 독자로 돌아가니 주변이 다시 아름다워진다. 입맛이 돌고, 길가에 핀 꽃들에도 눈길이 간다. 낮에 꾸는 꿈을 포기하고 나니, 밤에 잠을 푹 자며 좋은 꿈을 꾼다. 세상만사가 다 행복하게 느껴진다.




"현대 사회에는 즐길거리가 참 많다."

오늘은 오후 반차다. 퇴근 후, 아이 하원까지 3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생긴다. 예전 같았으면 글을 쓰고 퇴고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테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내와 함께 거실에서 영화를 고른다. '만 원의 행복'을 즐긴다. '룰루랄라' 흥겹게 리모컨 버튼을 누른다. 고민 끝에 선택한 한 편의 영화가 며칠 뒤 출간의 기적을 일으킨다.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정답은 4초 광고 후에 공개한다.

"천. 재. 작. 가."

한 남성의 운명을 바꾼 영화는 바로 <리바운드>다. 2012년 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장항준 감독이 연출을 맡아 2023년 4월에 개봉한 영화다. 신임 코치와 선수 6명이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명작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천재작가는 B급 감성의 웃음 코드를 좋아한다. 혼자 빵빵 터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즐긴다. 중간중간 이수 지역을 이탈하려고 눈치를 살피는 배꼽을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문득, 눈시울이 붉어진다. 왜냐고? 아래 대사 때문이다.

"네가 좋아하는 걸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영화 속 명대사가 '슝~' 하고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내가 좋아하는 것? 0.01초 만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글을 쓰는 일이다. 더 자세히는 모인 글이 책으로 엮이길 바란다. 그런데 지금 펜을 놓고 영화를 본다. 화면 속 주인공들은 아픈 다리에 붕대를 감아가며 코트를 누비는데, 천재작가는 작은 상처 몇 번에 금세 꿈을 포기하고 소파에 기대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얼마 뒤, 꿈을 이루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화면 속 선수들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서서히 몸집을 키운다. 신임 코치와 실패한 농구 선수들이 모여 교체 선수도 없이 결승까지 올라가는 기적보며, 결국 폭풍오열을 한다. 감정을 깊게 이입한 탓이다. 잠시 뒤, 머리를 망치로 '쾅' 하고 쌔게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다.

"한 골 넣지 못했다고 해서 경기에 지는 건 아니다."

골대를 맞고 튀어나온 공을 붙잡으면 기회가 다시 생기듯, 원고 투고도 마찬가지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실패는 없다. 모든 건 다 과정일 뿐이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의지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다음 날 아침, 그동안 미뤄 온 '출간 기획서' 파일을 다. 예비작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부족한 이력을 열정으로 대신하여 모든 칸을 정성껏 채운다. 천재작가는 골대를 맞고 튀어나온 공을 잡아 다시 슛을 던지는 절실함으로 마지막 10개 출판사에 기획안과 함께 이메일을 보낸다.




"딩동! 3일 후 반가운 메일이 도착을 알린다."

두둥. 출판사 이름을 보니 입이 쩍 벌어진다. 지난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참가한 출판사다. 다시 도전한 보람을 느낀다. 드디어 때가 왔다. 튀어나온 공이 내게로 향한다. 이제는 멋진 '슬램 덩크'를 선보일 시간이다. '다다다다' 배우자에게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한다. 차분히 듣고 있던 아내가 서서히 입을 연다.

"자기 나 몰래 또 투고했어? 이제 그만한다며."

헉! 할 말이 없다. 큰 죄를 지었다. 부부간에는 비밀이 있으면 안 되는데 아내 몰래 투고를 한 사실을 들키고야 말았다. '민망함'이 '설렘'을 날카롭게 째려본다. 찌릿찌릿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으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지은 죄가 있으니 눈길을 피하지도 못 한다. 가슴이 다른 의미로 두근두근 거린다. 고민 끝에 "응, 마음 정리하려고 보냈어. 근데 연락이 왔네"라고 말하며 핑계를 대 보지만 차가운 공기는 여전하다. 현장이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오늘은 특별히 직관과 같은 생생함을 전해 주겠다. 수시 1차 합격 소식을 들은 고3 학생이 담임 선생님에게 달려가 반가운 소식을 알리니, "류00, 그건 그거고 너 어제 야자 시간에 담 넘었지? 저기 가서 무릎 꿇고 손부터 들고 있어!" 하고 혼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잘못이 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반성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자기야, 여기 출판사가 진짜 좋아. 오빠 이제 진짜 작가 된다."


천재작가는 동경하던 출판사로부터 '그린라이트'를 받는다. 이제 곧 출간이다. 먼 길을 돌고 또 돌아왔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결말이다. 연재에 속도를 내는 중이니 아쉬움은 퇴고로 달래며 기다려주길 바란다. 며칠 후에 만나자.




# 작가의 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생각나는 답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다.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끝까지 해야 한다. 그러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천재작가를 떠올리길 바란다. 책을 한 권 내기까지 '150번' 원고를 투고했다. 힘들지 않았냐고? 당연히 힘들었다. 영하 17도, 추운 날씨에 상의를 탈의하고 매일 3km 구보를 하는 수준의 괴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괜찮다. 그 모든 고통은 출간 계약이라는 보상을 받는 순간 추억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리바운드 : 농구에서, 슈팅한 공이 골인되지 아니하고 림이나 백보드에 맞고 튀어나오는 일


리바운드되어 튕겨져 나온 공을 보고 당신이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그렇다. 달려가서 잡아야 한다. 그러면 기회가 또 생긴다. 중간에 절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튕겨져 나온 공을 잡아서 넣고, 다시 또 넣다 보면 공이 언젠가는 을 통과한다. 마찬가지다. 원고를 투고하고 또 투고하다 보면 출간의 기적은 반드시 일어난다. 내가 경험했고, 이제는 당신 차례다. 천재작가를 작가로 만들어 준 영화 속 명대사가 당신 가슴에도 새겨지바란다.

"네가 좋아하는 걸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어~~ 어~~ 어~~"


저기 공 튀어나온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기다릴 텐가? 떠난 기차는 붙잡을 수 없다. 어서 가서 리바운드부터 해라. 피나는 노력 뒤에 짜릿한 결과가 있다. 당신의 꿈이 현실이라는 옷을 꺼내 입는 순간이 올 때까지 목이 터져라 함께 응원할 것을 약속한다.


 "주먹을 쥔 손에서 새끼손가락만 살짝 펴서 당신에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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