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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인 Nov 04. 2024

발췌|<불안의 서>페르난두 페소아, 서문~1

서문

- 일요일을 제외하면 손님이 별로 없는 그런 식당에서 종종 나는 아주 기이한 인상의 인물들과 마주친다. 표정 없는 얼굴의 그들은 대개 삶의 주변부를 사는 사람들이다.


- 창백하고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보기에 따라서 고통의 기색이 있는 듯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특별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간직한 고통이 어떤 종류인지 규정하기는 힘들었다. 아마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결핍, 공포, 혹은 너무 많은 고통을 당하고 살아온 나머지 무감각해진 감정 자체가 고통일 수도 있다.


- 사실<오르페우>에 실린 글들이 자신에게는 아주 새로운 종류는 아니라고, 이어서 그는, 자신은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방문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읽기에도 흥미가 없기 때문에 저녁이면 주로 세 든 방에서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 그는 직접 실내장식을 했는데, 이유는 "권태의 존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현대적인 실내장식으로 꾸민 방에서 권태는 불쾌함으로 바뀌었고, 마침내는 육체적인 고통으로 변환되었다.


- 그의 삶이 우연히도 이런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그의 세계관과 본능 - 둘 다 느림과 고독을 지향하고 있는 - 때문이었다. 


- 그리고 추측건대 그가 나를 절대 진정한 친구로는 여기지 않는 것도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쓴 책을 남겨주기 위해서 누군가를 자신의 측근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다. 


1. 1930년 3월 9일 

- 데카당은 무의식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그런데 삶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 바로 무의식 아닌가. 만약 심장이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심장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 것이다. 


- 나처럼 존재하는 사람, 삶을 살 줄 모르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유형의 극소수의 인간에게는 일반적인 삶의 양식을 포기하고 오직 관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쓰는 산문과 시는 낯선 이의 이해를 구하거나 그들의 의지를 설득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오직 순수하게 한 명의 독서가에 의해 소리 내어 말해지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조의 미학뿐 아니라 관조의 방법과 결과의 표현에도 마찬가지로 미학적인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것으로 이미 주관적 책읽기를 즐기기 위한 객관적 토대가 완성된 것이다. 

모든 문학작품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미학적 관조 중에서도 우리가 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불확실한 관조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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